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보편적이지만 영향은 개별적이다. 특히 노동에서 그렇다. 사람들이 일터에서 사라지고 있다. 노동과 방역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좋은 노동환경이 좋은 방역 환경을 만든다.

5월1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코로나19 긴급행동’이 열렸다. 집회는 방역 물품을 착용한 채 진행됐다.ⓒ시사IN 신선영

코로나19 이후 노동의 일상이 바뀌었다. 출근 시간 직장 대신 집에서 컴퓨터를 켠다. 회의실 대신 모니터 안에서 직장 동료를 만난다. IT 플랫폼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고 유연근무제로 노동시간을 조정한다.

코로나19 이후 노동의 일상은 바뀌지 않았다. 배달 노동자 여럿이 과로로 쓰러져 죽었다. 시급 4200원을 받는 77세 간병 노동자는 코로나19 감염 환자를 돌보다가 그 자신도 감염돼 목숨을 잃었다. 가연성 물질이 도처에 널린 공사 현장에서 안전장치 없이 일하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38명이 한꺼번에 숨졌다.

바이러스는 보편적이지만 그것으로 인한 영향은 개별적이다. 특히 노동에서 그렇다. 각자 처해 있던 노동환경에 따라 코로나19가 아무 변수가 아니기도, 기회가 되기도, 위험을 높이기도 한다. 노동 불평등의 골은 이미 패어 있었다. 그 골이 코로나19 이후 더욱 깊어질까? 혹시라도 전환의 계기가 될 수는 없을까? 위기에 빠진 노동자를 구제할 사회안전망은 어떻게 짜야 할까?

‘주간 코로나19’ 이번 주제는 ‘노동’이다. 한국 사회 노동체제와 불평등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일터에서 죽거나 다치거나 ‘갑질’ 당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싸워온 박혜영 노무사(노동건강연대 활동가)와 함께 코로나19 이후 노동의 변화를 거시적·미시적으로 살폈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예방의학 전문의)과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감염내과 전문의·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은 7회째 이어지는 주간 코로나19의 고정 멤버다. 대담은 5월6일 오전 서울 사당동 한 스터디카페에서 진행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첫날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5월6일 대담이 진행됐다. 왼쪽부터 임승관 안성병원장, 박혜영 노무사, 신광영 교수,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시사IN 신선영

임승관:내가 속한 경기도 긴급대책단도 지금까지 비상체제로 인력을 파견하고 차출했던 일을 정상화하고 있다. 4월 말을 기점으로 원 소속기관으로 많이 돌아가고 나와 공중보건의만 남았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동원됐던 경기도 내 공공의료원들도 필수 의료 서비스가 우선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정상 기능을 회복하고 있다.

김명희:5월 첫 주 연휴 기간에도 보건의료 종사자 인터뷰를 계속했다. 이분들이 많이 우울해하더라.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고 활기찬데 거기에 대한 괴리감이 많았다. 격리병동 종사자들은 나가 놀 수가 없고 ‘오프’ 나면 계속 집이나 기숙사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데 이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그나마 사회가 함께 긴장 상태면 묻혀서 가겠는데 바깥세상은 완전히 다른 것 같으니 혼란스러워했다. 손으로 뜬 수세미를 잔뜩 갖고 와서 선물로 주더라. 어디 나가질 못하니 이거라도 뜨면서 마음을 가다듬은 거다. 보건의료 현장 안팎의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는 걸 느낀 주간이었다.

신광영:학생들을 만나 강의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만 가능해졌다. 외국 교수들과 하는 공동연구 작업도 줌(zoom) 화상회의로 진행한다. 집이 일터가 됐다.

박혜영:지난 주말, 산업재해로 38명이 사망한 이천시 물류센터 사고 현장을 다녀왔다. 가면서 차가 많이 막혔다. 나들이객이 정말 많았다. 현장에 도착하니 다른 세상이었다. 서른여덟 가정의 유가족들이 불안과 혼란 속에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 재외동포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 세 분의 유가족도 있었다. 의사소통도 되지 않고 주눅 들어 보였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물론이고, 재외동포비자를 통한 가족 초청으로 한국에 머물렀기에 붕 떠버린 상태에서 한국에서 쫓겨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한 사망자의 어머니는 암 투병으로 수술을 앞둔 상태였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는 일은 코로나19 이전이나 이후나 바뀌지 않았다.

