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02 :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2021

 

노동건강연대는 2021년 봄 기획강좌로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 엉킨 실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2021년 3월 4일부터 4월 15일까지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일곱 개의 강좌를 꾸려 한 주에 한 번씩, 총 7주간 온라인으로 여러분들과 만났습니다. 코로나19는 노동건강연대 활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온라인 기획강좌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워진 팬데믹 시대 속에서, 회원들과 나누는 시간을 그리워하며 마련한 강좌에 많은 분이 뜨겁게 호응해주셨습니다. 우리 사실 다 비슷한 마음이었던 걸까요? 쏟아지는 좋은 반응에 힘입어 기꺼이 강사로 나서주신 일곱 분의 선생님 중 네 분에게 강의 내용을 원고로 옮겨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강의 내용을 복기하고 싶었던 회원님들부터 미처 참석하지 못하셨던 회원님들까지 모두 모시고, 다시 한번,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강의를 시작합니다!

 

21세기 한국의 노동 현실과 과제

신광영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오늘날은 가장 발전된 시대라고 누구나 믿고 있다. 2세기 전까지만 해도 마차를 타고, 말을 타고 이동했던 사람이 그사이에 자동차를 만들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더니 드디어 인공위성과 탐사위성까지 만들어 우주를 연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화성에서 드론이 하늘을 나는 동영상을 전 세계에서 볼 수 있고, 달의 흙을 지구로 가져와 분석하는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에 비해서, 하루하루의 일상은 큰 변화가 없다. 생존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고, 일하지 못하게 되면, 생계가 어려워지는 현실. 많은 사람이 일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 살아가는 현실에서 일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그들의 노동을 이용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고용주와 고용된 사람들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들이 전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놀라운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1세기 한국의 노동 현실은 어떠한가?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에서 노동세계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한국의 노동 현실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하여 실증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 노동의 현실을 살펴보고, 가까운 미래에 지금보다 바람직한 노동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을 논의하고자 한다.

노동은 대단히 다양한 차원을 지니는 복합적인 사회 영역이다. 특히 산업화를 통해서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체제가 형성되면서, 노동은 개인과 사회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 생활수단을 확보하고, 노동하기 위해서 십여 년간의 교육을 받고 있다. 그리고 실업이나 은퇴 같은 경우에도, 노동을 통해서 얻는 임금에 근거한 저축, 노령연금, 자산 축적 등이 노후 삶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노동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삶의 중심을 이루는 요소이다.

노동은 사회적인 수준에서 노동력 공급, 노동에 대한 보상, 권리와 노동력 재생산을 둘러싼 제도, 규범과 행위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를 노동체제라고 부른다. 노동체제는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된다. 첫째 요소는 노동력과 임금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노동시장이다. 노동시장은 가상적인 시장이다. 인간의 노동력은 시장에서 교환을 위하여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노동시장은 하나의 가상적인 혹은 허구적인(fictitious) 상품의 시장이다. 두 번째 요소는 노동력을 구매하는 고용주와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동자들 사이의 집단적인 노사관계이다. 임금과 노동조건에 관한 교섭을 중심으로 하는 노사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세 번째 요소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제도이다. 질병이나 실업으로 인하여 노동할 수 없는 경우에 공적인 방식으로 이에 대비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전후에 크게 확대되었다. 실업보험이나 산재보험 그리고 연금제도가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의 생활상 안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들이 도입되었다. 네 번째 요소는 노동시장이나 노사관계의 규칙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치활동인 노동정치이다. 노동시장이나 노사관계 제도 내에서 혹은 제도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으로 총파업과 같은 집합적 행위뿐만 아니라 저항이나 지지를 목적으로 정부, 정당 그리고 시민단체들을 대상으로 한 활동도 노동정치의 주요 영역이다.

