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노동건강연대 사무실 한 켠 에서는 기업살인법 도입 운동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2,605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사망한 해, 일을 하다가 죽는 일이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고 사회적으로 호명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에는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시작했습니다. 올 해로 10년입니다. 1등 상을 받는 기업들이 움찔 했습니다. 매년 살인기업 선정식 때가 되면 사무실에는 1위가 어디냐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은 위험함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법 제정을 본격화 했습니다. 기업의 통제 없는 이윤 추구 행위가 모두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참사 463일째 날, ‘중대재해 기업처벌 제정연대’의 닻을 올렸습니다. 4.16 유가족을 비롯한 21개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합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기업살인법이 필요한 이유와 이미 기업살인법을 시행 중인 영국과 캐나다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기획 / 기업살인법, 만들 때가 왔다.
여전히 우리에 필요한 기업살인법
유성규 /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
1.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 산재왕국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1,85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지난 10년간 한 해 평균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으니 지난 10년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어림잡아도 10,000명이 넘는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산재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을 얻은 노동자의 수는 90,909명이었다.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수에 비해 산재 노동자의 수가 지나치게 적다는 것이다.
연도 |
산재사망 노동자수 (명) |
산업재해 노동자수 (명) |
1998 |
2,212 |
51,514 |
1999 |
2,291 |
55,405 |
2000 |
2,528 |
68,976 |
2001 |
2,748 |
81,434 |
2002 |
2,436 |
81,911 |
2003 |
2,701 |
94,924 |
2004 |
2,586 |
88,874 |
2005 |
2,282 |
85,411 |
2006 |
2,238 |
89,910 |
2007 |
2,159 |
90,147 |
2008 |
2,146 |
95,806 |
2009 |
1,916 |
97,821 |
2010 |
1,931 |
98,645 |
2011 |
1,860 |
93,292 |
2012 |
1,864 |
92,256 |
2013 |
1,929 |
91,824 |
2014 |
1,850 |
90,909 |
출처: e-나라지표의 통계와 고용노동부 2012. 12월말 현재 산업재해 발생 현황의 통계를 종합
2008년 주요 OECD 국가들의 업무상 부상 만인율[주- 노동자 10,000명당 발생하는 산재 부상자수의 비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현황분석 참조]과 업무상 사망 만인율[주-노동자 10,000명당 발생하는 산재 사망자수의 비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현황분석 참조]을 비교하면, 독일은 부상이 사망의 1,414.5배에 이르렀고, 호주는 485.7배, 스웨덴은 427.3배, 이탈리아는 611.25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부상은 사망의 39.4배에 불과했다. 실제로 산재 사망 노동자 수에 비해 산재 노동자 수가 적어서 이 같은 통계가 만들어졌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상이 그렇게 긍정적일까? 이와 관련, 국내의 많은 연구자들이 동일한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은 절망적이었다.
구분 |
한국 |
독일 |
호주 |
멕시코 |
스웨덴 |
이탈리아 |
부상만인율 |
62.7 |
282.9 |
102.0 |
355.4 |
64.1 |
244.5 |
사망만인율 |
1.59 |
0.20 |
0.21 |
1.00 |
0.15 |
0.40 |
출처) 국민권익위원회,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개선방안, 2014
신상도 외 (2013)에 따르면,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직업성 손상 환자의 61%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았고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은 경우는 26%에 불과했다.[주-신상도 외, 응급실 기반 직업성 손상 원인 조사 연구, 산업안전보건공단, 2013] 직업성 손상이란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일을 하다가 발생한 사고로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입을 경우를 의미한다. 따라서 위 조사 결과는 산재의 상당수가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처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주-유성규, 기업의 산재 은폐 에방을 위한 개선 방안, 국가인권위원회 토론회 자료집, 2014]
위 수치는 정부연구기관이나 사용자단체의 조사 결과에도 부합한다. 대한전문건설협회의 조사 결과, 산재은폐율은 2006년 64%, 201년 66.5%에 이르렀다. 또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조사 결과, 산재은폐율은 2002년 56.1%, 2007년 75.5%에 이르렀다.