박혜영:노동건강연대에서 ‘이달의 기업 살인’이라는 자료를 매달 한 번씩 발표한다. 일하다가 죽는 사람 수가 얼마나 되는지 사례들을 모은다. 언론에 보도된 최소한의 산재 사망 사고만 모으는데도 지난 4월에 91명, 3월에 58명, 2월에 55명이었다. 사실 코로나19 이후 산재로 돌아가시는 분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위험한 현장이 좀 멈추진 않았을까 예상하기도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위험한 현장은 계속 돌아가고 있다. 방역은 세계 최고인데 이 부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일에 우리나라가 정말 잘할 수 있다는 게 이번에 증명되었는데 왜 일하다가 사람이 죽는 일을 막지는 못할까, 이런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신광영:1년에 우리나라 자살 사망자가 보통 1만5000명 내외다. 산재 사망자는 2000명 가까이 된다(2019년 산재 사고 사망자 855명, 산재 질병 사망자는 1165명이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지금(5월6일)까지 255명이다. 코로나19로 사회가 뒤집어졌는데 왜 자살 사망, 산재 사망에는 감각이 없을까. 한국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 세계에 대한 인식이 뭔가 편향되고 왜곡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를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수많은 노동 문제가 발생했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장면은?

김명희:가장 기억에 남는 게 77세 간병 노동자의 사망이다. 당뇨가 있는 노인 분이 시급 4200원을 받고 청도대남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다가 본인도 감염되어 돌아가셨다. 정부에서 보건의료인 감염을 집계할 때 간병인은 아예 포함되지 않는다. 돌봄노동 평가절하까지 포함해 우리나라 노동 현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닌가 한다.

박혜영:인천공항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옆에서 인천공항 노동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공항 리무진버스 운행이 절반 이상 준 탓에 교통편이 많이 사라져 출퇴근 시간이 4시간 이상 걸린다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야 너는 몇 시간 걸려?” “네다섯 시간. 너는?” “나는 새벽 3시에 나와.” 그러면서 또 한편으론 안심하는 거다. “근데 운행이 중단된 리무진 기사들은 무급으로 쉰다더라고. 우리는 그래도 고맙지 않냐?” 그런데 나중에 인천공항 노동자들 지원해주던 노무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초반에는 유지되던 파견업체 소속 일자리들이 순차적으로 다 없어졌다고 하더라. “그래도 고맙지 않냐?” 하던 노동자들도 해고당했을 공산이 크다.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일터에서 사라지고 있구나, 일자리를 잃어가는 과정을 우리 사회가 목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월29일 노동자 38명이 숨진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국과수 관계자들이 정밀 감식을 벌이고 있다.ⓒ시사IN 조남진

우리 사회 노동구조와 현실의 문제점이 감염병 확산에 실제 영향을 미치기도 할까?

김명희:심증은 다 있는데 통계로 잘 집계되지 않는다. 미국 같은 경우 코로나19 확진자 통계에 인종에 따른 차이가 잡히면서 인종차별 문제가 방역과도 관련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우리나라도 만약 확진자 통계에 직업이 무엇인지, 비정규직인지 정규직인지가 담겨 있다면 연관관계가 파악될 텐데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임승관:보건의료 사업장이 제일 위험할 것이고 특히 그중에서도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지점, 즉 돌봄, 간호 노동 순서로 위험도가 높을 것이다. 분당제생병원, 의정부성모병원, 효사랑요양원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제생병원 유행 시에 간호사 등 병원 노동자의 감염 사례가 많았던 이유는, 해당 병동이 간호·간병 통합병동이었고 더 많은 밀접접촉이 불가피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업장의 공간 환경도 감염을 좌우한다. 콜센터 집단감염 사례처럼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일하는 일터, 창문 등 환기 시설이 부족한 사업장이 위험하다. 무엇보다 아픈 사람이 출근해야 하는 사업장이라면 집단감염에 매우 취약할 것이다.

