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지역, 그곳에서 숨 막히는 주민들
석회 분진, 지역민들에게 폐질환 일으켜
오마이뉴스 09.06.24 엄두영 (eomdy)
만성폐쇄성 폐질환, 영월, 시멘트 공장, 진폐증
“어떻게 밭에서 일하는 농민이 진폐증 환자가 될 수 있나?”
우리에게는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강원도 영월군 쌍용면 주민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김원태씨의 말입니다. 진폐증이란 폐에 분진이 침착하여 이에 대해 조직 반응이 일어난 상태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광산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김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진폐환자로 확진된 농민은 탄광에서 일한 경력이 있거나, 살고 있는 지역이 탄광의 갱도와 같이 먼지와 분진이 많이 날리는 지역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진폐증 환자만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지난 17일 환경부가 강원도 영월군 서면과 쌍용면 시멘트 공장 주변지역 주민에 대해 실시한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환경부가 국립환경과학원, 인하대 연구팀과 공동으로 영월 시멘트공장 주변지역 주민 건강을 조사한 결과, 참여주민 1396명 중 성인유효 조사자 799명 중 379명(47.4%)이 폐활량 등 호흡기질환 검진에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의 가능성을 보이는 유소견자로 진단됐습니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전 국민의 만성폐쇄성폐질환 유병률 16.1%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수치인 것을 보면 시멘트 공장 주변에 살고 있는 것과 질병의 발생이 뚜렷한 연관관계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증상이 심각한 16명을 CT촬영 해봤더니 폐암 1명과 폐암의심증 1명, 진폐증 5명, 폐렴과 폐결핵 9명이 각각 확인됐습니다.
임종한 인하대 산업의학과 교수는 “이번 조사엔 영월만 포함되어 있다”면서 “분진 노출의 정도가 다른 시멘트 공장 주변지역에도 비슷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즉 이번 호흡기 질환의 문제가 영월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는 말입니다.
충북 제천과 단앙에서도 영월과 유사하게 시멘트 공장이 가동되고 있고, 주민들의 민원 발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이번 파문은 인근 시멘트 공장 지역에도 확산될 전망입니다.
시멘트 폐자재 처리, 설상가상
“농민이 진폐증 환자로 판명되는 등의 일이 이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죠”
시멘트 공장은 반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영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김 회장의 주장에 따르면 시멘트 공장의 문제는 지난 1999년 이후 자원의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시멘트 소성로에서 폐기물 재활용을 허용한 이후에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임종한 교수도 “폐자재 처리로 인해 유해물질이 증가하게 되고, 중금속과 발암물질 등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서 폐기물 재활용과 호흡기 질환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주민의 절반이 만성폐쇄성 폐질환
진폐증과 폐암과 같은 중증 질환도 문제가 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주민의 절반가량이 만성폐쇄성 폐질환의 이환 비율이 무려 47%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만성폐쇄성 폐질환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알지 못하는 새로운 병을 얻은 것 같이 의아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질환은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흔한 질환이며 다만 용어가 생소하기 때문에 문제로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만약 만성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해소, 기침, 만성기관지염 등에 걸렸습니다”고 한다면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시멘트공장 지역 주민들이 만성폐쇄성 폐질환에 걸릴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호흡을 할 때 공기는 기도를 지나 허파꽈리(폐포)에 들어가며 이곳에서 산소를 섭취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게 됩니다. 강홍모 경희의료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든 기도가 좁아지면 공기 이동에 지장이 초래되어 호흡곤란이 나타나며, 이것이 만성적으로 진행되면 만성폐쇄성폐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 만성폐쇄성 폐질환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담배이지만, 영월의 해당 지역 주민들의 경우 기도가 좁아지게 만든 원인이 시멘트 공장의 가동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만성폐쇄성 폐질환, 최선의 치료는 예방
만성폐쇄성 폐질환의 경우 한 번 나빠진 폐 기능은 쉽게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40~50대 이후에 주로 발병하고, 나이가 들수록 악화되는 병의 특징으로 볼 때 병이 이환된 이후 치료를 하는 것보다 미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가장 좋은 치료법은 병의 위험인자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위험인자를 제거하는 것이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예방과 진행을 감소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임종한 교수도 “시멘트 공장의 분진 배출을 엄격히 통제하는 등 위험인자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한편 일반적인 만성폐쇄성 폐질환의 위험인자로 가장 중요한 것이 흡연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 중 흡연을 하는 경우 하루라도 빨리 금연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적인 만성폐쇄성 폐질환의 경우 약물 투여로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월의 해당지역 주민들의 경우 위험인자인 석회 분진을 얼마나 신속하게 회피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만성폐쇄성 폐질환에 걸린 주민들, 어떻게 하나?
이미 만성폐쇄성 폐질환에 걸린 주민들이라면 규칙적인 운동을 추천합니다. 운동을 통해 호흡곤란 및 피로 증상 등이 좋아지기 때문에 적절한 운동은 필수적입니다. 외국에서는 만성폐쇄성 폐질환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재활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있으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상태입니다.
서지영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걷기 등 다리 운동은 폐 기능을 좋게 하진 못하지만 환자들의 운동능력을 좋게 해주며, 팔과 어깨 운동도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너무 숨이 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꾸 움직이고 운동을 해야,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근육이 줄고 약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석회 분진의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최선의 방법은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안전한 곳으로 신속히 이주시켜야 합니다. 이 질환이 환경질환이다 보니 지역의 환경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그렇다고 약을 복용하면서 석회공장 지역에 사는 것도 임시방편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추천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
한편 영월지역 뿐만 아니라 다른 제천이나 단양 등 다른 시멘트 공장지역도 영월과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사와 함께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