연도 |
조사기관 |
산재 처리 |
산재 미처리 |
비고 |
2000 |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
30.9 |
69.1 |
한국사회복지연구소 |
2001 |
노동건강연대 |
45.2 |
54.8 |
〞 |
2002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
43.9 |
56.1 |
〞 |
2006 |
대한전문건설협회 |
36.0 |
64.0 |
협회 자체조사 |
2007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
24.5 (39.8) |
75.5 (60.2) |
소규모현장 산재보험 타당성분석 |
2009 |
대한건설정책연구원 |
7.0 |
93.0 |
철콘업종 재해 및 공상처리 설문 |
2009 |
대한건설정책연구원 |
13.1 |
86.9 |
전문건설업 실태조사 – 조사대상 : 133개 업체 – 산재발생 : 총 497건 중 공상처리 432건 |
2010 |
대한전문건설협회 |
33.5 |
66.5 |
협회 자체조사 |
합계 |
|
32.5 |
67.4 |
|
출처) 국민권익위원회,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개선방안, 2014
산재가 은폐되었다가 건강보험공단에서 적발되어 환수된 산재 건수도 상당했다. 2011년에는 398,000건이 적발되었고 634억 5천만원이 환수되었다. 2012년에는 333,000건이 적발되었고 567억 8천 1백만원이 환수되었다. 2013년에는 444,000건이 적발되었고 713억원이 환수되었다.
출처) 국민권익위원회,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개선방안, 2014
결국, 고용노동부 공식 통계상의 90,909명은 오류임이 드러난다. 고용노동부의 공식 자료가 오류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부의 산재 발생 통계가 산재보험 승인 통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재보험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다뤄진 사고라도 산재 통계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구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실제 산재 노동자 수는 어느 정도 규모일까? 이를 정확하게 산출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통계가 없으므로, 이는 추산될 수밖에 없다. 임준(2012)에 따르면, 주상병에만 국한하더라도 직업성 손상과 관련된 산재보험 미적용자수는 중간값 기준으로 2009년 1,425,962명, 2010명 1,490,097명, 2011년 1,452,027명으로 추산된다.[주-이 수치는 주상병에 국한하여 산출된 수치로서, 만약 부상병까지 포함해 직업성 손상과 관련된 산재보험 미적용자수를 추정하면, 이 수치는 중간값 기준으로 2009년 1,556,751명, 2010년 1,628,871명, 2011년 1,590,542명으로 크게 늘어난다. 다만, 이 수치는 사업주를 포함한 것이므로 부정확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수치의 산출 근거인 건강보험 통계에서 누락된 노동자들(산재보험의 보호대상이지만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상당하다는 점, 직업성 손상 이외에 분석 범위를 근골격계질환, 천식, 뇌심혈관계질환 등에까지 확대할 경우 위 수치가 더 높아진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산재 은폐 싪실태를 확인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결국, 엄청난 숫자의 산재 노동자들이 정부의 공식 통계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출처: 임준, 산재보험 미신고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손실 규모 추정 및 해결 방안, 국회예산정책처, 2012
2. 대한민국은 왜 산재왕국이 되었을까?
(1) 1981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해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지 35년이 흘렀다. 35년 동안 우리나라 산업 구조는 비교가 의미 없을 정도로 크게 변화했다. 그렇다면 산재 예방을 위한 유일무이한 법률인 산업안전보건법도 산업 구조의 변화에 발맞춰 변화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35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그 원형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 ‘고용 형태의 변화’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1981년으로 돌아가 ‘간접 고용’이라는 단어를 언급한다면, 정부조차도 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우회해서 고용한다? 1명의 노동자에게 2명 이상의 사용자가 존재한다?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는 핀잔만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1981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조항을 찾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사내하청, 불법파견, 위장도급… 35년이 흐른 지금은 너무도 익숙한 현장의 일상어다. 간접 고용의 증가로 인해, 대기업들은 법적 책임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사용자의 기본적 의무조차 이행하기 힘든 영세업체들이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불안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은 아직도 이 같은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1981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과 마찬가지로 사용자 책임을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사용자에게 집중시키고 있을 뿐이다. 결국, 최근 발생하고 있는 산재 사망 실태에서 볼 수 있듯이, 간접 고용의 증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결과로 현상되고 있다.[주-유성규ㅡ 전기원 노동안전보건실태와 한국전력의 책임, 노동건강연대 토론회, 2011.]
