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위험은 불평등하다
고발전문 단체?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일
유성규 /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
2011년 7월 2일. 이마트 지하 기계실에서 노동자 4명이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 노동자 중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 중이던 대학생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1년 내내 청바지 한 벌로 살아도 한마디 불평도 않던 착한 아들이었다. 그 착한 아들과 작별 인사도 미처 하지 못한 어머니의 슬픈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더 이상 이런 아픔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누구든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이런 절박함에서 산재 사망에 대한 사업주 고발 운동이 시작되었다. 고발 운동을 시작하면서 누구도 거창한 성과나 눈에 띠는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다. 산재 사망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고, 그 책임을 져야할 사업주들이 면죄부를 받고 거리를 당당히 활보하는 것은 오늘 내일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사업주들에게 면죄부를 남발하는 노동부, 검찰, 법원에게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자는 것이었다. 사실, 산재 사망이 발생해도 책임지는 자는 없는 현실이 연일 반복되고 있었지만,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은 그 영문조차 제대로 몰랐다. 부실한 수사를 해도 무죄를 결정해도 비판받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지향하는 노동부, 검찰,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산재 사망을 야기한 많은 기업들을 고발했지만, 그 결과는 예견했던 대로 실망스러웠다. 기업의 부실한 관리에 기인해 노동자가 죽었음이 명백했으나 벌금형이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마저도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대기업 원청이나 최고경영자들은 처벌을 피해가기 일쑤였고, 하청이나 중간관리자들만 처벌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발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산재 사망은 굳이 우리가 고발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노동부가 조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불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회의와 논쟁 속에서 고발은 계속되었다. 노동부 조사 과정에 고발인으로 출석해 고발의 취지와 시민사회가 주시하고 있음을 주지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솜방망이 처벌이 동일하게 반복되었지만 과거와 달리 노동부와 검찰의 법 논리상 문제점을 확인하고 비판했다. 고발인으로서 기소이유와 불기소이유를 통보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2년 8월 LG화학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다이옥산이 담겨있던 드럼통이 폭발해 20대 노동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사고를 당한 7명의 노동자가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청주지방법원은 상무를 비롯한 관리자들에게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했고, 기업에 대해서도 3,0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아 비록 처벌 대상에서 대표이사는 제외되었지만, 그 처벌 수위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면서 아래와 같은 엄중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판결문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본다.
“대기업은 새로운 재료를 경쟁적으로 생산하고 이익을 추구하기에만 급급하였고 새로운 공정에 관하여 엄격하게 안전 점검을 하거나 안전 수칙을 세우고 관련 교육을 하는 부분은 소홀히 하여 위와 같은 엄청난 희생이 따르게 되었는바,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앞으로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고 개발과 경쟁 논리에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기를 기원한다.” 청주지방법원 2013.4.11.선고 2012고단2521 2013고단409(병합) 판결 |
최근에는 이 보다 진일보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14년 4월 현대미포조선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명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울산지방법원은 하청업체 대표뿐만 아니라 원청인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에게도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했다. 산재 사망이 발생해도 원청 대표는 아예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처벌되더라도 벌금형에 그쳤던 그간의 처벌 관행에서 크게 벗어난 판결이었다.
<표> 과거 유사 사건 형량과 현대미포조선 사건 형량 비교
사건번호 |
피해 규모 |
판결 결과 (형량) |
광주지법 나주지원 2011고정248 |
1명 사망 |
하청 대표자 벌금 150만원 원청 건축부장 벌금 250만원 |
창원지법 2011노756 |
1명 사망 |
하청 현장소장 벌금 300만원 하청 회사 벌금 300만원 원청 현장소장 무죄 원청 회사 무죄 |
울산지법 2011고단2571 |
1명 사망 |
하청 사업주 벌금 300만원 원청 사업주 벌금 300만원 |
인천지법 2011고단2202 |
1명 사망 |
하청 사업주, 원청 현장소장, 원청 회사 각 벌금 1000만원 |
인천지법 2011고정578 |
1명 사망 |
하청 현장소장, 하청 회사, 원청 현장소장 각 벌금 300만원 |
울산지법 2015고단295 |
1명 사망 |
하청 대표 징역 6개월 (짐행유예 2년) 하청 회사 벌금 500만원 원청 대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원청 회사 벌금 500만원 |
주) 정해명, 간접고용․하청구조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결과 고찰, 노동건강연대 정책토론회, 2011의 표와 새로운 내용 합쳐 표를 재구성
물론, 이 같은 변화들이 그간의 고발 운동의 결과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해석일지 모른다. 그러나 고발인들이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노동부, 검찰, 법원에게 매우 신경 쓰이는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기소 이유가 되었든 불기소 이유가 되었든 고발인들이 그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고 비판할 것이란 부담이 상당했을 테니 말이다. 이러한 부담과 불편함이 작은 변화에 일조했음은 분명하다.
노동부, 검찰, 법원에 일종의 믿음을 주어야 한다. 항상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누군가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예의주시하고 있고, 누군가 그들의 불기소 이유서를 꼼꼼히 검토하고 있으며, 누군가 그들의 판결문을 차분히 모아놓고 살펴보고 있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이 쌓여야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지향하는 노동부, 검찰, 법원은 비로소 움직인다.
하기에, 우리는 계속 그들을 고발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