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책읽기]

‘화장 제모 애교’ :

여성의 몸에 관한 뼈 때리는 수다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김명희 지음, 도서출판 낮은산, 2019)

 

이슬아(이산노동법률사무소)

여성의 심근경색은 남성보다 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여성은 병원까지 간신히 가고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죽는 비율이 더 높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 중 하나이다. 그동안 잘 알려진 몸에 대한 연구나 교양서는 대부분 남성을 중심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래서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몸이 어떤 오해와 위험 속에서 살게 되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회적 관점에서 부위별로 탐구 한 책이 나왔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안 되지만, 남성과의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이 차이이며, 어디까지가 차이일까? ‘몸’에 관하여 만큼은 쉽게 ‘그래도 남자는 원래… 여자는 원래…’라고 말해진다. 타고난 것, 생물학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꼭 의구심이 생긴다. 적어도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여성의 제모한 몸, 화장한 얼굴, 애교 섞인 목소리 등은 ‘있는 그대로의 몸’이 아니라 (어떤 문화적 기대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예방의학 전문의인 저자는 이러한 의구심을 페미니즘의 관점과 전문가의 지식으로 하나하나 풀어낸다. 책의 차례는 아주 직관적이다. 뇌, 털, 눈, 피부, 목소리, 어깨, 유방, 심장, 비만, 자궁, 생리, 다리, 목숨. 어떤 믿음직한 의사가 몸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주려는 느낌이다. 이렇게까지 구석구석 들여다 봐야 하는 상황이 웃기면서도, ‘목숨’이라는 목차에 이르면 어쩐지 겁이 난다. 여성의 몸을 둘러싼 편견과 오해가 목숨까지도 위협하는 것일까? 여성의 몸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다소 어렵고 무거운 내용일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의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 그리고 저자의 쉽고 재미있는 서술 방식 덕에 편안하게 술술 읽힌다(의사가 썼지만 재미있다니).

저자는 각 주제마다 우리의 통념에 질문을 던진다. 타고난 몸부터 사회적 몸에 이르기까지 그 질문은 폭넓다. ‘여성 뇌’와 ‘남성 뇌’가 따로 있을까? 어디까지가 차이인지 고민하는 독자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연구 결과,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본질이라고. 공통점이 아니라 차이에 집착한 결과는 여성 과학자의 경력 개발을 가로막는 차별로 이어진다고. 왜 작은 차이를 본질적인 것으로 부각시켜 이러한 차별을 야기하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호르몬에 관한 오해도 대단하다.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성에, 여성호르몬인 옥시토신은 돌봄이나 애착과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연구 결과, 사회적 학습과 맥락에 따라 그 효과가 크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돌봄 일자리를 여성 일자리로 고착시키는 것은 호르몬이 아니라 차별적 제도나 특정 성이 가지는 고정관념의 결과에 가깝다.

몸에 관한 여성적 고정관념이 특정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만 차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여성에게만 유난히 엄격한 용모 관리 지침은 다양한 직종에 포진되어 있다. 마트 계산원, 면세점 판매직, 항공기 승무원에서부터 여자 의사에게까지 말이다. 모 대학병원에서는 여자 의사에게 의료인 용모 매뉴얼까지 제공한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건강하지 않게 보이므로 생기 있는 메이크업으로 나를 단장한다. 립스틱은 누드톤 또는 너무 진한 색상은 피하고 핑크나 오렌지 계열로 화사하게 연출한다. 마스크 착용 시에는 립스틱이 지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틴트 제품을 이용…(후략)” 책에 실린 이 매뉴얼은 결국 블러셔 색 추천으로 끝이 난다.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예이다.

저자는 위와 같이 가시화된 통제와 더불어 내면화된 권력에 대하여도 말한다. 이를테면, 젠더 불평등과 여성 목소리 톤의 관련성 연구가 그러하다. 목소리에 관한 차이에도 생물학적 요소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 규범이 영향을 미친다. 인지하고 있으나 거부하기 어려운, 혹은 인지하지도 못하는 차별은 귀찮거나 불편하거나 부당한 문제를 넘어서 건강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책의 장수가 넘어갈수록 문제의 심각성도 커져간다. 여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투쟁과 과학적 논쟁을 함께 해야 하며,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 자기 건강 문제를 사소화하거나 검열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가벼운 궁금증과 의구심으로 펼친 책인데, 다 읽고 나니 어떤 책임감이 든다. 여성의 몸에 대한 과도한 숭배와 혐오가 목숨을 위협하는 문제로까지 이어진다고, 우리 몸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자꾸 말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 필멸의 존재라지만 여자들의 때 이른 죽음, 불필요한 죽음, 불평등한 죽음은 결코 자연의 섭리가 아니다.”라는 저자의 말이 자꾸만 맴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근골격계 질환도 한국 사회에서 일터의 건강 문제,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된 데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과 투쟁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라는 말도 함께 말이다. 저자도 이 책을 쓰면서 한 명의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낸 것 아닐까? 이 책을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보며, 몸의 주권자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