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발생 원인을 '불완전한 행동'에서만 찾으면 안돼_노동건강연대 이상윤 대표 인터뷰.png

고 김용균씨의 사망사고를 계기로 우리나라 안전보건계에는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의 사망사고는 사실상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개정되는데 큰 기폭제 역할을 했다. 또한 산업안전에 대한 전 사회적인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5명 이상이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으며, 안전이라는 가치는 경제적 이윤 앞에 위치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안전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전개돼야 할까.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에게 그 해법을 들어봤다. 

취재 / 정태영 기자(anjty@safety.or.kr) 


Q. 노동건강연대 및 대표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노동건강연대는 산재를추방하고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2001년 6월 창립된 사회운동단체입니다. 사실 노동건강연대의 전신은 1988년 발족된 ‘노동과 건강연구회’ 입니다. 연구회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노동운동가, 산업보건전문가 등이 노동조합의 안전보건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연구회는 10년 동안 활발히 활동하다가 1988년 해산했고, 그 정신을 노동건강연대가 이어받은 것 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연구회는 노동조합의 안전보건활동을 지원하는데 주력했고, 노동건강연대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실태를 알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데 있습니다. 

저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로서 ‘노동과 건강 연구회’에서 활동을 하다가 노동건강연대 창립에 주도적으로 나섰고, 현재는 대표직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녹색병원에서 특수건강진단 등의 산업보건업무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Q. 1월 15일 전부 개정 산안법이 공포됐습니다. 그 성과와 남은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사회운동단체의 관점에서 평가해보면, 법이 나아가야 할 전반적인 방향과 중요 사안들에 대한 정리가 잘 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법적 보호대상을 확대한 것은 그동안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꾸준히 제기애왔던 것으로 이번 법 개정에 상당부분 반영된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개정법이 현장에서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 것이냐, 즉 현장 작동성 측면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법은 선언적인 규정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기준이 되며, 그 기준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규제하는 것이 법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정 산안법이 현장에 안착될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것 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개정 법에서는 위험의 외주화 근절을 위해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사내 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법 조항만으로는 원청이 구체적으로 어떤 안전 및 보건조치를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벌칙조항이 강화된 상황에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이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현장에서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도급 금지조항과 관련해서는 협력업체가 아니면 수행할 수 없는 없무를 제외하고, 모든 도급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우리나라 산업재해 발생 양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A. 산업재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안전선진국과 달리 추락, 협착, 전도 등 이른바 재래형 재해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 재해는 다른 재해유형과 다리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과 관심으로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안전공학적으로 예방법이 많이 나와 있고, 개선 우수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재래형 재해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동일 사업장에서 격년, 심지어 매년 비슷한 유형의 재해가 발생한 사례를 수 없이 찾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세번째 특수성으로 대기업 사업장도 절대 산업재해의 안심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특수성이 발견되느냐를 분석해 봐야 합니다. 흔히들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서 안전이 등한시된 점이나 위험의 외주화, 높은 비정규직 사용 비율 등을 꼽지만 단순히 그것들 만으로는 우리나라 재해의 특수성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사민정학계가 마음을 열고, 충분히 논의해서 재해 발생의 특수성을 이해 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Q.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산안법 상의 처벌이 아무리 강화돼도 지금처럼 업무상 과실치상죄를 주로 적용한다면 처벌규정은 있으나마나한 것입니다. 때문에 기업이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소홀히 해 사망재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해당 기업을 살인죄에 버금갈 정도로 엄하게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법이 만들어지고 제대로 시행되기까지 우리 앞에 산적한 과제가 많습니다. 


