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생의 죽음과 좋은 어른에 관한 질문

〈젊은이의 양지〉(2020, 신수원 감독)

박한솔(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

 

* 영화 〈젊은이의 양지〉 소개

채권추심 콜센터 센터장 세연. 말만 센터장인 계약직 직원이다. 업무실적을 내지 못하면 본사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없다는 말에 번번이 부당한 대우를 참아내며 일한다. 19살 준이는 친구와 함께 세연이 센터장으로 있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온다. 사진 전공이었던 준은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런 준을 본 세연은 ‘인생 실습’이라고 생각하라며 위로한다. 한편, 딸만큼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세연은 계약직 인턴 생활에 지친 미래에게 노력하면 다 된다는 말을 던진다.

어느 날, 늦은 시간까지 연체금 독촉 전화를 하던 준은 ‘직접 와서 돈을 받아가라’는 고객의 말에 집으로 방문한다. 이내 세연에게 준의 전화가 걸려온다. 도저히 못하겠다는 준의 목소리에 세연은 화를 내며 돈을 받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끊는다. 이 전화를 마지막으로 준은 시신으로 발견된다. 본사로부터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할 것을 주문받은 세연에게 준의 죽음에 관한 단서가 연달아 배달된다. 세연에게, 어른들에게, 세상에 남긴 메시지로 준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안전한 거짓과 불편한 진실” 중 세연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사진을 전공하던 열아홉 살 고등학생이 채권추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고, 강압적인 채무 독촉 방식과 높은 업무 강도를 견디다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납작하게 서술한 준이의 이야기는 이렇다. 하지만 영화에서 준이의 죽음은 결말이 아니라 질문의 시작이다.

극 중 준이가 왜 죽었는지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른’을 상징하는 세연뿐이다. 달리 말하면 세연만 침묵하면 준이의 죽음에서 회사를 떼어낼 수 있다. 본사 정규직을 꿈꾸며 갖은 수모를 견뎌온 세연이기에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본사로 불러주겠다’는 상무의 말에 넘어가지만, 감독은 여러 인물을 통해 세연에게 자꾸 질문한다. 준이의 친구, 준이가 알던 형, 세연의 친구, 그리고 딸 미래까지. 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연에게 물음을 던지고, 이 사회의 어른들에게 묻는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냐고.

세연이 준이의 장례식장에 직원 조문을 금지하자 함께 실습하던 준이의 친구는 왜 조문도 못 가게 하느냐며 눈물을 보인다. 준이가 알던 형은 준이가 생전에 남긴 영상을 세연에게 익명의 소포로 보내고, 노무사가 된 세연의 옛 친구는 도대체 몇 명이 더 죽어야 멈추겠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취업준비생이었던 미래는 준이의 이야기를 알게 된 뒤, 자살을 시도한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세연은 자신의 선택을 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자신을 변호하지만, 질문을 되새길 때마다 도망치기 바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세연은 마침내 센터장실 한 편에 있는 콜센터 기계의 전원을 끄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본사가 보이는 창에 블라인드를 내린다. 어두워진 센터장실 문을 열고 세연이 걸어 나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세연의 선택을 직접 보여주진 않지만, 다리 하나 건너는 걸 포기한 비장한 표정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신수원 감독은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하더라도 생각하는 어른이 되자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생각을 멈추지 않아야 ‘좋은 어른’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세연이 수많은 질문 끝에 ‘진실’을 택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젊은이의 양지〉는 ‘화’를 통해 약한 사람을 드러낸다. 나보다 약한 사람,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그래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을 향하는 분노의 속성을 십분 활용한다. 본사 직원은 센터장인 세연에게, 센터장 세연은 열아홉 살의 실습생 준에게, 세연과 세연의 딸 미래는 서로 화낸다. 아래로 향하는 화살을 누가,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에 대해 영화는 ‘어른’이라고 대답한다. 연체금을 받으러 간 준이 못하겠다며 전화하자 “너 월급이 뭔 줄 알아? 알량한 네 자존심 팔아서 받아가는 돈이야!”라고 소리치는 장면에서 세연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사회 구조 속에서 불안정한 발판을 딛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그만두지 않은 세연은 마지막까지 고민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선택에 떠맡기는 것이라고 나무랄 수도 있겠으나, 사실 이 영화는 구조를 바꿀 힘도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것에 가깝다. 좋은 어른이 되려는 한 사람의 발걸음이 이룰 수 있는 작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연 덕분에 적어도 준이는 죽음의 이유를 사회에 알릴 수 있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과연 ‘양지’가 존재하는가. ‘좋은 어른’은 무엇인가. 영화는 열아홉 살 현장실습생 준이와 취업준비생 미래의 모습을 빌려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언젠가 어른이 된다는 점에서 이는 결국 모두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