김명희:미국의 직업별 코로나19 확진 데이터를 보면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압도적 1위이지만 경찰도 많더라. 배달 노동자,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종사자, 호텔 도어맨들도 많이 감염됐다. 또 밀폐된 냉동 공간 안에서 일하는 정육공장 노동자들도 집단 발병했다. 우리나라도 미국만큼 폭발적으로 감염이 일어난다면 이런 종류의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위험해질 확률이 높다.

임승관:경기도 코로나19 전문가 자문위원회 책임을 맡고 있는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20년 전 공보의 역학조사관 시절 학교급식으로 인한 유행 질병 조사사업을 했다. 학교 조리실 노동자에게 ‘지난 1년 동안 장염 증상이 있을 때 근무를 쉰 경험이 있나’라고 물었더니 단 한 명도 없었다. 설사병이 나도 출근을 했다는 거다. 20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 현장에서도 분명히 그런 일이 있을 거다. 노동과 방역이 동떨어진 게 아니다. 좋은 노동환경을 만들면 좋은 방역 환경도 같이 만들어질 수 있다.

코로나19 초기까지 노동이나 고용 이슈는 다소 전면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박혜영: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총리가 학교 휴교령을 발표하면서 학부모들의 유급휴직 방안도 같이 발표했다. 충격받았다. 학교를 휴교하면서 어떻게 유급휴가도 같이 얘기할 수 있지? 그런데 이게 정상이다. 노동부, 교육부 구분 없이 정책이 섞여 시행되어야 한다.

김명희:노동윤리와 노동자 보호가 상충하는 지점을 연구하려고 외국 문헌 조사를 하다가 당황했다. 서구에선 휴교령을 내리면 보건의료 노동자들도 출근을 안 하게 되니 그 딜레마를 어떻게 충족할까가 과제더라. 무슨 일이 있어도 출근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노동환경이 너무 다른 것이다.

신광영:휴교가 노동에서도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휴교하면 학생이 학교에 안 가지만 동시에 학부모의 돌봄 노동이 필요해진다. 또 정규직 교사는 안 가는데 비정규직 돌봄 교사는 학교에 출근해야 한다. 비정규직, 맞벌이 여성, 일하는 여성의 돌봄 노동 문제 등 여러 가지 노동 불평등이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휴교 상황에서 종합적으로 드러났다.

ㅌ4월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이주민 보호와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새롭게 나타나는 노동 문제들이 있나?

박혜영:기존에 아팠던 문제가 다 드러난다. 뾰족하고 적나라하게 합리화되는 상황이랄까. 최근 많아진 무급휴직 강요, 권고사직 사례도 사실 예전부터 사업주가 마음대로 하고 싶었지만 안 하거나 못했던 부분인데 “코로나19 상황이니까…”라며 밀어붙이는 거다. 노동단체를 찾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이 주휴수당,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등 기초적인 사항을 많이 묻는다. 중고등학교에서 한 번도 제대로 노동자의 권리를 배워본 적 없으니 노동 현장에서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도 제대로 대처할 지식이 부족하다. 앞으로 코로나19로 고용이 더 불안정해지는 상황이 지속될 거라면 기초적인 노동 권리라도 숙지할 수 있게끔 정부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김명희:특수고용 노동자나 프리랜서들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퀵서비스 노동자가 코로나19 이후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부지원금을 받으려고 알아보니 수입이 감소했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가 필요했다. 이분이 전속이 아니라 한 8군데 이름을 걸어놓고 콜이 오면 받는데, 그 모든 업체를 찾아가 서류를 뗀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앉아서 인터넷에서 절차를 알아보고 신청할 시간도 없고 그 과정도 어렵다. 이런 노동자들은 마스크 대란 때도 줄서서 살 시간이 없어 그냥 다녔다. 손 씻을 장소도 잘 없고 공중화장실에 비누가 잘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다.

