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가장 안 좋은 코스콤비정규지부, 왜?
장기 노숙농성으로 대인예민성까지 유발
매일노동뉴스 오재현 기자
#. 코스콤비정규지부 조합원 박 아무개(26)씨는 요즘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왜 아직도 그러고 있냐”, “빨리 정신 차리고 다른 회사 알아보라”는 친구들의 말을 듣기 때문이다. 늘 모임을 주도했던 박씨였지만 이젠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두렵기까지 하다. 한 친구는 ‘생활비라도 해라’라며 박씨에게 돈을 조금씩 주기도 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자꾸 친구들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친구와 연락도 잘 안 한다고 했다.
#. 조합원 최 아무개(30)씨는 지방에서 올라와 300일 넘게 노숙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매일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평범한 일상이 이젠 ‘특별한 일’이 되버렸다. 며칠 전엔 주변 상가 화장실을 이용하다가 상점 주인에게 심한 욕설을 듣기도 했다. 그나마 건물 문을 닫는 일요일에는 서울 여의도역 지하철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최씨는 같이 양복을 입고 여의도 증권가를 출퇴근하던 회사원들 가운데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조마조마 한다고 말했다.
#. 코스콤에서 15년 동안 근무한 김 아무개(41)씨. 김씨는 코스콤 천막농성장에서 투쟁을 하다 2주일에 한 번씩 집에 간다. 집엔 4살 난 딸과 함께 맞벌이를 하던 부인이 있다. 투쟁을 시작하면서 수입이 끊겼고,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이유로 부인과 다툼도 늘었다.
김씨는 무엇보다 이제 말문이 트인 4살 난 딸이 “왜 아빠는 일이 그렇게 많아?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하는 말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잠시 집에 들렀다가 다시 여의도 천막농성장을 가는 아버지의 일과를 딸이 자세히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왜 회사 갈 때마다 화를 내면서 가”라는 딸의 말에 또 한번 가슴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노동건강연대가 5일 코스콤비정규지부·이랜드일반노조·KTX새마을호승무지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노동자의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코스콤비정규지부 조합원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가장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코스콤비정규지부 조합원들의 평균 연령은 32.3세이며 평균 근무기간은 6.1년이다. 이들은 오랜 노숙투쟁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호소했다.
특히 코스콤비정규지부 조합원들은 ‘대인예민성’ 항목에서 두드러진 증상을 보였는데, 대인예민성이란 타인과 관계에서 나타나는 불편감·부적합감·열등감을 뜻한다.
노동건강연대는 보고서에서 “코스콤지부 조합원들의 대인예민성이 높아진 것은 장기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노숙생활을 한 영향이 큰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코스콤비정규지부 조합원들은 5일 현재 여의도 한 복판에서 300일 넘게 천막농성과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조합원들 대부분은 투쟁을 시작하기 전에는 비록 저임금이었지만 말끔한 양복을 입고 일했다고 한다.
김주신 지부 사무국장은 “양복을 입었을 땐 파업하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젠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천막농성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무관심한 시선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평범했던 30대 직장인이 장기 노숙농성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심지어 이민가고 싶다는 호소까지 하는 상황이다. 한편 노동계는 이번 조사에 포함된 이랜드·KTX새마을호·코스콤 외에도 코오롱 한솔·동양실리콘·도루코 등 수많은 장기투쟁사업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