(2) 300
300명.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안전보건 지도감독을 책임지는 산업안전보건 담당 근로감독관들의 수다. 앞서 산재 통계에 집계된 사업장의 수는 2,187,391개소였다. 그렇다면, 300명의 근로감독관 1명이 담당해야할 사업장의 수는 무려 7,291개소에 이른다. 300명의 근로감독관들 중에 상당수의 행정인력을 제외하면 실제 사업장을 지도 감독하는 감독인력은 300명에 훨씬 못미칠 것이다.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산재가 발생하는 구조를 파악하여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윤을 쫓는 기업의 속성상 이를 기업에게 맡겨두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따라서 이는 고용노동부의 중요한 역할이 되어야 하는데, 1년 365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20군데씩을 다녀도 1년에 사업장 1곳을 간신히 방문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근로감독관들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 결과는 정해져 있다. 산재 예방을 위한 지도감독은커녕 산재 발생에 대한 처벌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3) 2,000
2008년 경기도 이천의 냉동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 결과 지하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40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끔직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 항소심 법원이 원청 대표자와 원청 법인에게 선고한 형량이 각 벌금 2,000만원이었다. 당시 이를 두고 우리나라 노동자 1명의 가치가 고작 50만원이냐는 분노 섞인 비판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4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해도 벌금 2,000만원만 내면 끝나는 나라에서 기업들과 산재 예방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산재를 야기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그 사업주에 대한 징벌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산재를 야기한 1명의 사업주를 처벌함으로써 다른 사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산재 예방에 나서도록 촉구함에 있다. 이 때 처벌은 일종의 시그널로 기능한다. 따라서 산재를 야기한 사업주가 부당하게 처벌을 피해가거나 미약한 처벌을 받게 된다면, 이는 자칫 다른 사업주들에게 산재 예방을 방기해도 된다는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 즉 산재 예방을 하지 않더라도 적절히 피해갈 수 있다는 시그널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법원에서는 기업들로 하여금 산재 예방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긍정적 시그널이 아니라 산재 예방을 방기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부정적 시그널들이 난무한다.
3. 1987년 영국과 2015년 대한민국
1987년 3월 6일 영국의 여객선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가 영국 도버항을 향해 벨기에 지브뤼게항을 출발했다. 그러나 배는 출항한 지 2분 만에 완전히 침몰했고 193명의 승객과 선원들이 물에 빠져 사망했다. 침몰 원인은 너무도 어처구니없었다. 뱃머리 문을 닫지도 않고 배가 출항한 것이다. 당연히 출항하자마자 열려있는 뱃머리 문을 통해 대량의 물이 들이닥쳤고 배는 중심을 잃고 빠른 속도로 침몰했다.
