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건강 연속기고①] 김정민(노동건강연대 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의사는 병력청취(history taking)를 통해 병인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진찰과 검사의 방향을 결정한다.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진단의 85%가 가능하며, 이후의 과정은 단지 가설(진단)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문헌도 보았다. 빠르게 진화하는 진단기술 때문에 병력청취에 대한 무게감이 달라졌을 수는 있으나, 여전히 병력청취는 진료의 핵심기술이며 노련한 의사의 척도이다.
먼 옛날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7년?)의 후예들은 환자를 만나 꼭 3가지를 물었다고 한다. 이름, 나이, 사는 곳. 위대한 선생님(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따라 자연환경(물, 공기, 장소)을 통해 질병을 연구하던 이들은 노동(직업)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다. 1700년, 노동의학의 아버지 라마치니(Bernardino Ramazzini, 1633~1714)가 <노동자의 질병(De Morbis Artificum Diatriba)>을 발간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노동자의 질병과 죽음을 운명이나 죗값으로 여기던 사람들에게 라마치니는 위험한 노동환경과 과도한 노동이 질병의 원인이라고 설파했다. 건강불평등 분야의 석학 디더리센(Finn Diderichsen, 1947-현재)의 설명을 빌리자면, 노동자는 직업(사회계층화)에 따라 차별적 환경에 노출되고 취약성의 차이가 생겨, 결국 차별적 건강상태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직한 관찰과 공감능력으로 시대에 앞서간 라마치니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에게 노동계급의 환자를 만나면 직업을 물으라고 가르쳤다.
프랑스의 셜록 홈즈로 불린 로카르(Edmond Locard, 1877~1966)는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라고 했다. 2018년 한국 직장인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41.5시간이었고, 평일 여가시간은 하루 평균 2.8시간이었다. 깨어있는 시간의 3분의 2 이상을 노동(직업)에 바치고 있는 한국 노동자들의 몸에는 노동(일터)의 흔적이 반드시 남아 있을 것이다.
2019년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산재) 발생 현황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약 10만 명의 재해자가 있었고 약 2천 명(사고 855명, 질병 1,165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었다. 해고 위험이 상존하는 불안정(불안전) 노동과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평균 3.7개월이 걸린다는 산재보험의 답답한 현실을 생각하면 한 해 10만 명이란 숫자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국내 직업적 손상환자 네다섯 명 중 한 명만이 산재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연구결과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일차의료기관에 방문하는 환자의 17%가 자신의 건강문제가 직업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며, 75%는 한 가지 이상의 독성물질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국의 몇몇 연구는 환자에게 아주 간단하게라도 직업을 묻는 의사가 열 명 중 두세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3분 진료, 5분 진료가 일상화된 한국의 진료현장은 과연 어떨까. 컴퓨터(혹은 종이)에 시선을 둔 의사의 뒷모습에 익숙한 환자(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엄두를 낼 수 있을까.
1988년, 소년노동자 문송면이 온도계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문송면이 천신만고 끝에 만난 주치의 박희순은 그 동안 어떤 의사도 묻지 않았던 문송면의 직업에 대해 물었다. 그때까지 병명조차 알지 못해 애타던 문송면은 죽기 전 고통스런 질병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문송면 사건은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무책임한 국가를 드러냈고, 노동자건강권운동이 일어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처럼 직업병 진단은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사한 유해환경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의 건강(생명)을 지키는 첨병(sentinel health event)이 된다.
일반적으로 다수의 환자는 직업력을 듣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하다. 게다가 짧은 진료시간 동안 생소한 화학물질이나 직업어(은어)를 듣다 보면 주치의는 의욕을 잃게 될 것이다. 그래도 매사 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노동현장에 관한 많은 지식을 갖출 필요는 없다. 자꾸 듣다 보면 지식이 쌓이고, 직업력을 듣는 시간도 짧아진다. 환자와의 라포르(rapport)는 잘 형성될 것이고, 어느새 좋은 의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환자에게 좋은 의사는 경청하고 공감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교대근무를 하는 A씨에게 당뇨약은 어떻게 처방해야 할까? 석공인 B씨의 흉부X선사진 속 이상 음영은 결핵일까? 전자부품 제조업체에 다니는 C씨는 왜 아이를 갖지 못할까? 자동차 도장공인 D씨는 왜 숨이 차다고 왔을까? 용접공인 E씨의 열, 오한, 몸살 기운은 단순한 감기일까? 철거일을 하던 F씨에게 왜 폐암이 생겼을까? 이와 비슷한 의문들이 생겼다면 환자와 함께 직업에 대해 얘기해 보자.
– 어떤 일을 하세요?
– 업무 중에서 건강에 가장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그런 위험에 대한 대책은 있나요? 작업장 환기는 어때요?
– 적절한 보호구는 착용하나요?
– 현재 질병(증상)과 하는 일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 일할 때와 일하지 않을 때 증상이 다른가요?
– 동료 중에 비슷한 질병(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 당신의 직업에 만족하세요?
– 배우자(동거인)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진료시간이 빠듯하더라도 두 번째 질문까지는 필수라고 생각하자. 끝으로 첨언하자면 병력청취는 교과서로 배울 수 없다. 환자에게 배우고 당신만의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환자(노동자)가 스승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노동건강연대(http://laborhealth.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