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2018년 1월 27일 2018노동자 건강권 포럼 ‘직장 앞에서 멈춘 촛불 노동의 자화상’
직장인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
– <직장갑질119> 의 카톡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진행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녹취 정우준 / 노동건강연대
대담 손님
왕복근 / 청년행동리빙액트
구교현 / 평등노동자회
김유경 /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
전수경)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직장갑질119> 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분들이죠? <직장갑질119> 네트워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어떻게 이슈를 사회화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실 것 같아요.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 들어와 보신 분 계신가요? 이 카톡방이 1,000명이 정원인데, 현재 20명 정도 여유가 있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손님으로 모신 분들은 카톡방에서 본인 닉네임을 가지고 상담 스텝으로 활동하는 분들이에요. 각자 소개해주시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왕복근) ‘리빙액트’라고 서울 관악 지역에서, 청년, 노동 관련된 사안들을 지역에서 이야기하면서 사업을 진행하는데요. 저희가 2015년에 심야노동실태조사를 관악구에서 진행했습니다. 그때 노동건강연대에 여러 가지 자문을 구했는데 그 인연이 돼서 <직장갑질119>에 스탭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주로 월요일 오전 3시간 상담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상담하다 보면 메일을 보내는 분들이 있어요. 이메일 답장 보내는 시간, 비는 시간을 대신 채우는 경우도 있어서 일주일에 5~6시간 정도를 <직장갑질119> 상담에 쓰고 있습니다.
구교현) 알바노조활동을 하다가 비정규직, 노조 없는 불안정한 노동자들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직장갑질119>에는 금요일 오전에 카톡방에서 상담하고, 틈틈이 카톡방을 보고 있습니다.
김유경)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노노모)이 구요. 어느 날 메일이 한통 왔어요. <직장갑질119> 라는 플랫폼이 떴다, 자발적으로 참여할 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메일이 왔는데 궁금해서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 봤거든요. 굉장히 충격,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보통 저희가 상담할 때 내용과 전혀 다른 세계가. 저는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 실시간 채팅상담을 하고, 방송계갑질119라고 따로 만들어졌는데 거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상담까지 맡게 돼서 시간을 좀 많이 쓰고 있어요. 심각한 사안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직접 만나서 상담하는 경우도 있구요. 그러다보니 수면이 굉장히 줄어들었어요.
법은 멀고 하소연할 데가 없다
전수경) 1천 명 정도가 와글거리는 카톡방, 익명의 온라인이고, 심각한 경우에 이메일 상담을 하는데, 메일답장은 노무사, 변호사들이 하고, 더 필요한 경우 만나서 상담하는 것까지 3단계로 진행되고 있어요. 대면상담까지 가는 경우는 어려운 결심을 하신 분들이죠. 노동조합, 법률원, 노무사들이 상담을 많이 해왔잖아요. 노동 상담 자원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거든요. 전화 받고, 법률전문가 연결해주는 상담이 그동안에도 많았는데 왜 <직장갑질119>에 사람들이 이렇게 몰릴까요?
구교현) 생각보다 하소연할 데가 많이 없는 거 같아요. 대화를 나누면서 보니까 당장 오늘 아침에도, 어제 밤에 술 많이 먹고 온 부장님이 내 자리에 있는 쓰레기통에 가래침 뱉었다, 도저히 못 참겠다 어디다 얘기를 하고 싶다, 검색하다가 <직장갑질119>가 나와서 카톡방에서 들어와서 이야기를 하고 이런 분들이 있어요. 그런 거시기한 일들을 당했을 때, 딱히 변호사, 노무사랑 상담할 일은 아닌 거 같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찾아오는 분들이 좀 있고요. 카톡방에 1천 명 정도가 있어도 모두가 동시에 대화를 하지는 않거든요. 대화가 일어나다가 끊기기도 하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정보도 주고, 피해자가 전문가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는 구조와는 달라요. 법률적인 정보만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많지도 않고 이러다보니, 공감하고 걱정해 주고, 위로도 하는 관계가 형성되는 게 기존의 노동상담과 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유경) 서초동 법원 옆 식당에서 일하던 분이 폭언을 듣고 해고당한 일이 있어요. 법률사무소가 많지만 그 분이 찾아가서 상담 받을 곳은 없는 거예요. 법은 멀고, 이분이 연세가 많은 분인데도 채팅방에 들어오신 거죠. 온라인으로 QA 답변 주는 사이트는 많아요. 부당해고 당했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 물으면 ‘노동위원회 가서 60일 걸립니다’ 자동 답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채팅방은 어떤 일을 하시냐, 어떻게 되신 거에요, 하고 물어요. 다 사연이 다른 거예요. 천차만별인데 그에 대해서 답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게 <직장갑질119>의 특성이다, 법률적인 면도 실제로 도움이 되는 답을 주는 방이라는 거죠.
