시작부터 좌초위기에 놓인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가입
산재보험 가입 막는 사용자…반쪽짜리 보험 거부하는 노동자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이달부터 4개 직군 특수고용노동자도 산재보험 가입의 길이 열렸다. 민주노총 추산 180만명, 노동부 추산 90만명에 달하는 특수고용직 가운데 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레미콘기사 등 4개 직군 39만명에게만 한정된 좁은 문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좌초될 위기를 맞고 있다.

시행과 동시에 쏟아지는 ‘적용제외’ 신청

지난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40년만에 전면 개정되면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125조)’ 조항이 신설됐다. 법령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지만 업무상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돼 있다. 그래서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은 일반 노동자와 다르다. 일반 노동자는 보험료를 100% 사업주가 부담하고,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특수고용직은 적용제외 신청을 할 수 있고(임의적용), 보험료도 사업주와 반반씩 부담하도록 돼 있다. 특수고용직에게만 특수하게 적용되는 임의적용과 보험료 절반부담 조항은 산재보험 가입의 문이 열려도 들어가기 어려운 진입장벽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29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이달부터 지난 25일 현재까지 특수고용노동자 5천900명이 산재보험 적용제외를 신청했다. 산재보험법에 따르면 특수고용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는 반드시 노무제공 여부를 공단에 신고해야 한다. 다음달 15일까지 보험회사와 학습지회사·레미콘업체·골프장은 노무를 제공받고 있는 특수고용직의 신상과 업무내용을 신고하고 노무제공이 중단될 경우 그 사유도 알려야 한다. 이를 ‘입직·이직신고’라고 하는데 25일 현재까지 공단에 접수된 특수고용직 이직신고는 1만9천명 수준이다.

결국 산재보험 적용사실을 알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 3분의 1이 가입과 동시에 적용제외 신청을 한 것이다. 적용제외 신청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회사가 직접 적용제외 신청서 나눠주는데…”

A학습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미현(가명·34)씨는 얼마전 회사로부터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건네받았다. 회사측이 산재보험과 단체상해보험을 교육하면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같이 배포한 것이다.

교육을 받은 이씨는 혼란에 빠졌다. 산재보험은 사업주와 교사가 각각 매월 보험료를 연간 4만8천300원씩 납부하고 업무상재해와 질병에 대해서만 보장해준다.

그렇지만 단체상해보험은 회사에서 보험료를 전액 납부하기 때문에 교사가 따로 부담할 필요가 없고 24시간 365일 업무에 상관없이 보장해주는 복리후생제도라는 게 회사측의 입장이다. 또한 산재보험은 요양신청을 하고 산재 여부를 심사해 승인될 경우만 진료비와 병원비를 받을 수 있다. 반면 단체상해보험은 개인상해나 질병조차 보험사가 직접 찾아와 보험금을 준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씨에게 당연히 단체상해보험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막상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산재보험과 단체상해보험이 질적으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산재보험은 이씨가 사망했을 경우 약 7천500만원의 보상금을 주고, 장애를 입어도 최대 7천800만원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단체상해보험은 사망시 최대 3천만원, 장해시 최대 1천만원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병원비도 산재보험은 실비로 지급되지만 단체상해보험은 최대 500만원 한도 내에서만 받을 수 있다.

A학습지는 2004년부터 후생복지 차원에서 단체상해보험에 가입해 비슷한 혜택을 부여해왔다. 상해나 질병으로 보상받은 사람이 2004년에는 120명이었지만 지난해의 경우 2배 이상 늘어 263명에 달했다. 실제로 가정 방문을 주로 하는 업무특성상 이씨는 언제든지 교통사고 위험에 처해 있어 불안불안하다. 학습지회사 관계자는 “대부분 회사들이 단체상해보험에 가입해 있다”며 “산재보험에 가입하든, 단체상해보험에 가입하든 교사가 알아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점 줄어드는 회원수 때문에 계약해지 불안에 놓인 이씨는 “회사가 직접 나눠준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고 답답해했다.

삼성생명 보험설계사는 산재보험에 가입할까?

사용자가 산재보험 대신에 단체상해보험 가입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 산재보험 혜택이 주어진 특수고용직 가운데 절반이 보험설계사다. 보험협회에 따르면 3월 현재 생명보험사에 14만4천324명, 손해보험사에 7만3천579명, 소규모 대리점 등에 5만1천396명의 보험설계사가 일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산재보험료는 연간 662억6천160만원 수준으로 이 중 절반이 사용자의 몫이다.

생명보험 23개 회사 가운데 삼성·대한·교보·흥국·동부·ING·푸르덴셜·PCA·뉴욕생명 등 9곳은 이미 자사 단체상해보험에 설계사가 가입돼 있다. 보험업계는 자사의 단체상해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것보다 비용면에서 절반 가까이 부담이 적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가장 규모가 큰 삼성생명은 아직까지 공단에 보험설계사 입직신고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보험설계사 입직신고를 한다 하더라도 적용제외를 신청할 가능성이 거의 100%”라고 말했다. 삼성생명 관계자 역시 언론을 통해 “이미 전액 회사비용으로 보장이 더 큰 단체보험에 가입해 복리후생시스템을 잘 갖춘 상태”라며 산재보험 가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산재보험료에 대한 비용부담도 원인 중 하나지만 실상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더 크다. 보험업계는 “산재보험 다음에는 고용보험까지 적용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산재보험 가입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특수고용 관련입법이 없던 일로 끝나면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문제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실상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은 없어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을 막는 사용자의 행태는 사실 노동부도 인지하고 있다. 이종구 노동부 산재보험과 사무관은 “사업주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산재보험 가입을 방해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실상을 확인하기도 어렵고, 설사 확인된다 하더라도 규제장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관련법령에 단속·처벌근거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노동부와 공단은 적용제외 신청이 집단적으로 접수되는 사업장의 경우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대응하는 것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실토했다. 노동계는 “일반 노동자와 같이 특수고용노동자도 산재보험에 당연적용되고 보험료 부담이 없다면 해결될 문제”라고 지적한다.

학습지노조(위원장직무대행 강종숙)는 29일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껍데기뿐인 산재보험 적용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 노동계 일각에서는 학습지노조의 행보에 우려를 보내기도 한다. 학습지노조의 주장대로 당연가입과 보험료 전액 사업주 부담으로 산재보험법이 개정돼야 하지만 자칫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 혜택이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병원 간병인·퀵서비스·대리운전기사 등 수많은 직종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산재보험 가입범위를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1차 대상이 된 4개 직군에서 산재보험 가입률이 낮을 경우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대규 전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의장은 “반쪽짜리 산재보험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가입한 후 적용대상과 범위 확대를 요구해야 한다”며 “특수고용직 조직확대를 통해 풀어가야 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공단은 “9월8일까지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이 가능하므로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가입률 최종 집계가 나온 이후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