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PS의 고통을 아시나요
송수빈씨를 자살로 내모는 극심한 고통… 같은 환자인데도 산업재해 요양·보험의 승인 결과는 제각각
▣ 글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송수빈(45)씨는 한때 자신이 타고 다니는 휠체어에 휘발유를 지니고 다녔다. 분신자살을 하기 위해서다. 실제 몇 번 시도하기도 했다. 무엇이 송씨를 이런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몬 것일까.
보건복지부의 의견을 공단에서 거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라는 병에 걸리면서부터다. 1998년 2월 송씨는 아파트 공사장에서 콘크리트를 치고 있었다. 구조물을 지탱하던 쇠기둥이 쓰러지면서 송씨의 무릎을 쳤다. 인대가 파열됐다. 사고가 난 직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수술 3주 뒤부터 극심한 통증이 나타났다. 망치로 못을 박는 것처럼 무릎이 쑤시고 다리는 칼로 썰리는 듯했다. 일산백병원의 박장수 교수가 “CRPS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 5월29일, 일산 백병원 통증클리닉에서 CRPS 치료를 받고 있는 송수빈씨. 송씨는 매주 3~4번씩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다.
CRPS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로 손이나 발 등 신경섬유의 말단부가 많이 모인 신체부위가 외상을 입어서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병의 특징은 상처에 견줘 극심한 통증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CRPS에 시달리는 이들의 마지막 희망은 ‘척수신경자극기’(이하 척수자극기) 수술이다. 몸 안에 배터리를 넣고 통증 부위에 전기 자극을 주어 통증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척수자극기는 13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다. 많지 않던 벌이마저 끊긴 송씨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당뇨, 위염 등의 합병증이 그를 괴롭혔다. 고통을 참을 수 없었던 송씨는 CRPS 치료를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비 급여 신청을 했다. 그러나 급여 신청을 심사하는 자문 의사들은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고, 공단은 송씨를 병원에서 ‘강제 퇴원’시키는 조처를 내렸다. “강제 퇴원당했을 때는 너무 비참하고, 너무 아파서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심사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송씨는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했고, 다시 산재 요양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2005년 7월21일 기쁜 소식이 들렸다. 보건복지부 의료급여과에서 “척수자극기 시술 전액을 의료급여로 지원한다”는 민원 답변을 보내온 것이다. 같은 해 8월 송씨는 일산백병원에서 척수자극기 시술을 받았다. 드디어 휠체어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백병원이 공단에 척수자극기 시술비를 청구했지만, 공단은 “척수자극 시술의 보험급여 혜택에 대한 세부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으니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술 1년이 지난 2006년 6월1일 보건복지부는 ‘6개월 이상의 적절한 통증 치료에도 효과가 없고, 바스(VAS) 통증 점수 7 이상인 심한 통증이 지속될 경우’에만 척수자극기 시술비를 지원해주겠다는 내용을 고시했다. 결국 공단은 지난 4월25일 송씨의 통증 점수가 7 이하라는 이유로 시술비 지원을 부결했다.
송씨의 주치의인 일산백병원 박장수 교수는 “황당하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산업재해의 요양급여 산정 기준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하는 요양급여 비용의 내역에 의한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제17조)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애초에 척수자극기 시술을 지원해주겠다는 보건복지부의 결정을 공단이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쪽은 송씨의 경우가 “과잉 진료였다”고 맞서고 있다. 진료비심사팀 김태수 차장은 “건강보험에서 인정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산재보험 재정에 부담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둘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일산백병원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도 다음달 초에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할 예정이다. 공단이 CRPS 증상이 매우 심한 이 병원 환자 박상곤(40)씨의 척수자극기 시술에 대한 의료급여 지원을 부결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자동차 문을 만드는 400t짜리 ‘프레스’에 왼쪽 어깨를 맞고 왼쪽 팔을 절단했다. 고대 구로병원의 최상식 마취통증과 교수는 “박씨의 경우 팔을 절단했기 때문에 고통이 더 심해 척수자극기를 두 개나 설치했다”고 했다. 반면 손가락 신경을 다쳐 CRPS가 온 이한길씨는 척수자극기 시술비를 지원받았다. 이씨는 “나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환자들이 많은데, 나만 척수자극기 지원을 받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산재 자문단도 판정할 여건이 안 돼
척수자극기 시술 지원은 고사하고 아예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마영희(46)씨는 화장품 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화장품 용기 기름 제거’ 일을 하다가 오른손 집게손가락 관절에 염증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곧 오른손에 CRPS가 왔다. 그러나 공단에서는 마씨의 CRPS 요양·보험 급여를 승인해주지 않았다. 마씨는 치료비 마련을 위해 1800만원이던 전셋방을 빼 1천만원짜리 전셋방으로 옮겨야 했다. 마씨와 같은 병원을 다니는 CRPS 환자 이정택(40)씨는 산업재해 치료가 종결된 지 2년이 지난 2007년 2월 노무사를 통해서 가까스로 요양 승인을 받았다. 치료가 종결됐다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같은 CRPS 환자인데도 왜 산업재해 요양·보험의 승인 결과는 제각각인 걸까? 명확한 심사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CRPS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고 관련 전문가가 없는 것도 ‘뒤죽박죽 CRPS 산재 보험 적용’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사정은 근로복지공단 쪽에서도 잘 알고 있다. 김태수 차장은 “산재를 심사하는 자문 의사들이 대부분 신경외과 등 외상성 담당 의사들이기 때문에 CRPS를 판단할 만한 여건이 안 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로복지공단 지사마다 천차만별의 CRPS 심사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21>은 CRPS 환자들의 산재보험 적용 실태에 대해 공단 쪽에 문의했지만, 공단 관계자는 “조사한 게 없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 CRPS로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를 받은 환자는 2005년까지 1만1461명이다(희귀난치성질환센터). 보험과 급여 적용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포함해 실제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 뒤죽박죽 지원이 이뤄지는 것일까. 현실적인 이유는 돈이다. 김 차장은 “1년에 보험급여 예산이 3조~4조원이고 요양급여 비용이 7천억원인데, CRPS를 장애로 인정하고 척수자극기 시술을 다 해주면 지출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박상곤씨는 “공단 관계자가 ‘병원에서 척수자극기 시술을 하라고 하면 하십시오’라고 말해서 공단이 시술비를 지원해줄 거라 믿고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재정 압박을 이유로 CRPS의 산재보험 적용 여부를 편의적으로 결정하다 보니, 정작 보험 적용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마음 졸이지 않고 치료받았으면…”
법률사무소 ‘서로’의 이강일 실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CRPS 산재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치료를 못 받다가, 통증이 전신으로 확산돼 합병증 등으로 죽게 된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최상식 교수는 “대부분의 CRPS 산재 환자들은 사회·경제적 환경이 열악한 탓에, 구제 절차를 밟아 문제를 해결할 여건이 안 된다”고 말했다. 치료의 기회마저 차단되는 것이다.
“3개월마다 하는 재요양 신청 심사에서 잘릴까봐 조마조마합니다. 제발 마음 졸이는 일 없이 치료받고 싶어요.” 송수빈씨의 간절한 호소는 CRPS라는 병명만큼이나 우리에게 낯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