왕복근) 익명성이 갖는 효과가 큰 것 같아요. 드러나지 않으니까 안도감이 들고, 과격한 용어도 쓰면서 가감없는 이야기를 하죠. 보통 일대일 상담하면 편하게 하지 못하거든요. 여기는 서로 비슷다하, 이야기하다가 나만 갑질당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문제가 있어서 이런 게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는 거죠. 나도 이런 일을 당했어요 하면서 주루룩 열댓 명이 자기 얘기를 해주면 혼자만 갑질 당하는 게 아니구나, 동질감 같은 게 형성되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너무 일을 키우는 게 아닐까요?’라는 말도 많이 나와요, 메일 받아보면 정말 어디서 말할 수 없는 내용인데 말하고 나니 시원하다 하거든요. 노조가 있는 회사도 있는데, 노조 찾아가서 얘기 하면 너무 작은 이야기를 크게 만드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요. 물론 실제로 작은 것도 있어요. 육아 때문에 출근이 늦어지는데, 폭언을 듣는다는 거예요. 이건 심각하다. 노조에 가서 이야기를 해도 된다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사소하거나 사소하지 않거나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거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게 법률상담과의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님도 참 답답하십니다
전수경) 듣고 계신 분들은 카톡방을 상상하면서 들으면 좋겠다 싶어요. 사람들끼리 와글거리는 재미, 공감이 힘이 큰 것 같아요. 제가 보도자료 때문에 이메일 상담내용을 볼 일이 있었어요. 답답하다, 이 정도를 못 챙기나 싶은 것도 있어요. 그러면 답변하는 노무사님이 ‘님도 참 답답하십니다’ 이렇게 타박도 하면서 친근하게 답장도 보내고 해요. 정말 답답한 분들 많더라구요. 해결 안 될 것 같은 일도 너무 많구요. 남성들은 ‘직장상사가 욕 했어요’ 이러면 그게 ‘임마’ 이런 것도 있어요. 여성들이 듣는 욕은 이년저년 그 이상의 욕들이 난무해요. 여성들이 듣는 폭언, 욕설이 상상을 초월하고 대한민국 직장이 이 정도구나 깜짝 놀랄 일이 많더라고요. 욕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규직 노동자도 있고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도 많고.
나쁜 사람, 사업주의 법률 위반만을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거죠. 특별히 악질적인 경우나 황당한 갑질이 있으면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우리는 보통 자르지 말라, 계속 일하게 해줘라 싸우잖아요, 그런데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 없는 직장인들, 그만두려면 손해 끼친 걸 갚아라, 협박을 한대요. 무서워서 그만둘 수가 없는 거예요. 인질처럼 일한다고 할까.
구교현) 쓰레기통에 가래 뱉은 그 회사는 더 물어봤더니, 우발적인 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평소 여직원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난 거죠. 성희롱 발언 같은 건, ‘어제 밤에 여자들 있는 술집에 갔는데 돈 많이 버는 거 같더라, 너도 한 번 나가보지 그래’ 이러고, 주말에 나와서 일 하라고 하고, 줄줄이 사탕이더라고요. 하나의 사건이 드러났는데 이면을 보면 이 일도 있고 저 일도 있고.
또 하나는 IT 노동자인데 일하는 곳이 지하래요. 지하 3층 정도 되는 거 같은데 지하 1, 2층은 주차장이고 사무실이 3층에 있는 거예요. 창문이 당연히 없죠. 에어컨이 있는데 고장 났대요. 한여름에 온도가 35도까지 올라가고, 한 명이 쓰러졌대요. 그제서야 에어컨을 고쳐줬다고 해요. 위에 주차장 매연이 엄청날 거잖아요. 그거 맡으면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거죠. IT 노동자가 초과근무 어마어마 하잖아요.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다 하니 참 난감했는데, 전태일 시대 방직공장 같은 얘기죠.
골프장 캐디로 일하는데 골프장에 눈이 많이 내렸나 봐요. 돈 안주고 제설작업을 캐디한테, 눈 오면 캐디한테 치우라고 하니까, 노동부에 신고를 하자고 해서 찾아갔더니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라서 우리가 도와줄 수 없소, 이런 이야기를 들은 거죠. 특수고용이라고.
