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에 베여도 계속 일하라는 사장님… 이건 아니죠 |
20대 초반 이주노동 여성들의 첫 직장 이야기 |
박혜영(노동건강연대)
지난 6일, 낫으로 손을 베인 1989년생 난(Nan·가명·캄보디아)이 친구와 함께 지구인의 정류장을 찾았습니다. 지구인의 정류장은 안산 국경 없는 마을에 있는 이주노동자 문화공간입니다. 이곳은 이주노동자들과 각종 문화 사업을 추진하고, 노동 관련 사안에 대한 상담도 진행합니다.
앳된 얼굴과 피로에 지친 그녀들의 사연을 들었습니다. 난과 난의 친구는 고용허가제도로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지만, 사업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고, 지구인의 정류장은 그녀들을 도와 진술서를 작성했습니다.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캄보디아 노동자의 도움으로 통역과 번역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작업 중에 화장실에 여러 번 가면, 사장이 화를 냅니다. 화장실 갈 때 사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바빠 안 돼. 일 빨리빨리 해야돼. 일 다끝나고 화장실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줌 싸려면 화장실에 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 많이 먹으면 안돼. 조금 먹어야 돼. 화장실 자주 가니까, 물 조금 조금씩 먹어. 일 빨리빨리 해야해”라고 하였습니다. 화장실에 가면 사장이 화를 냅니다. 사장님은 여러 번 우리를 위협하며 일을 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사장 말 안 들으면, 하루 10만 원을 깎겠다고 말했습니다.”(진술서 중)
말 안들으면 임금 깎겠다는 사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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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참고 일하다가, 놀다가 방광염에 걸려본 경험이 있는 저는 진술서 초입부터 감정이입이 됩니다. 하루에 10만 원을 제하겠다니 대체 월급이 얼마인가 싶어 그녀들의 근로계약서를 살펴봤습니다.
월 통상임금 103만5080원. 오전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한다지만, 제시간에 일을 끝내 본 적은 없나 봅니다. 그나마 한 달에 이틀 있는 휴일도 일 안 하면 10만 원 제한다고 협박하니 쉴 생각은 못했답니다. 한 달 꼬박 일해서 100만 원 남짓 받는데, 하루 쉰다고 10만 원을 덜 받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사장은 바쁠 때, (야채를 심을 때) 장갑을 사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손가락으로 땅을 찔러 구멍을 낸 후에 야채 하나하나 심는 일입니다. 이때, 사장은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갑을 못 쓰게 합니다. 장갑을 착용하고 일을 하면 사장이 화를 냅니다. 하지만 일할 때, 장갑을 사용하지 않으면 손이 많이 쓰립니다.
저는 손이 아프다고 항변했으나 사장은 장갑을 벗고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장갑을 벗고 빨리빨리 일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장갑을 끼고 일했고 장갑을 벗고 일하기도 했습니다(사장은 일을 마칠 때쯤 근로자들이 장갑을 끼고 있으면 사장이 ‘장갑을 끼고 있었으니 일을 많이 못 했다’며 잔업을 더 시켰습니다).”(진술서 중)
손이 까칠해질까봐 핸드크림을 여기저기 비치해두고 있는 저로서는 20대 초반의 이 노동자들이 너무도 가련합니다. 장갑을 끼면 잔업을 더 시키다니요. 머리를 굴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해보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답은 없습니다.
낫에 베인 건 니 사정이고… 일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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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에 손을 다쳤습니다(검지를 다섯 바늘이나 꿰맸습니다). 16, 17, 18일까지 손이 계속 너무 아팠습니다. 꿰맨 실밥이 아직 붙어 있었습니다. 18일 아침에 사모님이 와서 내일(19일)부터 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는 아직 상처가 충분히 아물지 않은 때입니다. 그리고 5월 19일은 2주에 한 번 있는 휴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모님은 휴일이 없다며 일을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사모님은 ‘쉬는 날 일하면 ID카드 제작비를 대신 내준다’고 했습니다. 쉬는 날 일하지 않으면. 그 다음 날에 1시간 30분 더 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손이 아프다고 쉬면, 하루에 5만 원을 임금에서 삭감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휴식을 취하고, 병원에 가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을 때도,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동안의 비용을 혼자서 부담해야 했습니다. 치료비는 29만70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치료비는 전부 제가 부담했는데, 이와 관련한 영수증 등을 모두 사장이 가져갔습니다.”(진술서 중)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아직 자신들을 강제추방에서 보호해줄 유일한 수단인 ID카드도 발급받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와 유일하게 아는 사장이라는 사람이 ID카드 하나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은 채 이를 빌미로 강제로 일을 시킵니다.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그녀, 손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얼마나 컸을까요.
강제로 돈 찾아 사장에게 주다
“6월 5일 오후 3시 30분, 사장(사모님)이 갑자기, 두 사람에게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서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은행에 다녀온 다음(빠지는 시간 1시간을 더 일하자고 했습니다). 1시간가량 더 일을 하자고 말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왜 오후 4시에 가야하는 지 몰라서 그냥 오후 6시까지 일한 다음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6시 10분쯤 은행으로 가서 돈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사장은 두 사람에게 돈을 찾게 해 가져갔습니다.
근로 중 손가락에 다섯 바늘 꿰매는 상처를 입고 일을 할 수 없었는데, 일하던 중 일어난 사고여서 불가피하게 쉬었음에도 ‘3일간의 근로를 제공하지 않았다’ ‘치료비를 대신 내줬다’ 등의 이유로 사장은 35만 원을 가져갔습니다.”(진술서 중)
여기까지 읽고 잠시 생각해봅니다. 이들을 근로기준법으로 처벌하고, 산재보상 받게 하고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육체적·정신적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위로가 되는 걸까?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저 역시도 가해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모님이 이주노동자 때리기도 해
“6월 16일이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사장에게 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장은 화를 냈습니다. 두 사람은 ‘약속이 있으니 쉬고 싶다’고 말했는데, 사장이 화를 내며 먼저 난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때리고, 이어 친구의 어깨를 세차게 때렸습니다(집에 가서 보니 난의 신체부위가 빨갛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사장이 말했습니다. ‘내일 일 안 하면 월급 안 줘!'”(진술서 중)
진술서의 마지막 한 줄에 눈길을 멈춥니다. 20대 초반의 그녀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매번 그랬듯이, 맞고 짐승처럼 취급받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 사건은 어떻게 처리하고, 사업장은 이렇게 바꾸고, 덜 받은 임금 청구하자’고 말하기에는 그녀들이 받았을 상처가 크게 아른거립니다.
농촌에 있는 사업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관리감독에 소홀한 근로 감독관들, 피부색이 다르다고 난과 그녀의 친구가 지나가는 길마다 쳐다봤을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계속 있는 한 그녀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에서, 과연 그녀들이 마음 놓고 일하고 쉴 수 있는 곳은 없는 걸까요.
기사 원본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4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