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샷~” 뒤 골병드는 골프장 경기보조원
정부 산재보험법개정안 입법예고 … 노동계 ‘노동자성 인정 먼저’
구은회 기자
얼마 전 TV 오락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실험내용이 방영됐다. 날아오는 골프공에 맞을 경우 어느 정도의 충격을 받는지 측정해보는 실험이다. 놀랍게도 지름 5센티 남짓의 골프공은 전화번호부책 한권을 쉽게 뚫어버렸다.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경기보조원들에게 골프공은 공포의 대상이다. 골프공이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번 맞게 되면 중상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기도 ‘ㅇ’골프장에서 근무하는 경기보조원 노아무개 씨는 지난해 11월 손님이 친 골프공에 눈을 맞아 각막이 훼손되는 부상을 당했다. 실명 위기가 우려될 정도의 중상이다. 사고가 발생하자 골프장 관계자는 노씨에게 “보조원의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라고 훈계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공을 잘못 친 손님에게는 “보조원을 교체할 테니 개의치 말고 경기를 진행하라”고 독려했다. 결국 필드 위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노씨는 “사고가 났는데 무슨 경기냐”며 황당해 하던 손님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가 난 지 2개월이 지난 현재 노씨는 통원치료를 받고 있지만, 골프장으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치료비를 물어주겠다던 손님으로부터도 연락이 끊긴 상태다. ‘ㅇ’골프장 직원들은 “도의적 책임까지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실 손님이 무슨 잘못이냐”며 “고용된 보조원이 다쳤는데 ‘아무 책임 없다’고 버티는 골프장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빨 부러지고, 머리 깨지고, 다리뼈 금 가고…
더 많은 팀을 받아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경기보조원들은 골프장으로부터 신속한 경기진행을 요구받는다. 경기 진행 속도가 느리면 골프장으로부터 징계를 받는다. 빨리빨리 경기를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사고를 낳기도 한다. 이동 중 다른 홀에서 날아오는 공에 맞기도 하고, 골프백을 싣고 가는 전동카트에 발가락이 끼이는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서비스연맹이 수집한 실태자료에 따르면, 경기도의 H골프장에서 일하던 보조원은 날아오는 공에 맞아 치아가 모두 부러졌고, 경기도 K골프장의 보조원은 머리에 공을 맞아 뇌진탕으로 쓰러졌다. 경기도 N골프장의 보조원은 눈에 공을 맞아 실명됐고, 강원도 ㅇㅇ골프장 보조원은 코스에 내린 서리에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졌다. 경기도 P골프장 보조원은 타구사고로 손가락이 골절돼 장애판정을 받았고, 경기도 P골프장 보조원은 골프카 사이에 끼여 다리뼈에 금이 갔다.
사고를 당한 경기보조원들은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치료비를 보조해주는 골프장은 많지 않다. 보조원들은 치료비뿐 아니라 일하지 못하는 기간의 수입 감소, 치료 후 발생하는 후유증까지도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 자영업자와 근로자의 특성을 동시에 지녀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경기보조원은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 산배보험법개정안 입법발의 … 노동계 ‘실효성 의문’
지난해 10월25일 정부는 ‘골프장 경기보조원의 산재 전면 적용’을 포함한 ‘특수고용형태종사자 보호대책안’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 12월29일에는 같은 내용이 포함된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빠르면 2008년부터 경기보조원들도 산재보험을 적용받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노동계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도가 만들어진들 실효성을 갖겠느냐는 것이다.
이영화 서비스연맹 조직2국장은 “경기보조원들의 단체행동이 가로막혀 있는 상황에, 산재법만 개정되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사장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보조원들은 항의조차 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발표한 특수고용직 보호대책의 기반이 되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경우, 보조원 두 명 이상이 골프장을 상대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담합’ 행위가 된다”며 “결국 사장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자성 보장’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개별적 보호방안은 실효성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