회사에서 매주 등산을 간대요, 매주. 정말 매주 등산을 가고 술자리 하고. 가족이야 이러면서 어울리고. 도저히 못 가겠다, 너무 힘들다 하다가, 산에 갔다가 발목이 다쳤대요. 발목 다쳐서 말했더니 ‘걸어 다닐 수는 있지? 산에 가자’ 하더래요. 결국 갔대요.
어떤 분은 해고 통보를 받았는데 ‘왜 제가 잘려야 됩니까?’ 했더니 풍기문란이라고. 사내연애를 해서 풍기문란이라고 나가래요. 이런 일이 일어난 곳은 초과근무 해도 수당은 당연히 없고. 근로계약서가 불리하게 돼있고, 연달아 발생하는 거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공통된 불만이 있을 거잖아요. 그거를 모을 수 있는 시도를 해 봐야 하는 거죠.
김유경) 지금 이 시간, 카톡방에 올라온 상담을 보면 ‘인민재판’이 저희 상담 사례 중에 꽤 있거든요. 말 그대로 인민재판이에요. 너는 성과가 나쁘고 일을 못하니까, 사람들 앞에 세워놓고 하나하나 따지는 거죠. 너 왜 못했어, 왜 지각 했어, 따지고 징계를 받기도 하는데. 그 자체로 모욕인데 어떤 경우에는 투표를 해서 이 사람을 내보낼까 말까 이런 일도 있고. 방금 올라온 사례는 파견계약직인데, 어느 날 빔프로젝터에 여태까지의 성과 이런 거 띄우면서 기습적으로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이 새끼 저 새끼, 이 꼬라지로 일을 하냐, 신입도 너보다는 낫겠다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내고. 이 일을 당한 분은 충격이 커서 힘들다고 올렸는데, 이런 식, 모욕을 주는 사례들이 많이 있어요.
방송갑질 119 채팅방에 들어온 분 닉네임이 ‘상품권1000만원’인 거예요. 심상치 않잖아요? 20년차 카메라 감독인데 4개월치 임금을 상품권으로 받은 거예요. 두꺼운 상품권 다발을 받아 집에 와서는 이게 도대체 뭔가, 이 분 이야기는 <한겨레21>에 제보했어요.
가슴 아픈 상황은 대부분 괴롭힘, 왕따, 그림자 취급하고, 밥을 같이 안 먹고,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며칠 뒤에 사직서 냈다고 실업급여 받을 수 있냐고 연락이 와요. 혼자니까, 도움을 주려고 애를 써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가 많아요.
왕복근) 월급 150만 원을 받는데, 수당 없고 기본급만 받아라, 사장이 폭언, 욕설, 개인 일 시키고. 이 분이 ‘해결할 방안이 없겠죠?’ 하는 거에요. 사직서를 쓰고 싶다 30분 상담을 하다가, 월급 150만원이라도 받아야 된다, 사직서를 쓰면 실업급여를 못 받지 않냐, 그만둘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서울 사는 분인데, 저축이 어려워 해놓은 것도 없고, 하루 12시간 폭언을 들으면서 일을 해도, 사직서를 2년 동안 넣고 다니면서도 결국 ‘저는 사직서를 못 낼 거 같아요’라고. 그만두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하고, 실업급여를 받을 방법이 없고, 이직 준비하는 두세 달을 버틸 수 없는 분들이 많아요. 실업급여를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인데 대기업에 다니는데. 애가 병원 갈 때 한번, 초등학교 추첨 때 한번 반차를 썼는데, 승진 심사를 코앞에 두고, 인사고과 최저점을 받았대요. 임원이 평소 여성은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노동조합이 있으니까 얘기하면 좋을텐데 여성이라서 겪는 문제다, 작은 일을 키우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고 하더라고요.
사회생활이 그런 거지,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전수경) 직장갑질119가 처음부터 ‘동지’, ‘활동가’ 이런 말 대신 부담 없는 용어로 ‘스탭’이라는 말을 쓰기로 했는데,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노동조합이나 노동부가 정해 놓은 상담의 틀에서 하기 어려웠던 이야기가 풀린 거 같거든요. 정규직/비정규직 담론이 있는데, 그 틈새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나만의 문제로 쌓아놓고 있던 거라서. 우리가 만난 직장은 노동문제로 프레임지어 왔던 것과 다른 것 같아요. 집단적인 노사관계로만 바라보던 세계가 아닌 거죠. 우리 사회의 직장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로 질문을 옮겨볼까 합니다.
