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두기 기본수칙 1,2조를 지킬 수 있는 노동정책과 사회정책 도입 계획 없어
– 코로나19 의료 위기 대응에 필요한 공공의료기관·중환자병상, 간호인력 확보 계획 없거나 부족해
– 이윤을 위한 비대면의료 도입이 아니라 시민 안전과 건강 위한 응급의료·방문건강관리·지역사회 돌봄 계획 나와야
정부가 1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았다. 코로나19 위기극복을 내세웠지만 감염병을 틈탄 기업 특혜와 규제완화 위주의 포장만 달리한 과거정책 재탕이다. ‘방역과 바이오 등 BIG3를 미래동력’으로 삼겠다며 규제완화와 의료상업화를 내놓았다. 반면 감염병 대응 의료정책은 시급한 현실에 비해 매우 미미하고, 방역에 성공하기 위한 기본전제인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등 사회정책, 밀집된 작업장 환경개선 같은 정책 조치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를 크게 우려하며 아래와 같이 밝힌다.
1. 방역수칙을 지킬 수 있는 노동정책과 사회정책이 필요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방역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열악한 노동자들로부터 집단감염이 벌어지면서 ‘아프면 쉬라’던 정부 개인방역 제1수칙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지 드러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97%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열제와 감기약을 먹고 출근해야 했다.
아파서 쉬거나 치료받아도 생계위협을 겪지 않도록 정부가 책임지고 유급병가를 실시하고 건강보험에 상병수당을 도입하라는 요구가 수개월째 빗발치고 있지만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상병수당 도입에 8천억~1조7천억 재원이 필요하다며 난색이다. 그런데 이는 지난 몇 개월 간 기업에 퍼준 235조원 지원금과 의료영리화에 쏟아 붓는 막대한 예산과 비교하면 결코 큰돈이 아니다. 게다가 건강보험 재정은 올해 대폭 흑자가 예상되고 정부가 법을 어기고 미납한 국고지원금만 누적 25조원에 달한다. 오로지 정부 의지 문제다.
개인수칙 제2조도 ‘두팔 간격 거리두기’도 많은 노동자들이 지킬 수 없는 지침이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1m 이내의 거리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정부가 정말 방역성공에 의지가 있다면 산업별 밀집도를 조사해 밀접노동을 금지하고 열악한 사업장 환경을 개선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 단 한 줄도 없이 코로나19 시기 산업정책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 감염병 위기대응에 필요한 공공의료·인력 확충계획이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대책에 대전과 서부산 지방의료원 설치 검토 등 미미한 공공의료 계획만 찔끔 제시됐다. 하지만 전국에 공공병상이 부족하다. 즉시 주요 지자체에 지역의료원이 없는 곳은 모두 설립해야 하고, 최소한 공공병상 비율을 현행 10%에서 단기간에 20%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또 중환자병상을 대폭 확충할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은 중환자병상이 10만명 당 10.6개로 이탈리아(12.5개)보다 적고 미국(34.7)에 비할 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처럼 환자가 발생하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간호인력 확충계획도 내놓아야 한다. 중환자를 볼 수 있는 숙련 간호인력 확보계획을 시급히 내놓아야 하고 간호인력 수 자체를 늘려야 한다. 병상 당 간호인력이 OECD 평균의 3분의 1로 평상시 의료체계도 버티기 어려운 수준이다. 환자 당 적정 간호사 수를 강제하는 간호인력 확충계획은 왜 내놓지 않는가. 하반기에도 ‘덕분에 챌린지’만 할 것인가? 또 의사인력 확보를 위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치는 필요하나 49명 정원으로는 부족하다. 대폭 늘려야 하고 기존 국공립의과대학에도 장학생을 선발해 일정기간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 복무하도록 해야 한다.
3. 비대면의료가 아닌 공공의료가 필요하고, 의료상업화·규제완화는 중단되어야 한다.
정부는 건강취약계층, 경증 만성질환자, 취약노인 등 42만명에게 건강관리 기기를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런 기기 제공은 헬스케어·웨어러블 기기 업체와 인공지능 스피커를 판매하는 대기업 돈벌이로는 확실하지만 건강관리와 돌봄 영역에서는 효능이 입증된 바 없다. 정부가 취약계층 건강관리를 위한다면 방문건강관리 인력을 확충하고 지역사회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양질의 일자리와 보건의료 체계를 만들어 해결해야 할 일을 검증되지 않은 기기 구매대행으로 대체하려 해서는 안 된다.
5G·AI 응급의료시스템 실증사업도 마찬가지다. 전국 4곳 중 1곳 지자체가 주민들이 가까운 응급실에 쉽게 방문할 수 없는 응급의료 취약지다. 당장 응급실이 없는데 ‘주변 응급실 과밀도 확인’ 프로그램 개발을 할 때인가? 정부는 효과가 불분명한 대기업 제품 사업에 돈을 쏟아 부을 정도의 예산과 행정력이 있으면 당장 지역에 응급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게 먼저다.
또 정부는 치료용 소프트웨어의 경우 문헌적 근거가 부족하더라도 ‘혁신성·잠재성’이라는 경제성으로 평가해 시장에 진입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 ‘혁신의료기술 평가 트랙’은 근거기반 의료(Evidence Based Medicine)를 뒤흔들고 의료를 돈벌이 취급하는 문재인 정부가 만든 대표적 의료민영화다. 적용 영역이 더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없어져야 할 제도다. 개인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기업에 넘기는 규제완화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고, 제2의 인보사 법 ‘첨단재생법’을 활용해 줄기세포·유전자치료제 등 규제완화도 계속하겠다고 한다. 코로나19를 빌미로 의료영리화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위기는 기회’라는 식의 접근으로 의료를 산업 취급하고 진지한 위기대응 정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인식과 대안으로는 당장 닥쳐올지 모르는 재난에 대응할 수 없다. 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없는 국정운영 방향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