 

노동시장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은 한국경제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산업화에 따른 한국경제의 변화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 형성이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매출액과 고용인력 규모에서 재벌기업 집중이 지속하여 강화되었다. 10대 재벌의 누적 매출액은 2008년 47.18%에서 2010년 51.86%로 더욱 심화되었다. 대기업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도 계속 확대되었다. 2020년 300인 이상의 대기업 기준으로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30~299인 65.5%, 5~29인 60.0%, 5인 미만 43.3%로 기업규모에 따라서 대단히 큰 격차를 보여주었다. 1980년 노동자 임금은 기업규모에 따른 격차를 보이지 않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3~4%에 불과하였다. 산업화의 진전과 더불어 대기업의 급속한 성장이 이루어졌고, 이들 기업은 90년대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중소기업과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는 한국 경제의 성장 방식과 그에 따른 노동시장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기업규모에 따른 차이는 고용의 안정성 차원에서도 큰 차이를 만들어 냈다. 대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근속년수가 길고, 중소기업은 근속년수가 짧다. 2019년 한국 피고용자의 근속년수는 6.7년으로 일본이나 유럽과 비교하여 60% 정도에 불과하였다. 남성 7.7년과 여성 5.1년으로 여성의 근속기간이 더 짧았다. 이것 일자리 이동이 잦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2013년 OECD 국가들 가운데 10년 이상 근속비율은 독일 42.2%, 프랑스 46.7%, 일본 44.5%, 스웨덴 35.9%, 미국 29.1%, 한국 19.7%로 한국이 가장 낮았다). 관리직 평균 근속년수는 14.9년으로 가장 길었고, 그중에서도 공공 및 기업 고위직이 18.4년으로 가장 길었다. 반면에, 단순노무직은 3.9년으로 가장 짧았다. 평균 4년 안에 일하는 곳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다음이 농림어업 종사자로 4.0년이었으며, 판매서비스 종사자는 5.5년이었다. 단적으로 한국의 노동시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대단히 유연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외환위기 이후에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격차 확대 현상이다. 2003년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71.5%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낮아져서 67.0%에 달하였다. 2019년 통계청 〈근로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300인 이상 대기업의 정규직 시간당 임금은 34,769원이었고, 30~299인, 5~29인, 5인 미만 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각각 정규직의 65.95%(22,909원), 58.4%(20,319원), 43%(14,980원) 수준이었다. 비정규직의 경우도 기업 규모에 따라서 큰 차이를 보여서, 300인 이상 대기업의 비정규직은 64.5%(22,429원)로 중기업의 정규직 수준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30~299인, 5~29인, 5인 미만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은 각각 대기업 정규직 시간당 임금의 45.7%, 46.4%, 37.4% 수준으로 대단히 낮았다. 이것은 한국의 노동시장이 기업규모와 더불어 고용형태에 따라서도 임금 격차가 크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중요한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은 젠더에 따른 임금 차이이다. 강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타나는 노동시장의 특징은 여성들의 경제활동참여가 낮다는 점과 동시에 여성들의 임금이 남성에 비해서 매우 낮다는 점이다. 2019년 젠더 임금격차는 남성의 시간당 임금을 100%로 했을 때, 여성의 시간당 임금이 평균적으로 69.4%였다. 30% 이상의 격차가 시간당 임금에서 나타났다. 남성 정규직 시간당 임금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여성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경우 남성의 69.6%, 비정규직의 경우 53.4%에 불과하였다.

마지막으로 두드러진 요소는 학력이다. 이것은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이다. 특징적인 변화는 과거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가 현저하게 컸지만,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 고졸자의 평균 임금은 대졸자 평균 임금의 43%에 불과하였나, 2010년 64.3%로 높아졌고, 2019년에는 65.2%로 약간 더 높아졌다. 대졸자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고졸자의 비중은 줄어들면서, 노동시장에서 학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더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시장에서 학력이 지니는 의미는 과거에 비해서 계속 줄어들고 있다.

