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직업병도 심의신청 해보세요”
은행원 ‘돈독’손가락 습진, 수영강사 저체온증…
노현웅 기자
역학조사로 ‘업무 관련성’ 인정되면 새 직업병 판정
올해 초 은행에 입사한 최아무개(26)씨는 지점에서 근무를 하며 돈을 많이 세다 보니 손가락 끝이 갈라지고 습진처럼 짓무르는 일이 잦다. 최씨는 “흔히 말하는 ‘돈독’이 오르는 것”이라며 “다른 신입사원들도 대부분 같은 증상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손크림을 바르며 참는 게 보통이지만, 심한 경우 병원을 찾기도 한다.
물리치료사 홍지균(33)씨는 “물리치료사 일을 오래 하면 오히려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리치료를 하다 보면 무리한 자세를 많이 취하고 과도하게 근육을 사용하는데, 이를 지속하다 보면 체형이 뒤틀리기 때문이다. 홍씨는 “나는 그렇게 오래 일한 편은 아닌데도 일과를 마치고 나면 허리와 어깨가 결리고 아프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남들이 잘 몰라주는 생활 속 직업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직업이 등장하면서 직업병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성북구 ㄱ스포츠센터에서 수영 강사로 12년째 일하고 있는 유영준(39)씨는 “감기를 달고 살다시피 한다”며 “물속에서 체온을 뺏겨 저체온증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체온증으로 심장에 흐르는 혈액의 온도인 중심 체온이 35℃ 이하로 내려가면 심장·뇌·폐 등의 기능이 떨어져 몸의 저항력이 약해진다. 유씨는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스킨스쿠버용 잠수복을 입지만 역부족이다. 또 물에 오래 접촉하다 보니 주부습진과 무좀으로 고생하는 것은 기본이다.
네일아트 일을 하고 있는 이청자(39)씨도 허리와 목이 아파 고생하고 있다. 온종일 몸을 구부린 채 손톱만 들여다보려니 무리가 온 것이다. 이씨는 “일을 마치면 팔을 들어올리지도 못할 만큼 팔목과 어깨가 아프다”고 말했다.
이런 낯선 직업병들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은 상태다. 근로복지공단 요양팀 전홍덕 차장은 “네일아티스트나 물리치료사는 신종 직업군이라 아직 직업병 심의 신청이 들어온 적은 없지만, 업무 관련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수영 강사의 저체온증과 은행원의 돈독 오른 손가락도 증상이 지속된다면 직업병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재해 발생 보고서를 보면, △급식 조리사가 피부염에 걸린 경우 △카메라 렌즈 조립사의 오십견 △용접공이 망간과 중금속에 노출돼 파킨슨병에 걸린 경우 등이 새로운 직업병으로 판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