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공격과 ‘자율 규제’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 대표)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습격한다.”라는 뜻. 다른 행동을 통해 상대의 주의를 끈 다음 예상치 못한 곳을 습격하는 것을 의미]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공격
기업과 현 정부의 중대재해 처벌법 공격이 거세다. 중대재해 예방 효과는 미미한데 기업에 부담만 지우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아 투자 리스크를 키우는 법이라는 것이다. 중대재해 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두성산업은 이 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현 정부는 이러한 기업 입장에 맞장구를 치며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법을 무력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전면전의 양상이다.
이는 법이 제정되는 순간 익히 예상된 싸움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자본 측의 백래시(backlash)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너무 순진한 것일 테다. 기업 입장에서는 ‘의문의 일격’을 당한 셈이니 전면전으로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노동자 생명과 건강 관련하여 정작 중요한 싸움터는 중대재해 처벌법과 관련된 전장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싸움은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관련 법제도와 집행 체계를 둘러싼 각축이다. 중대재해 처벌법 제정은 그 싸움에서 더 많은 시민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경로였다. 그와 관련된 결정이 소수의 전문가들과 관료들에 의해 기술적이고 행정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다수 시민과 노동자의 합리적 의사소통 행위로서 토론된 결과가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골방’에서 이뤄지는 법제도 논의
중대재해 처벌법 제정을 통해 확인된 시민적 합의는 기업 경영 책임자의 무책임함으로 노동자가 죽는 것은 우리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중범죄라는 것이다. 중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어떻게 얼마나 중하게 처벌할 것인가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중범죄가 횡행하도록 하지 않기 위해 어떤 구조적 접근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실제 중대재해 처벌법 제정 이후,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법제도와 집행 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백가쟁명식 논의가 활성화되었다. 긍정적 방향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여론이 중대재해 처벌법의 실효성 문제로 집중되는 사이, 정작 중요한 노동자 생명과 관련된 법제도와 집행 체계 관련 논의는 골방에 갇힌 채 이루어졌다. 그 결과 고용노동부는 ‘자율 규제’를 핵심으로 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중대재해 처벌법 개악과 관련된 논의에 집중하는 사이, 기업과 보수 정부의 노동자 생명과 건강 관련 행정 계획이 ‘날치기’될 상황에 처했다. 최악의 상황이다.
필자는 중대재해 처벌법 제정 당시 다른 지면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영국의 경우 기업살인법 제정은 그 성과와 무관하게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대한 정부 정책이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화하는 맥락과 연동되어 있었다는 학자의 비판도 새겨들을 만하다. 영국의 경우 노동자 안전과 건강을 위한 정부의 근로감독 인프라와 재정을 축소하면서, 그 대신 일부 기업에 대한 형벌만 강화하여 돈 안 들이고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장치로 기능하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규제는 완화하고 법 집행, 재정 지출은 줄이고, 사회구조적 문제를 사법화하여 사법적 정의에 호소하도록 만드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사회 갈등 해소 전략의 일환이다. 한국에서 중대재해 처벌법 제정이 이와 같은 경로를 밟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이상윤. (2021).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의 성과와 과제. 시민과세계, 233-242.)
영국의 「로벤스 보고서」를 둘러싼 혼란
중대재해 처벌법은 법의 특성상 법 제정 이후 노동자 안전과 건강 관련 법제도와 집행 체계가 강화될 수 있는 경로로 갈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이 법의 상징적 효과에 기대 법제도와 집행 체계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 양날의 칼 같은 법이었다. 두 경로 중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는 선험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고 객관적인 여러 상황과 주체들의 역량 및 대응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었다. 이와 같은 양자택일의 갈림길에서 상황은 나빠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자율 규제’ 전략을 막기 위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급하고 중요한 싸움에 나섬에 있어 시민사회와 노동운동 진영에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존재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는 영국의 「로벤스 보고서」의 해석과 관련된 혼란이다. 이 보고서는 1972년 영국에서 발간된 보고서이다. 영국에서 50년 전에 발간된 보고서가 지금 여기에 무슨 중요성이 있는가 반문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시공간의 차이 뿐 아니라 논의를 둘러싼 맥락적 차이가 너무도 크기에 지금 여기의 문제 해결을 위해 참고할 만한 보고서가 아니다. 그런데 중대재해 처벌법 제정 이후 열려진 관련 법제도, 집행 체계 개혁 논의 중에 불려나와 관련 논의의 ‘바이블’인 것처럼 취급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 이 보고서를 인용하며 주장을 펴는 분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보고서의 철학적 기반과 주된 결론과 주장으로 인해, 관련된 논의는 윤석열 정부의 ‘자율 규제’ 정책 방향의 정당성을 포장해 주는 효과를 낳는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에서 이 보고서를 500페이지나 되는 분량으로 번역하고 해제를 달아 출판했지만, 이 보고서의 핵심 결론과 주장은 아래와 같다.