박혜영:코로나19로 인해 배달 노동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연결 노동임이 확인됐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노동자이면서 노동자가 아니다. 타다 논란 때도 그랬지만, 새로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조건이 사업의 중요한 영역으로 인지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플랫폼 노동의 형태에서 한국 사회가 배울 점이 많다. 노동은 재빠르게 다양한 형식으로 제공되는데, 실질과 관계없이 노동법은 과거 사업장 중심의 노동에 머물러 있다. 코로나는 다양한 형식으로 노동을 재편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신광영:제도적으로 파악이 안 되는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등 비공식적 노동자가 100만명을 넘는다. 그들은 대부분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어디론가 사라져버려도 그 사실을 알아채기도 힘들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고 다시 회생될지 기약도 없다. 한국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상황이 전개될 것 같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자의 81%인 27억명이 해고, 노동시간 단축, 임금 삭감 등의 영향을 받을 거라고 전망했다. 지금 당장보다는 앞으로 3~6개월 뒤 더 심각한 상황이 들이닥칠 텐데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우리 정부는 약간 어려운 상황 정도를 전제로 대응 정책을 짜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번에 재택근무, 유연근무도 빠르게 확산됐다. 새로운 노동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을까?

김명희:재택이나 원격근무라고 하면 뭔가 혁신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이번에 콜센터 등에서 원격근무를 도입한 곳들은 노동강도가 장난이 아니라고 하더라. 그런 업종은 얼마나 로그인해 있는지, 즉각 대응하고 있는지 초 단위로 감시가 가능하다. 노동강도가 절대로 약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보다 휴게 시간과 공간이 더 여의치 않았다고도 한다. 사회적 고립감도 작게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ILO 등에서는 실제로 원격근무와 관련된 건강관리 지침을 내놓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명확한 지침이 없다. 장애인 등 출퇴근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재택근무가 모두에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만약 이걸 노동의 뉴노멀로 본격화하려면 대비책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박혜영:과도하게 자율적이거나 과도하게 경직되거나, 재택근무는 둘 중 하나가 될 거다. 과도하게 자율성에 맡겨놓고 문제가 생기면 다 개인 탓으로 돌리거나 콜센터처럼 과도하게 관리하면서 옥죄는 식이다. 똑같이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간다 해도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허용이 되던 게 재택근무에서는 의심받는 거다.

신광영:재택근무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일종의 하층, 플랫폼 노동자인 경우와 대기업, 엘리트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노동자들 내부의 격차가 커질 거다.

구로 콜센터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했던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의 방역 활동 모습.ⓒ시사IN 조남진

코로나19 이후 노동에서 어떤 혁신이 가능할까?

박혜영:타다 논쟁 때, ‘이게 혁신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가장 낙후된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혁신이라면 얼마나 멋있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하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거나 수월하게 일을 해서 노동을 돋보이게 하는 방식이 진정한 혁신일 텐데, 우리 사회에서 혁신을 논할 때 늘 그 부분이 빠져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다양한 혁신이 시도될 테지만 그럴 때마다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해주지 않으면 이 사회 구성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될 거다.

임승관:광장 같은 게 열린 것 같다. 원하는 사람이 마이크 잡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 상황에서 누가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며, 그런 무대를 활용하는 분배를 조절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한국 정부가 이른바 ‘K방역’에 성공하고 물자 중심의 4차 산업혁명, 기술혁신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도는데, 그에 못지않게 시민사회 노동 분야의 목소리가 마이크로 많이 전달되는 게 중요하다.

신광영:K방역과 같은 성공의 경험을 사회 전체 영역으로 확산시켜서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노동 문제와 사회 자원에서의 복지 문제를 어떻게 연결시켜 새로운 틀을 만들 것인가? 이런 질문을 방치하고 K방역만 내세운다면 그것도 또 다른 ‘헬조선’일 수 있다.