구교현) 연구대상인데요, 작은 회사에 직급이 낮고 여성이고,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죠. 그런 상황에서 갑질이 계속 쌓이고. 대한민국이 서열 사회잖아요. 학교가면 선생님 말 잘 들어야 하고, 직장 다니면 상사 말씀 잘 들어야 하고. 원청과 하청, 하청과 하청, 도급 사슬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갑질의 낙수효과라고 해야 하나. 위로부터 떨어진 갑질이 쭉쭉 밑으로 내려오고, 최말단에서 당하는 분들이 직장갑질119 문을 두드리는.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함부로 쓰고 함부로 버리는 일들도 계속 일어나는 것 같구요.
김유경) 학교에 들어가면, 외국처럼 학교에서 단체교섭을 가르치는 정도는 아니라도 최근에는 노동법 교육이 좀 이루어지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노동 자체에 대해서 얘기 하거나 고민을 해볼 기회가 없이 학교를 다니고 남성들은 군대에 가겠죠. 상명하복 조직에 있다가 나와서 취준생으로 한 3-4년 있다가 엄청난 경쟁을 뚫고서 간신히 직장에 들어가면, 빠릿한 신입사원으로서 시키는 거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방송계 쪽에서는 ‘막내 작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막내’라는 말을 쓰는 순간부터 만능맨이자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뭘 시키든 다 해야 하고 갑질은 항상 겪고. 그렇게 고생스러운 초년기를 거치고 나서 힘들게 승진을 해서 올라간다고 하면 그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할지는 예상이 되는 거죠. 똑같이, 이런 구조들이 반복되고 있고, 그 와중에 성과주의가 버무려지니까, 동료끼리 경쟁대상이고.
왕복근) 상사한테 바른 말해서 부당전보를 당하고 그림자 취급을 받는 분이 있었는데, 이거를 하소연 할 데가 없으니까 가족에게 먼저 말을 했나 봐요. 아버지가 딱 이렇게 말씀했다고 해요. ‘사회생활은 원래 그런 거야. 너가 할 수 있는 거 아무것도 없고. 상사 말을 잘 듣지 그랬어’ 갑질은 사회생활이다, 사회생활을 하면 다 겪는 건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구니. 너가 잘하지 그랬어 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한테 굉장히 많이 듣고 있고.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런 말을 쉽게 듣는 상황이예요. ‘갑질 = 사회생활’ 로 보니까, 이 분위기가 만들어 낸 효과들이 있어요. 사회가 이런 줄 몰랐어요 하는 분들이 가끔 있거든요. 주변에 이야기하면 ‘야 나도 그래’ 이런대요, 이 방은 ‘억울하겠네요’ 라고 해 주죠. 갑질이 사회생활의 당연한 요소로 받아들이는 부분들이 있는 거죠.
‘저는 하급자에게 갑질을 당하는 상사입니다’ 하고 들어오는 분들이 있어요. 이야기하는 맥락을 보면 좀 다른 점이 있는데, 저는 회사를 위해서, 제가 회사와 하급자 사이에 중간 관리자로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우리 입장도 좀 고민해 달라, 이런 얘기를 굉장히 하더라구요. 본인과 회사를 일체화 시키거나 회사를 인격체처럼 생각해서 공감을 하는 거예요. 별 걱정을 안 해도 될 회사인데 친구 일처럼 걱정을 하면서 ‘제가 이렇게 하면 회사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회사는 어떻게 하죠?’ 종일 회사에 끼여서 살아가잖아요. 회사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신입사원부터 관리직까지 다 몸에 배서, 명분이 되는 거죠. 내 갑질은 회사를 위한 거야. 회사가 돌아가려면 이렇게 해야 해.
카톡방도 모두가 들어오기 편한 건 아냐
전수경) 상담에 등장하는 않는 분들이 건설현장이나 공장에 계신 분들이에요. 카톡방에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사실은 카톡방 들어오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요. 퇴근해서 여기 계속 서식하는 분들도 피곤함을 물리쳐 가면서 밤에 여기서 서로 이야기 나누고 출근하고 하더라구요. 얼마 전에 공단 지역에도 플래카드를 걸어보고 상담을 받아보자, 거기는 파견이 워낙 많으니까 파견과 관련해서 조금 더 상담을 받아보자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 결과를 좀 봐야할 것 같아요.
