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부터 사회학적으로 ‘세대론’은 자주 사용된다. 최근에는 MZ세대가 대표적이다.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조직과 자신을 분리하고 ‘워라밸’을 지키는 세대로 규정된다. 그런 의문도 든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걸까. 더 정확히는 자신의 근무조건에 적극 문제제기를 하고, 보장된 휴식시간을 반드시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까. 같은 세대 내에도 부모의 능력과 교육, 성별, 태어난 지역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고 이는 불평등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어떤 동질성’이 같은 세대라고 치부하며 그들을 MZ로 묶어버린다. 이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자칫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은폐 내지는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만난 10명의 도시 속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세대이나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MZ세대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도시 속 2030 여성들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편집자 |
내가 사는 서울의 서쪽 동네는 K-POP을 생산하는 대형회사 중의 하나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인지, 작은 연예기획사들도 요기조기 들어와 있다.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고 아이돌 가수들을 본 적은 없지만 연습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밤늦게 퇴근하는 골목길을 본 적이 있고, 성공한 아이돌이 연습생일 때 밥을 해 준 백반집이 성지가 되어 해외 팬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야트막한 건물들의 오래된 동네이지만 꿈을 꾸는 이들에겐 치열한 전장일 것이다. 꿈의 뒤편에서, 화려하고 예뻐야 하는 것들의, 안 보이는 데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 물론 아이돌 연습생들의 노동이 힘겹다는 것을 안다 – 작은 회사 아이돌이라도 팬미팅을 하게 되면 아티스트 보호도 필요하고 현장 정리도 필요하기 때문에 팬미팅을 할 때는 알바를 구한다. 동네에 알바 가는 이들이 있다. 팬미팅 알바보다 더 세 보이는 일을 하는 일꾼들도 보았다. 옷을 옮기는 여성들이다. 승합차 뒷문이 열리더니 옷더미를 끌어안고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계단으로 올라간다. 옷이 잔뜩 걸려 있는 행거를 앞에서 지고 뒤에서 메고 계단을 올라간다. 한 발 떼는 발들이 힘에 겨웠다. 스타일리스트 또는 그 어시(어시스턴트, 조수)들이었다.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 해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신청서를 냈다. 이 사업으로 만난 이를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강남에서 약속을 잡은 건 처음이었다. 강남이 처음은 아니다. 강남에도 집회하러 갈 일이 간혹 있기는 했다. ‘스타일리스트’와 강남처럼 어울리는 조합으로는 처음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약속 장소인 카페로 가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광이 나는 검은 상하의를 입고 파우치백을 든 남성들이 너무 많은 테이블을 차지하는 바람에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여튼 강남은 무언가 다르다.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한 유는 실장과 팀장. 어시가 두 명은 있어야 하는 회사에서 스타일리스트로 일했다. 어시들은 있다가도 없고 왔다가 금방 떠났지만 유는 팀장이었기에 어시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프로페셔널하게 일했다. 일 할 사람은 무조건, 항상 필요한데 어시가 없어서 실장이 일을 못 받을 때도 있을 만큼 인력 상황이 오락가락 했다. 신입 어시의 월급이 지금은 100만 원에서 120만 원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유가 시작할 때는 60만 원이었다. 지금 실장들이 어시일 적에는 20~30만 원으로 시작했다. 유는 60만 원을 받아도 성취감을 느꼈고 미래를 꿈꿨다고 한다. 유의 눈에 120만 원을 받는 요즘 어시들은 달라 보인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중학교만 졸업한 상태로 오는 이들이 있을 만큼 여전히 꿈꾸는 이들이 있지만 워라밸이 대세인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전공, 경력이 있으면 좋지만 전공 무관, 다른 일을 하다가 오는 사람도 많다. 사람은 수시로 바뀌지만 일거리보다 사람이 여전히 많다. 들고나는 게 자유로운 만큼 지켜야 할 노동기준도 없다. 이 업계가 주먹구구식이라고 유가 말했지만, 주먹구구식인 데는 이유가 있고 보통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이윤창출 방식이어서 유지된다.