박혜영:하청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유독 높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여러 대기업 사업장 식당이 엄청 깔끔해지고 칸막이도 설치되는데, 정작 거기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은 더 힘들고 불안해졌다고 한다. 칸막이를 다 닦아야 한다. 장갑을 3~4개씩 끼고 마스크도 두 개씩 해야 하는데 마스크 사러 갈 시간도 없고 일주일에 두 개 나눠준 걸로 버틴다더라. 이런 미세한 차별이 한 공간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천 하이닉스에서 정규직 확진자가 한 명 나왔다. 정규직들은 전부 자가격리에 들어갔는데 하청 직원들은 다 나와서 일했다. 이런 구조가 켜켜이 쌓여 있는 노동의 현실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지 않으면 이 불안함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 디테일한 대책이 필요하다.

임승관:질병의 원리를 잘 이해하면 조금씩 피해를 줄이거나 보완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 생활치료센터를 열어야 했다. 기업이나 의료기관이 연수원을 제공해주었고 우리는 같이 협력하면서 최대한 그곳 고용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 연수원 안에 정규직 직원이 한 명밖에 없었다. 경비, 보안, 식당, 청소, 미화 모두 아웃소싱되어 있었다. 이미 많이 무급휴직을 하고 있었는데 더구나 생활치료센터로 쓴다고 하니 계약해지까지 고려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다. 확진자들은 3층 이상에 있을 거고 입퇴소 때 동선을 잘 분리하면 식당 조리원들은 지하에 있을 거니 문제가 없다.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따뜻하고 질 좋은 음식을 만들어서 입소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대신 노동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보호복, 동선 등 교육을 잘 하겠다고 하고 같이 일하는 방향으로 고용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자는 논의를 한참 했다. 이런 과정이 막상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조금 성의가 있으면 안전하면서도 고용을 유지할 방법이 있는데 그것을 일단은 모르는 일로, 어려운 일로 치부해버리는 태도가 한국 사회에 있다. 이해와 실천 의지만 가지면 방법이 없지 않다. 앞으로 일어날 노동의 많은 부분들이 그럴 거다. 미시적인 디자인을 통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배달 노동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연결 노동임이 확인됐다.ⓒ시사IN 이명익

비정규직 같은 고용 형태뿐만 아니라 다른 조건에 따라서도 코로나19에 따른 피해가 다를까? 업종별, 성별 혹은 세대별 등등.

신광영:업종별로 보면 제조업은 한국에서 비교적 타격이 적다. 미국은 2000만~3000만명이 해고되고 있는데 한국은 별로 그렇지 않다. 로봇 사용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미 너무 많이 자동화돼 있어서 역설적으로 타격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결국 수출할 데가 없으면 문을 닫을 거다. 제조업은 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날 거다. 대신 숙박, 음식, 도소매, 예술, 스포츠, 영화관, 교육 서비스 이런 업종이 바로 타격을 받았다.

박혜영: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를 자주 듣는데 최근 일하는 여성들의 고충 사연이 많이 나왔다. ‘아이 학교가 휴교해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부모님한테 못 맡기면 둘 중에 하나는 휴직하거나 일을 그만둬야 한다. 결국 엄마인 내가 그만뒀다. 슬프지만 현실은 그렇다.’ 이런 사연들이 폭발적으로 나오더라.

신광영:1998년에 농협 여성 사원 정리해고 사건이 있었다. 직원 구조조정을 하는데 해고 0순위를 사내 부부, 그중에서도 여성을 대상으로 삼았다. 기혼 여성 700여 명이 사직서를 냈다. 경비 절감, 생산성 향상을 명분으로 구조조정을 하는데 왜 그것과 무관하게 맞벌이 부부 여성을 타깃으로 했는지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실적이나 역량을 본 것도 아니고 무조건 여성이기 때문에 먼저 해고당했다. 그때로부터 20년 넘게 지났는데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박혜영:그게 향후 통계에서 드러날까? 고용보험 가입자 중에서도 실업급여는 자발적 퇴사자의 경우 신청을 못한다. 결국 정부 정책들은 모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할 텐데 통계로 잡히지 않는 경우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신광영:고용보험과 건강보험으로 고용의 변화가 나타나긴 하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비정규직은 잡히지 않는다. 비정규직의 60% 정도가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박혜영:최근 노동 상담을 해보면 한두 명이 일하는 작은 사업장에서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노동자들이 많다. “장사도 안 되는데 사장님한테 미안해서 그만두고 나왔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지난달 고용지표에서 20~30대 중 “그냥 쉰다”는 비율이 꽤 높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추정된다.