힘이 없는 사람한테 권리주장을 하라고 하는 노동법 교육, 안전교육, 이런 거 시켜서 뭐할까. 왜 대들지 않았냐, 왜 당하고만 있었냐, 이렇게 말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인가, 물론 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요. 인권교육, 노동법교육이 교육의 전부인 것처럼 했지만, 바뀌어야 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 아닐까요.
왕복근) ‘지르고 나올까요? 조용히 사퇴서를 쓸까요?’ 뭔가 저지르고는 싶은데 이걸 어떻게 저지르지, 이런 고민을 하는 분이, 그냥 부서 안에서 혼자 저지르는 것보다는 노조가 있으니까, 가는 것이 방법이다 이야기했어요. 이 분은 조용히 나갈까 시끄럽게 나갈까 고민하는 상황에서, 문제제기를 할 거면 노조를 통해서 세게 하는 게 좋겠다, 조용히 나가시면 뒤에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혼자 이상한, 혼자 억울해서 난리치다가 나가는 것처럼 하지 말고, 고민을 해보는 게 좋겠다 말씀드렸죠.
전수경) 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상담을 요청했다가 직장갑질119에 연락해 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해온 분도 있어요. 노동법이나 근로감독관으로 해결하기 어려운데, 노동청에 갔다가 오는 분도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직장갑질119를 반가워하는데, 그 이유가 진정 건은 되지 않으면서 인권침해는 맞고, 이런 거는 법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노동부에서는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부분에서 계속 이렇게 사례가 모여야 사업장에 개입할 수 있는 매개가 되기도 합니다. 이 활동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요.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사람들, 돌아가는 길, 다른 길도 찾아보자
구교현) 직장갑질119 하면서 예전에 알바노조 활동 할 때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요. 소규모 사업장에 소수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지금도 노조를 만들 수 있고 만들어서 교섭 요구하는 절차가 있지만 작동하지 않잖아요. 직장갑질119 활동의 경험과 고민이 이런, 현재 노조를 만들 수 없는, 그러나 부당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으로서는 ‘노조를 만드세요’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다른 방법이 있으면 안 될까. 노조를 만들어야 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노조를 만들어야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건데, 다른 수단, 이를테면 법률용어에 대항권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건물주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임차인이 재계약을 요구한다든가, 이런 대항권 개념, 개별노동자들이 대항할 수 있는 수단, 노조가 없더라도 교섭에 준하는 절차를 요구한다든지, 노조가 없어도 시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안 되면 제 3의 기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든지, 카톡방 보면서 익명 신고제도가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거든요. 드러나면 불이익 받을게 뻔하니까 제보를 못하잖아요. 익명으로 신고하는 제도, 3자가 신고할 수 있는 제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제3자 진정이 가능하잖아요. 기존의 노동조합이나 직장갑질119 같은 단체도 그런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노동자가 최소한의 수준으로 저항할 수 있어야 노조가 필요하구나, 할 수 있고요.
전에 독일 서비스노조 활동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저희가 맥도날드 알바노동자 조직하는 사업을 알바노조에 하면서 물어보니까 독일은 모든 사업장마다 정례 교섭을 의무적으로 하는 제도가 있대요. 노조가 있든 없든, 모든 맥도날드 매장에서 노동자들의 고충을 정기적으로 접수하고 처리하는 절차가 있고 그 절차에 노조가 개입할 수 있다, 노조가 없는 맥도날드 매장에서 노조에 도움을 청하면 자문해 주고, 노조를 경험하게 되고, 매장에서 노조를 만드는 사례도 나오고. 그래서 노조로 가기 위한 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고 그런 힘이 있어야 수평적이고 평등하게, 갑질을 안 주고 안 받는 아름다운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전수경) 노동운동이 사회적 역할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직장갑질119가 잠시 대체한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 교육, 더 많은 인권의식 확산이 같이 간다면 해결될 문제도 있겠죠.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고, 기업별 노조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닌 방식이 되면, 지금 카톡방에 들어와 있는 많은 분들에게 노사정 또는 노정 교섭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개별노동자들이 가진 어려움을 계속 끌어안은 채로 네트워크가 가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보이기 때문에. 양대 노총, 노동부, 국가인권위 등은 이 상황을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노총에 속한 대기업이나 기업별 노조, 이런 곳에서는 사례들을 살펴보고 나아갈 길에 대해서 성찰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