회사는 대표인 실장이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받는 매출에서 어시와 팀장 급여를 주고 자신의 수익을 남기는 식으로 운영된다. 드라마를 하던 배우가 광고를 하게 되면 일도 더 생기니 수익이 더 발생하는 식이다. 실장의 수주능력, 평판관리가 매출유지에 필수다. 유는 팀장이 되기 전에 유명한 연예인을 맡은 규모 있는 팀에서 어시로 일을 배웠다. 인지도 높은 연예인은 실장이 직접 착장을 챙기고, 연예인의 평판에 약간의 문제라도 생기지 않도록 예민하게 신경 썼다.
이런 현장에서 어시로 일하면서 유는 너무 긴장을 해서 쓰러진 적이 있다. 1년 넘게 일한 곳이었지만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될 것 같다’는 카톡이 날아왔다. 긴장을 안 해도 문제가 생기겠지만, 너무 잘하고 싶어서 곤두서 있다가 쓰러져도 잘릴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일이 고리가 되어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곳이 연예매니지먼트 업계다. 의류회사에 취업해서 매장 스타일리스트로도 일해 봤지만 평이하고 재미가 없었다. 강남 로데오 거리로 다시 돌아왔다.
헤어&메이크업은 샵에서 하고. 의상, 신발, 액세서리까지 머리 아래의 일들은 스타일리스트가 책임진다. 배우가 샵에 들어가는 시간이 새벽 6시면, 스태프들은 샵에서 나온 배우에게 바로 필요한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새벽 4시, 5시에 도착해서 그날의 촬영분량에 맞는 의상을 챙겨놓는다. 매니저가 스타일리스트와 의상을 픽업해서 촬영장으로 간다. 한 씬 한 벌을 위해서 최소 네 벌은 나와야 한다. 그 중 괜찮은 두 벌을 현장에 가져간다. 한 씬만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수십 벌이고 그 몇 배의 옷을 피팅해 본다. 최종 한 벌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옷을 들어야 하는지, 캐리어에 싣고, 행랑에 싣고, 이고 지고. 다시 정리하고 내린다. 유가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스타일과 이미지가 유의 노동에 대한 보람이고 자부심이겠지만, 창조의 영역을 빼고 듣는 이야기는 온통 짐을 지고 싣는 노동이다.
드라마는 주요 배역마다 고정 스타일리스트가 있어야 한다. 유는 긴 드라마를 맡아서 6~7개월 동안 한 배우를 전담했었다. 배우가 드라마 대본을 받을 때 스타일리스트도 같이 대본을 받는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도 만난다. ‘이 배우의 스타일 팀입니다’. 컨셉을 이렇게 잡았고, 이런 이미지로 가려고 한다고 설명하면 감독이 피드백을 준다.
드라마 전반을 보는 의상팀도 있기 때문에 의상팀과도 협업한다. 컨셉이 정해지면 그 기조로 씬마다 배우들 옷을 갈아 입혀준다. 드라마는 열 시간 또는 그 이상, 밤낮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계속 찍었다. 지금은 그렇게 촬영하면 신고를 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몇 해 전 일인데도 의도와 관계없이 유의 경험은 자꾸 ‘라떼는’ 고생담이 되었다. 몇 년 사이 드라마 제작현장이 조금 달라진 면이 있는 것 같고, 유가 지금은 어시가 아닌 팀장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팀장이어도 작은 회사 팀장이니 발품 파는 일은 그대로다.
강남, 청담동 로데오거리에 빼곡한 협찬사들을 돌며 의상을 받는다. 로데오 거리를 돌며 의상, 쥬얼리, 소품을 받아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착장을 맞추어 본다. 착장이 셀렉(선택)되면 촬영장으로 들고 나가 배우에게 사용하고 일정을 마치면 수거해서 사무실로 들어와 정리한다. 같은 동선을 반복하며 반납한다. 협찬사들은 연예인을 통해 제품을 선보여 광고효과를 얻는다. 신인 연예인을 맡았다면 협찬사에 어필을 해야 한다. 스타일리스트가 네임 밸류가 있으면 협찬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시들에게 중요하다. 신인이나 조연급 연예인이 협찬을 받는 건 어시의 일인데 뚫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협찬사에 가서 배우 SNS도 보여주고, 작품 소개도 하고 ‘사진 예쁘게 찍어드리겠다’고 어필을 해야 한다.