사고를 야기한 직접적인 행위자는 부갑판장이었다. 뱃머리 문을 닫지 않고 잠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를 부갑판장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배에는 뱃머리 문이 열렸음을 알려주는 경고등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고, 출항 전에 뱃머리 문을 열려 있는지 확인하는 감독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결국, 부갑판장의 부주의한 행동이 그대로 대형 참사로 이어지게 된 원인은 기업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여론은 기업에 대한 처벌을 원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는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행위자인 선장과 선원들만 처벌되고 기업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허망한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영국의 시민 사회는 경악했고 기업의 천박한 이윤 추구가 앞으로 자신들에게 어떤 참혹한 결과를 야기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은 행동을 낳았고 행동은 결실을 맺었다. 그 결실이 바로 ‘기업살인법’이라 불리우는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이다. 이에, 영국의 기업살인법은 산재사망을 야기한 기업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적 도구라는 형식적 의미 이외에 더욱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무리 시장과 이윤이 최고의 선(善)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일지라도 결코 기업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線)이 존재함을 확인한 것이다. 영국 사회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궁극적인 이윤의 집결지이자 실질적 결정권자인 기업이 직접 처벌되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2015년 대한민국에 ‘기업살인법’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주-유성규, 기업살인법, 법기술 논쟁보다 중요한 것, 노동과 건강 2014년 여름호]
4. 우리에게도 기업살인법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에게도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법률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반드시 새로운 법률의 제정만이 해답은 아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도 그 내에 제대로 된 문제의식만 담아낼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새로운 법률에 담겨야 할 문제의식은 아래와 같다.[주- 아래의 문제의식은 유성규,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모색, 울산 동구청 정책토론회 자료집, 2012에서 인용내지 참조]
첫째, 산재를 야기한 기업이나 사업주에 실질적인 압력이 되는 처벌 유형이 고려되어야 한다. 처벌 수준만 강화되면 산재가 줄어들까? 회계 관련 처벌 규정이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이 회계 관련 범죄를 반복하여 저지르는 이유는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대가가 있기 때문이다. 산재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산재에 대한 벌금형이나 징역형의 하한선을 정하고 그 상한선을 없애는 방안’, ‘산재를 야기한 기업의 정보를 언론에 공시함으로써 기업에게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방안’등 기업에 실질적으로 압력이 되는 처벌 유형이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형식적인 사용자 책임’을 넘어서 ‘실질적인 사용자 책임’을 지는 대표자 내지 실질적 권한(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직접적으로 고용하지는 않았지만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이들의 노동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향유하는 지위에 있는 자)을 보유한 자가 처벌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처벌 강화와 관련한 논의의 핵심은 진짜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에도 파견노동자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파견사업무가 아닌 사용사업주가 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법률적 보완은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셋째, 형사 처벌의 기본 원칙인 ‘행위자 처벌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형사 처벌의 대상을 행위자로만 국한하게 되면 노동자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가져간 기업은 물론 그 이익의 최종 향유자들에 대해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 산재에 있어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처벌에서 열외가 되고 일개 실무자에 불과한 하급 관리자들만 처벌되는 구조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행위자가 아니어도 그 책임이 인정되는 기업이나 최고 책임자 등이 처벌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넷째,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재 예방 법제가 되지 못하는 원인에는 기소권을 보유한 검찰과 수사권을 행사하는 고용노동부의 한계 내지 문제점도 있다. 입법적 문제점이 해결되더라도 이와 같은 한계 내지 문제점이 함께 해소되지 않는다면,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입법적 시도들과 더불어, 검찰의 기소권을 합리적으로 제한하고 고용노동부의 수사권을 실질적으로 보강할 수 있는 방안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실례로, 산재 사건에 대한 재판에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 및 조사 권한을 행사하는 ‘(가칭)산업안전보건청’의 설립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5. 결론을 대신하여
과거 기업살인법 입법을 위한 논의는 매번 기존 법 체계와의 조응을 둘러싼 법 기술적 논쟁을 야기했다. 기업살인법은 기존 법체계를 뛰어넘지 않고는 현실화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매번 법 기술적 논쟁 속에서 허망한 결과로 귀결되었다. 기업살인법 제정은 시민들의 공분과 공론을 발판 삼아 기존 법체계를 훌쩍 뛰어넘어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지금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이 법 기술적으로 어떤 법률 조항을 만들고 어떤 법체계를 만들 것인가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이에 앞서서, 이윤 쫓아 노동자의 생명을 경시하는 기업과 정부를 시민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공분과 공론을 차분히 모아 나가야 한다.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은 이를 위한 ‘슬로건’이자 ‘도구’가 되어야 한다. 시민의 공론과 공분을 차분히 모아 나간다면, 어느 순간 기업살인법은 현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주-유성규, 기업살인법, 법기술 논쟁보다 중요한 것, 노동과 건강 2014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