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석면의 공포] ‘반환 미군기지’ 석면 덩어리 함께
석면이 많이 들어간 건축자재가 쓰인 대표적인 건물의 하나가 미군기지다. 대부분의 미군기지는 석면의 위험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에 지어졌다. 기지내 환경 문제가 토양·지하수 오염에 초점이 맞춰져 왔지만 석면의 위험성은 간과됐다.
우리보다 먼저 석면 피해를 경험한 일본에서는 1986년 미 해군 요코스카 기지가 석면 폐기물을 불법 투기한 게 밝혀지면서 석면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했다.
일본 가나가와 산재직업병센터에 따르면 요코스카 기지에서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모두 98명의 일본인 근로자가 석면으로 인한 산재 판정을 받았다.2002년에는 미군기지 석면피해자 16명이 국가(고용주)와 미군(사용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텄다.
우리나라 실정은 어떤가. 보상은커녕 석면이 전혀 제거되지 않은 채 미군 기지를 되돌려받는 중이다. 한·미 양국이 2004년 체결한 연합토지관리계획(LPP)과 용산기지이전협정(YRP)에 따라 2011년까지 66개의 미군기지가 반환된다. 경기도 화성 매향리사격장 등 23개 기지가 지난달 31일까지 우리 정부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기지에서는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가 복구되지 않고 반환됐다. 환경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단병호 의원(민주노동당)에게 제출한 9개 기지의 오염 조사결과에 따르면 매향리 사격장 토양에서는 중금속인 납이 기준치(100㎎/㎏)의 34배가 넘는 3445㎎/㎏이 검출됐으며, 의정부의 에셰욘 캠프의 지하수에서 검출된 TPF(석유계총탄화수소)는 1298㎎/ℓ로 기준치(1.5㎎/ℓ)의 865배다.
석면은 미국측이 책임지고 처리해야 할 8개 치유항목인 지하유류저장탱크 제거, 변압기 절연유 제거, 유출물 청소, 저장탱크 유류배출 등에 포함되지 않았다. 환노위 우원식(열린우리당) 의원 측은 “그동안 미군에 석면 처리를 꾸준히 요구해 왔으나 묵살됐다.”면서 “오는 25일부터 열리는 ‘반환 미군기지 환경치유에 관한 청문회’에서 석면 문제를 다시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 미군은 자국의 석면 관련 법에 따라 한국 기지의 어디에 석면을 많이 사용했는지 파악해 왔다. 해체 작업도 진행해 왔다. 그러나 반환이 결정된 이후부터는 해체 작업이 중단된 상태이고, 그들이 그린 ‘석면 지도’는 한·미행정협정(SOFA)상 외교문서로 분류돼 공개되지 않고 있다.20여년간 미군기지의 석면 해체 작업을 맡은 한 업체의 사장은 “기지 건물의 지붕, 하수도 파이프, 기계실, 난방실 등이 온통 석면 제품이었다.”면서 “반환 결정이 나면서부터 일감이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석면이 함유된 건축물 등은 오염 폐기물로 볼 수 없어 미국에 치유 의무를 부과하기 힘들다.”면서 “반환 완료 뒤에는 ‘공여구역 주변지역 지원특별법’에 따라 우리 정부가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