내가 물었다. “영업이네요”” 유가 답한다. “어필이죠”
처음부터 업계의 생리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에너지를 쓰던 나는 이 대목에서 헷갈려 버렸다. 연예인홍보는 매니지먼트 회사 일인데 스타일리스트 어시들이 협찬사를 뚫어야 한다.
실장이 일을 따와도 계약서가 없다. 종이 계약서를 쓰는 회사도 있겠지만 유가 본 적은 없다. 배우에게서 일이 들어왔다고 하면 그 말이 일을 시작하는 신호다. 배우가 먼저 ‘그 실장이랑 일해보고 싶다’고 해서 성사되기도 하고, 배우가 실장을 추천받기도 한다. 배우가 컨택을 하건 매니지먼트 회사가 연락을 하건 배우를 상대로 일하고 돈은 매니지먼트 회사가 지급한다. 한 명의 아티스트만 맡지 않는다. 스타일리스트 한두 명이 배우 여럿도 맡고, 업무량의 기준이 없다. 들어오는 대로 받아서 잠을 줄여가면서 한다. 실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촬영스케줄이 있을 뿐 평일 주말이 없다. 팀이 크거나, 스태프가 여럿이면 일을 나눌 수 있고, 휴식을 위해 교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규모는 거의 없다.
유는 세 명의 사수, 세 번의 팀을 겪었는데, 운이 좋아서 임금을 밀리거나, 못 받지는 않았다. 다른 팀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었는데, 일이 없으면 임금을 줄여서 주거나 ‘조금 쉬고 올래?’ 하거나 다른 팀에 파견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나중을 대비해서 자를 수는 없고, 월급을 줄 형편이 안 될 때 다른 팀에서 일을 하게 해 준다. 자유로운 것인지 묶어두는 것인지 헷갈린다.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스타일리스트들은 녹음이 필수다. 프리랜서들이 다 비슷하겠지만, 말이 조금만 바뀌어도 일자리도 월급도 홱홱 달라진다.
허리가 심각하게 아프기 시작한 건 드라마를 하면서 서울에서 차로 다섯 시간 거리의 소도시를 수시로 오갈 때였다. 옷 더미를 끌어안고 나르다가 허리가 뚝, 하더니 걷기가 힘들 지경이 되었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장시간 차로 이동하는 일도 멈출 수가 없었다. 스타일리스트가 드라마 촬영 중간에 그만두는 건 좁은 업계에서 난장판 만들고 그만두었다고 소문이 나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이 생기는 일이다.
드라마를 끝내고 디스크가 터지고 유는 회사를 나왔다. ‘쉬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한 마디를 못 들어서 유는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실장과 말싸움이 되고 감정이 상했다. 유의 노동 이야기를 듣는 나는 실장이 따뜻한 말을 안 했다는 것이 크게 야속할 것 같지 않았는데,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되지가 않나 보다. 유는 디스크 치료를 받고 재활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마음에 맞는 팀을 만나 일을 계속 하고 싶다. 연예매니지먼트 산업과 방송제작 업계의 생리를 이해하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써서 나는 유의 개인적인 사정은 거의 묻지 못했다.
매니지먼트 회사들은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비용을 줄일수록 지출을 낮춘다. 방송은 제작 여건을 개선하지 않고 촬영 시간을 줄이지 못하는 프로그램이 아직도 많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수십 개 팀의 의상을 스타일리스트 서너 명이 맡아서 옷을 대여하고 제작하고 수선한다. 무대를 만들어가는 꿈을 찾아 그들이 자발적으로 노동하고 있다고 해서-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방송산업, 연예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수탈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 이 연재는 2023년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한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서 만난 여성들, 노동건강연대가 활동하면서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