그런 사람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이 있나?

박혜영:그런 분들에게서 상담 전화가 오면 일단 4대 보험 가입 여부를 물어본다. 대부분 가입되어 있지 않다. 지금 소급해서라도 들 수 있지만 굳이 지금 와서 정부에 신청하고 뭔가 다툼을 만든다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전화를 해봅시다” 하면 그냥 끊는다. ‘지자체나 정부에서 위기에 처한 실업자에게 뭔가 이것저것 준다고 하니 나도 해당하는 건가?’라며 적극적인 사람들은 전화를 해본다. 고용노동부에 먼저 전화를 하면 계속 통화중이다. 돌고 돌아서 우리 같은 시민단체까지 오는 거다. 그런데 또 4대 보험 가입 여부를 물으니까 다 끊는다. 장벽이 어마어마하다. 정부 정책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걸 평가할 여지 자체가 없다. 미국은 완전 록다운(lockdown)되고 사망자도 많아서 충격이 컸지만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니야’라는 인식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서서히 냄비 안의 개구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신광영: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기획재정부(기재부)도 그렇고 아직 감을 못 잡는다. 지금 우리는 위기로 진입하고 있는 단계인데 대책이 모두 한두 달짜리 단기용이다. 추경을 짜며 땜질하듯이 접근한다. 올가을 정도 되면 실업자가 쏟아질 텐데, 너무 지금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생각한다.

임승관:방역 1라운드에서 국제사회가 비교되고 우리가 잘한 편이었다. 경제나 고용 부문에서도 앞으로 비교가 될 거다. 개인적으로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1년 뒤가 궁금하다. 생산성이 낮다면 결국 분배를 어떻게 하느냐가 그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고, 불안 동요를 억제하면서 사회를 통합하는 원리가 될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는 시민사회주의, 복지국가 모델이 분명치 않았던 때고, 지금은 모델이 있다. 북유럽이 서유럽, 북미와는 어떻게 다르게 갈지 궁금하다.

신광영:유럽 국가에서 내놓는 고용안정 정책은 새로운 게 아니라 기존 정책을 강화하는 것들이다. 오히려 그런 안전망이 없던 곳에서 새 정책을 많이 낸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기존 제도가 없고 복지가 취약하니 ‘돈을 뿌리는’ 정책이 나온다. 또 가장 큰 차이는 재정수요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대공황 정도의 상황에 대비해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 재정적자 비율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기재부가 발목을 잡는다. 앞으로 거시경제 차원에서 경제가 안 좋아지는 상황이 온다면 주된 요인은 소극적인 재정 운영과 관련된 정부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너무 안일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방역은 성공했는데 경제는 망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제껏 세계화가 노동계급 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면, 코로나19로 세계화가 위협받는 앞으로는 어떻게 달라질까?

신광영:코로나19가 의도치 않게 신자유주의적 시스템 자체를 새롭게 변화시키고는 있지만 불평등을 약화하기보다 오히려 심화할 확률이 높다. ‘1대 99’가 아니라 ‘0.1대 99.9’의 사회로 만들어내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비정규직, 장애인, 노인 등 당장 가장 취약한 부문이 타격을 받고 있다. 또 이른바 엘리트 노동자가 누군지 뚜렷하게 드러나는 상황이 됐다. 선진국이라 불리던 국가의 노동자들마저도 이런 분화를 겪으면서 전 지구적으로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대체할 만한 정치세력이라든가 그런 동력은 지금 약화됐다. 노동조합도 그렇고 시민사회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가? 위기는 심화되고 있는데 대안은 분명히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불평등을 더 강화할 것이다.