노사관계와 노동정치

2021년 현재 한국의 노사관계는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다. 군사정권 하에서 한국에서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조합운동이 불가능하였다.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자율적인 노동조합운동은 탄압을 받았다. 산업화를 내세운 군사정권은 노동조합을 체제를 위협하는 불순한 세력으로 공안 차원에서 탄압하였다. 그리고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노동조합을 내세워 노사관계를 관리하고자 하였다. 남미의 경우처럼, 국가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정권적인 차원에서 정치 시스템 안으로 노동조합을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를 정치적으로 배제하고, 노동운동을 억압하는 정책을 지속하였다. 군사정권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억압하는 정책을 지속하였다.

1987년 민주화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시작했다. 1987년 여름 자생적으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나면서 “민주노조”라는 이름으로 독립적인 노동조합들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먼저 지역 수준의 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고, 이후 1989년 12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의 결성을 거쳐서 1995년 11월 전국적인 수준에서 민주노총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과거 기존의 한국노총과 새롭게 창립한 민주노총이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을 양분하는 상급조직으로 등장하였다. 한국노총은 과거 정권의 지원과 통제를 받았지만, 민주화 과정에서 개혁을 도모하여, 과거의 어용노조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하였다. 민주노총의 등장이 한국노총의 내부개혁을 더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6년 한국이 OECD에 가입하면서, 한국 정부가 더 이상 민주노총을 배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1996년 12월 기존 노동법 개정에서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국민의 힘 전신)은 노동법 개정안을 여당 단독으로 날치기로 처리하였다. 이 노동법 개정안은 정리해고를 허용하고, 상급단체에서만 복수노조를 인정하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노조의 총파업이 국민적 지지를 받으면서 정권의 위기가 발생하자, 김영삼 정부는 1997년 2월 노동법을 다시 개정하였다. 같은 해 말 1997년 12월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민주노총도 노동자 대표조직으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였고, 1998년 2월 노사정협의회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협약에 합의하였다. 합의안은 외환위기 이후의 노사관계를 규정하는 제도로 기능하였다. 쟁점이 된 사항은 민주노총이 교원노조를 합법화하는 대신에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인 노동자 파견과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는 합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 노동체제에 직업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1998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면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물러나고,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하였다. 지금까지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거부하면서 노사정위원회는 실질적인 기능정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4월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민주노총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2018년 6월 위원회의 명칭을 경제사회노사정위원회로 바꾸었지만, 민주노총은 여전히 이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서 민주노총이 가장 큰 노동조합 상급단체가 되면서, 경제사회노사정위원회의 대표성과 사회적 합의기구로서의 기능에서 여전히 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 한국 노동운동의 특징은 낮은 노조조직률과 둘로 나누어진 노동조합 상급단체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주로 2개의 노조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들은 중앙수준의 조직이고, 실질적인 노조의 활동은 기업 단위로 이루어진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기업별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기업별 노조가 한국 노조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단체교섭과 임금교섭은 개별 기업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노조 조합원들은 기업 내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기업 노동자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기업별 노조는 기업의식 혹은 기업 중심적 사고를 만들어 냈다. 상급단체는 정치에 관심을 갖지만, 단위조직은 임금이나 노동환경과 같은 일터의 이슈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를 199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하였으나, 노동계 내부의 정치적 입장 차이에 따른 이견과 대립으로 통합적인 정당조직을 발전시키는데 실패하였다. 노동자들의 이해를 전국적인 수준에서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현실에서 기업별 노조의 역할을 기업 내의 문제로 조합원의 관심을 더욱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점은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국적인 정당의 부재를 더 강화시키는 “부정적인 환류효과”를 지닌다. 전반적으로 노동자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조직이나 정치적 영향력은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의 활성화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들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시민단체들이었다. 양대 노총은 조합원 수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민단체에 비해서 큰 조직이지만, 사회적,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회조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2000년대 중반 민주노총이 사회운동 노조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를 내세웠지만, 지속되지 못하여, 사회적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사회적 의제를 주도적으로 노동조합이 제기하지 못하면서, 노동조합이 조합원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인식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사회적 안전망

노동자들의 안정된 삶은 노동을 통해서 보장될 수만은 없다.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 인하여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실업, 산업재해, 질병, 퇴직 등으로 인하여 노동을 통한 소득이 없거나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노동을 통해서 생계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유일한 노동자들에게 임금 획득 기회의 상실은 개인과 가족에게 치명적인 일이 된다.

