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안전포커스]
되짚어보는 판교 붕괴사고
조현미 기자
17일 오후 찾아간 경기도 성남 판교의 SK케미컬 신축공사 붕괴현장. 사고가 발생한 지난 15일과는 달리 현장 주변은 펜스로 둘러쳐져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도 철저히 통제됐다.
펜스 사이로 확인한 붕괴사고 현장에는 무너진 철 구조물과 컨테이너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간혹 흰색 안전모를 쓴 현장 관계자들이 오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고가 발생한 북쪽 도로 주변은 약간 가라앉아 있었는데,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했다.
예견된 붕괴사고
결론부터 말하면, 사고는 예견돼 있었다. 사고현장에서 일했다는 한 노동자는 “복공판 위에서 크람셀 기중기가 흙을 떠올릴 때마다 복공판이 흔들거렸다”며 “복공판 위에 있는 컨테이너 안에 있어도 흔들거림을 느꼈을 정도”라고 말했다.
따뜻해진 날씨와 수도관 파열 등으로 인한 지반 약화가 사고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철 구조물 자체도 안전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복공판은 사고 당시 흙더미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복공판은 터파기 공사를 할 때 덤프트럭 등을 이용해 자재를 반출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가설물이다. 크람셀 기중기는 굴삭기가 퍼낸 흙을 떠올려 덤프트럭에 싣는 건설기계다.
붕괴사고, 언제든 재발할 수 있어
최근 건물이 점점 고층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붕괴사고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고층화될수록 지하를 깊게 파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붕괴사고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건설현장 붕괴사고는 지난 2005년 320건, 2006년 357건, 2007년 319건, 지난해 497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대전 대덕비즈니스 허브센터 신축현장에서 터파기 공사 도중 흙막이 시설이 붕괴돼 도시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는 공기단축과 공사비 절감을 위해 설계도에 콘크리트로 시공하도록 돼 있는 흙막이 시설을 목재로 사용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11월에는 동탄 신도시 서해그랑불 주상복합 터파기 현장이 붕괴돼 노동자 2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공기단축하려다 생명까지 단축시켜
건설업체의 공기단축 또한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판교 붕괴사고는 주말인 일요일에 발생했다. 최근 건설현장의 대형사고는 휴일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 주 5일제가 시행된 지 5년이 돼 가지만 건설현장에서는 여전히 일요휴무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일요일은 물론이고 새벽까지 공사가 이어질 때가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일요일에는 현장 관리직원들도 당직 직원을 빼고는 대다수가 쉬기 때문에 현장의 안전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며 “판교 붕괴사고에서도 사망자나 부상자에 SK건설 관리직원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자율안전관리업체 선정 재검토해야
SK건설은 지난해 7월 자율안전관리업체로 선정됐다. 노동부는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200대 건설업체 중 최근 3년간 환산재해율이 매년 건설업 평균환산재해율 이하인 업체를 자율안전관리업체로 선정하고 있다. 환산재해율은 사망자 1인을 부상재해자의 10배로 가중치를 부여해 산정한 재해율이다.
선정 업체는 1년간 착공되는 공사에 대해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가 면제되고 공사 준공시까지 확인검사도 면제받게 된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제도는 건설업체가 공사 착공 전에 추락·붕괴 등 공사 중 예상되는 위험요소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 그 적정성을 평가하는 사전안전성평가제도다. 정부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당시 규제완화 차원에서 자율안전관리업체를 선정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과연 자율안전관리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영업정지시키고 사업주 구속해야
홍희덕 의원은 이날 “건설현장에서 붕괴사고가 급증하는 배경에는 최저가낙찰제가 확산되면서 건설업체들이 무리하게 덤핑낙찰을 하면서 부실공사와 무리한 공기단축을 시도하기 때문”이라며 “노동자 안전에 대한 대책이 수립되지 않은 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정비사업과 같은 대형 건설공사가 강행되면 붕괴사고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홍 의원은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업체에 대해서는 즉각 영업을 정지시키고 사업주 구속해야 한다”며 “특히 일요일이나 휴일에 안전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