김명희:궁금한 게, 이제껏 우리나라 영세 사업장의 노동환경이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데도 불구하고 그걸 개선하는 대신 그 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우는 방식으로 유지돼왔다. 만약 국가 간 이동 제한이 심해지고 이주노동 또한 다소 제약이 되면 이론적으로는 그 부분을 한국의 노동자들이 채우고, 지금보다는 노동환경이 좋아져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

신광영: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낮은 영세 사업장들이 사라져야 한다. 그럴 수 있는가? 사례가 좀 있다. 1930~1940년대 스웨덴에서 있었던 일이다. 노동조합이 주도해서 ‘생산성이 낮고 저임금을 주는 기업은 사라져야 한다’는 정책을 취했다. 연대임금 정책이다. 연대임금을 줄 수 없는 기업은 도산했고, 대신 거기서 생기는 실업자 문제를 정부가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적극적 노동정책이 그때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런 연대임금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게 스웨덴 모델이다. 그런데 많은 나라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에서 만들 수 있을까?

서로 신뢰가 탄탄히 받쳐줘야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 것 같다.

신광영:1990년대에는 네덜란드와 덴마크 모형이 있었다. 이른바 유연안정성 모델이다. 노사정 3자 타협이다. ‘노동조합은 해고를 인정하겠다, 기업은 실업자 훈련과 재교육 비용을 분담하겠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재취업 정책에 노력하겠다’는 3자 간의 타협이 이뤄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연구가 되어 알고 있다. 정부도 기업도 노조도 알고 있다. 그럼 누가 먼저 할 것인가. 광주형 일자리 모형으로 부분적으로 시도가 되었지만 지금 삐걱거리고 있다.

이런 모델이 긍정적으로 확산되려면 기재부의 재정 소요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전경련이나 상공회의소 같은 경제단체와 노동계의 인정과 이해도 필요하다. 사실 유럽의 프랑스 같은 데서는 이런 모델을 채택하지 않았다. 해고를 인정한다고 하니 반대했다. 한국도 정부와 기업에 대한 노동조합의 불신이 강해서 국민감정과 잘 맞지 않는다. 이제껏 노사정 합의란 것을 해서 타격을 본 쪽은 결국 노동자들이었다는 경험이 있다. 불신을 회복시킬 획기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뢰가 깔린 상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모델인데 OECD 국가 중 정부 신뢰도나 이웃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낮은 나라가 한국이다. 대타협 같은 사회적 합의 모델이 만들어지기가 쉽지 않다.

박혜영:우리가 대통령을 바꾼 민주주의 경험도 있다. 광장의 민주주의와 노동의 민주주의가 약간 분리된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시도해볼 여지는 있다. 다양한 상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신광영:사실 저도 기대하는 게 그런 부분이다. 지금 민주주의가 제대로 가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미국, 일본 한번 봐라. 유럽도 점점 극우화되고 있다. 신흥 민주주의 국가라 불리던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도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갔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가 나름대로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임승관:한국 민주주의는 주로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왔다. 타협, 약속, 신뢰, 존중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건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비유를 하자면 레고 블록을 쌓았다가 완전히 허물어트리는 게 아니라 붙어 있는 구조들이 부러지고 뾰족해지고 단절되면서 일어나는 허물어짐이다. 상당 기간 바닥을 치는 시기가 있을 거다. 자원은 부족한데 서로의 욕구는 상충되고 결국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새로운 질서가 등장할 가능성 속에서 민주주의가 너무나 중요하다.

김명희:그런 면에서 다들 기대하는 마음이지만 현실로 만드는 게 어렵다. 시민사회나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조직률이 낮고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인 한국에서 노조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노동계급 내 불평등이 심해지는 역설이 일어난다. 어느 선까지는 올라가야 한다. 노조가 싸우면 평균이 같이 올라갈 수 있는 지점까지 노조가 조직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노조가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이 너무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하다못해 노조도 양보할 수 있다. 회사 측이 어려운 거 뻔히 아는데 돈 다 달라고 할 수 없다. 그래도 그 과정을 지연시키고 조율하는 노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마스크 한 장이라도 얻어낼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절실히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 대담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런 국면에서 더 많이 노동조합을 이용하라, 없다면 만들어라 이런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시사IN 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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