노동조합들은 자체적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실업에 대비하여 스스로 실업보험제도를 만든 겐트제도이다. 벨기에 겐트에서 시작된 노동자 자율 실업보험제도는 노르웨이를 제외한 북유럽 국가들에서 받아들인 실업보험제도로 정부가 아니라 노조가 실업보험을 관리하고, 관련 서비스를 노조가 책임지는 제도이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정부가 실업 보험을 관리하고 있지만, 스웨덴을 필두로, 덴마크, 핀란드와 아이슬란드에서는 실업보험 제도화 초기부터 노조가 실업보험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에서 노동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안전망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다.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은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만, 가입되어 보호를 받는 비율은 대단히 큰 격차를 보인다.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2006년 고용보험,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가입률에서 정규직은 90% 이상으로 보여주었지만, 비정규직은 각각 48.8%, 46.8%, 44.1%로 낮았고, 산재보험만 89.1%로 높았다. 이러한 추세는 강화되어 2019년 정규직의 경우, 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가입률이 거의 100%에 가깝게 높아졌지만, 그 사이 비정규직 가입률은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규직과 큰 편차를 보여준다. ―고용보험(정규직 94.4%, 비정규직 74.0%), 건강보험(정규직 98.2%, 비정규직 64.2%), 국민연금(정규직 98.0%, 비정규직 61.0%), 산재보험(정규직 97.8%, 비정규직 97.3%)― 비정규직의 경우, 기업규모에 따라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산재보험을 제외한 나머지 사회보장에서 가입률이 50%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최근까지 여러 가지 사회복지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실제로 비정규직의 사회적 안전망은 대단히 취약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하며, 사회적 안전망을 통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프리캐리아트(precariat)라고 불린다. 2019년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28.5%가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고, 절반 정도는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비정규직 판매종사자의 1/3정도가 고용보험,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생산직 가운데서도 기능원의 2/3가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으며, 단순노무자의 40% 정도도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다. 산업별로는 제조업 비정규직의 27.1%, 건설업 22%, 도소매 판매업 32%, 운수업 23.5%가 고용보험 미가입자로 실직을 했을 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프리캐리아트이다.

맺음말

한국 노동체제의 중요한 제도적 특징과 현황을 살펴보았다. 짧은 기간 동안 한국의 노동체제는 여러 가지 변화를 보여주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드러냈다. 보다 안정된 노동생활을 통해서 개인과 가족의 삶이 안정되는 것이 바람직한 상태라고 본다면, 최근까지 이루어진 여러 가지 한국 노동체제의 변화는 적어도 세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고용의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근속년수가 짧은 현실에서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불안과 걱정을 낮추는 길이 될 것이다. 고용불안은 개인과 가족이 삶을 위협하는 가장 위협적인 요소이다.
둘째,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실제로 사회적 안전망에서 벗어나 있는 광범위한 노동자 집단이 있다. 제도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여 국민 전체의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축소시키기 위한 법적,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셋째, 한국의 노사관계와 노동정치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한국적인 상황에서 노동조합과 더불어 시민사회 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노조조직률이 매우 낮고, 더욱이 양분되어 있고,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도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사회 단체의 역할을 더없이 중요하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단체 간의 연대가 노동조합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노동 NGO뿐만 아니라 인권과 반차별을 내세우는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들과의 연대는 중요한 정치적 자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