“우리의 조사가 도출한 가장 근본적인 결론이 이것이다. 외부 기관의 부정적 규제가 가져올 수 있는 일터안전보건 수준의 점진적 개선에는 심각한 현실적 한계가 있다. 우리는 더 효과적인 자율규제 시스템이 필요하다.”(류현철, 김형렬, 최민, 박다혜, 이진우,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제 및 행정조직 선진화를 위한 로벤스 보고서-번역 및 해제, 2022년 정책보고서, 국회의원 이은주)
이윤이 먼저인 기업에게 ‘관심’을 촉구하면 해결될까
왜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로벤스 보고서 저자들은 노동자 사망의 원인이 ‘무관심(apathy)’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년에 걸친 심의 결과, 직장 내 사고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무관심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앞서 무관심이 직장 내 사고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시사했다. 감독관들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법적 규제로 일터에서의 안전보건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장려되는 한, 이러한 무관심한 태도는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언뜻 보면 그렇듯 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 다수의 사업장에서 노동자 안전과 건강은 ‘무관심’의 영역이다. 그러니 투자도 되지 않고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적 원인일 뿐이다. 이와 같은 무관심이 일상화된 보다 근본적 원인은 사업주가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기 때문이고, 그러한 ‘철의 원칙’이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체념이 노동자들에게도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작업장 내 권력 관계의 반영이고 정치경제적 물적 토대이다. 이러한 권력 관계와 물적 토대는 사업주를 ‘계몽’하고 노동자들을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이들의 ‘자율성’을 키워준다고 하여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힘은 오로지 시스템의 외부에서만 오며 물체가 물체 스스로에게 힘을 줄 수는 없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으로 불리는 뉴턴 운동법칙 제3법칙이 의미하는 바처럼 이를 바꾸려면 로벤스 보고서가 그토록 평가절하하는 ‘외부의 개입’이 필수다.
이 보고서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 안전과 건강 문제를 노사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노사 협력의 문제로 본다는 것이다. “사업주라고 하여 노동자가 죽기를 바라겠는가?”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지난 역사와 지금 여기의 현실이 웅변해 주는 바, 그들의 자율에 맡겨 놓을 때 자본주의 하에서 사업주는 늘 생명보다 이윤이 먼저다. 노동자 생명과 건강은 명백히 계급 이슈이고, 계급적 접근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압도적으로 노동계급의 힘이 클 때라는 예외적인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한 노사가 상호 협력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는 없다. 자본의 경쟁적 이윤 추구 경향에 족쇄를 채울 수 있어야지 노동자를 살릴 수 있다. 지금 한국과 같이 자본-노동 힘의 균형이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사회에서 이 족쇄를 채울 수 있는 주체는 ‘외부’뿐이다. 그 외부는 국가와 시민사회이다.
로벤스 보고서 모델을 이어 가며 노동자 건강과 안전 영역에서 ‘제3의 길’을 추구하는 다양한 변종 모델에 대하여 한 학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새로운 모델의 추진은 참여와 공동의 이익 증진을 목표로 동의를 확보하는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모델의 실천은 새로운 협력적 사회질서를 구축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적 물질적 조건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Davies, J. S. (2011). Challenging governance theory: From networks to hegemony. Bristol, UK: Policy Press.)
국가 개입 없이 노동자 건강은 개선되지 않아
로벤스 보고서에는 필자가 선택적으로 인용한 내용 말고 좋은 얘기, 새겨들을 만한 얘기들도 많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번역해서 500페이지나 되는 내용 중에 좋은 얘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한 얘기들은 다른 문헌을 읽어도 나온다. 문제가 있는 철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현상을 기술하는 것에 불과한 진단에 따라 위험한 처방을 내는 보고서를 굳이 노동운동 진영과 시민사회가 참고할 필요는 없다.
방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영향을 주는 정책 요인을 근거 중심으로 리뷰하여 내린 학자들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노동자 안전과 건강 관련 행정이 비효율적이라는 신화는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되어 왔으며 반대자들은 자율적인 노력이나 컨설팅 활동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방대한 근거 중심 문헌 검토의 결과는 법제도의 존재와 이를 집행하는 작업장 지도감독이 실제로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나타냅니다. 노동자 안전과 건강 관련 법 집행 활동을 제거하기보다는 알려진 수단을 강화하고 개선할 것을 권고합니다.”(Andersen, Johan Hviid, et al. “Systematic literature review on the effects of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OSH) interventions at the workplace.” 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 health 45.2 (2019): 103-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