Q.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및 시행에 앞서 어떤 부분들을 해결해야 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은 상황, 사회적인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정될 수도 없고, 제정 되어도 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산업재해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산업재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운명성, 부수성, 개인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먼저 ‘산업재해는 운명이다. 그 사람이 운이 없었다’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또 ‘산업재해는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피해다. 안타깝지만 경제적으로 보상해 주면 된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잘못해서 재해를 당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인식이 만연한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활동을 억제하는 과잉법안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Q.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안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해 왔습니까. 안전보건교육과 각종 캠페인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안전, 산업재해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차이가 있을까요. 물론 1960~1970년대에 비해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의 변화를 위해서는 재해 원인 조사방법을 다양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연구결과와 논문에서 재해원인의 8~90% 정도를 불안전한 행동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재해가 인적 오류로 인해 발생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 결과를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기계, 컴퓨터 처럼 완벽하지 않고 언제나 실수하기 마련이니까요. 

제가 지적하는 것은 ‘불안전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재해가 발생했다’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인적 오류를 상수로 두고 재해원인을 조사하고 예방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재해 원인을 ‘불안전한 행동’이라고 매몰해 버리면 절대 발전적인 대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정부와 안전보건전문가들이 재해원인 조사방법을 다양화 한다면 이후에는 예방 가능한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취했다 해도 미흡해서 사망재해가 발생한 경우 기업의 태만, 중과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이라고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Q. 불안전한 행동을 상수로 두고 재해예방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하셨는데, 예를 들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재해 원인을 인적요인이라고 판단해 버리면 ‘그렇게 안전대 착용하라고 했는데, 결국 말을 듣지 않아서 사고를 당했네’, ‘출입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듣지 않아서 변을 당했네’ 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안전보건교육을 하고, 현장점검을 하면서 안전수칙 준수여부를 점검하고, 불안전한 행동에 대해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현한 것입니다. 이 같은 안전보건관리도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 모두에게 안전의 중요성과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고,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전환의 계기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입니다. 

건강분야에서 비슷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금연은 건강분야에서 가장 큰 목표 중 하나 입니다. 예전에는 ‘왜 금연을 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원인 분석을 하면 ‘의지가 약해서, 동기부여가 안돼서’ 등과 같은 결과가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인적 요인에 중점을 둔 것이지요. 때문에 자연스럽게 흡연의 악영향을 알리고, 금연에 따른 보상책을 제시해 왔던 것 입니다.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듯이, 이 방법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행한 것이 흡연에 대한 사회적인 구조를 바꾼 것 입니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담뱃값을 대폭 인상하고, 흡연이 가능한 장소를 최소화 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담배연기가 본인은 물론 타인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흡연 자체를 막기 보다 자율에 맡기되 제도적, 구조적으로 최대한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유럽의 흡연률은 크게 낮아졌습니다. 

안전관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불안전한 행동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은 분명 필요하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안전이 경영가치의 하나로 기업의 모든 시스템에 녹아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업 경영과 안전을 별개라고 생각하거나, 안전을 부수적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고, 안전을 기업경영의 철칙으로 삼고 제도화 해 나가야 합니다. 


Q. 산재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한 사회적 지원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A. 산재 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원직장 복귀 입니다. 산재 노동자도 치료나 재활이 끝난 이후 기본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경제적인 활동에 나서야 합니다. 하지만 장해의 정도를 떠나 원직장 복귀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원직장 복귀율이 60%대에 불과한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설사 원직장에 복귀를 했다고 해도 산재를 개인 책임으로 전가하고, 산재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우리나라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인력과 시설, 자금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이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숙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임금체불을 예를 들어 보면, 노동자는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그 대가로 임금을 지불합니다. 근로에 따른 대가인 임금이 체불 됐을 때 임금체불이 발생 했다고 하지요. 그리고 사업주는 임금체불에 따른 다양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현대적인 고용관계 에서는 안전도 이 범주에 들어가야 합니다. 노동자는 근로를 제공하고, 사업주는 임금과 함께 안전한 사업장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법적으로 이렇게 명시돼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임금과 안전을 동일한 선상에서 놓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안전이 후순위로 밀린 것 이지요. 이 문제를 소규모 기업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 경제구조에서부터 문화, 인식체계 등 전반을 바꿔야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문제가 해결될 것 입니다. 

안전기술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