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3년 7월14일
똥물 투척 · 식칼테러에 이어 정신질환까지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청구성심병원은 지역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알짜’ 병원이다. 그런데 이 병원 직원들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병원측으로부터 고통을 겪은 나머지 노조원 상당수가 정신질환자가 되고 말았다.
‘알짜 병원’의 노조 탄압
▲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청구성심병원. 이 병원의 노조 탄압으로 노조원들은 정신질환까지 앓게 됐다
ⓒ2003 .
보건의료노조 청구성심병원지부 노조원들은 “병원의 노조탄압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며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에 집단으로 산업재해 요양 신청서를 제출했다.
산재요양신청을 한 노조원은 모두 9명으로, 전체 노조원 19명의 절반에 이른다. 정신질환을 이유로 집단적 산재요양신청을 한 것은 산재제도가 시작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정신질환은 일반적으로 그 병력을 숨기려 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들이 공개적으로 산재인정을 요구하고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청구성심병원노조 최윤경 지부장 직무대행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산재인정 뿐만 아니라 병원 측의 극심한 노조탄압과 부당노동행위를 고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병원이 노조원들에 대해 직접적인 폭언과 폭력은 물론이고 승진차별, 차별적인 업무 과부여, 부서 내 ‘왕따’ 유도 등을 통해 노조원들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노조원들은 끊임없이 과도한 일상적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이것이 집단적 정신질환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것.
노조 주장이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들을 진찰한 전문의의 설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피해 조합원들을 검진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배기영 박사는 “검진 받은 14명 중 7명은 ‘적응장애’, 1명은 비기질적 수면장애(불면증) 진단을 받았고, 나머지 노조원들도 불안. 긴장, 우울, 가슴 답답함, 불면 등의 증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적응 장애’란 심한 스트레스를 장기적 혹은 반복적으로 겪어 우울증이나 불안 반응을 보이고, 이전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태를 일컫는다.
배 박사는 “진료를 위해서 노조원들이 겪은 일들을 듣고 있노라면 내 가슴까지 답답해질 정도였다”며 “노조원들이 겪고 있는 질환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소견을 밝혔다.
배기영 박사는 “전에 일하던 병원에서 너무 웃어서 얼굴에 주름살 생기겠다는 소리를 들은 직원과 가장 친절한 간호사로 뽑혔던 직원이 정신질환자가 됐다는 것은 이 병원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병원 이사장의 노조 혐오증
청구성심병원은 지난 98년에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조사를 받았고 노사정위원회 부당노동행위특위(당시 위원장 노무현)의 중재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이사장 김아무개씨는 1998년도에 민주노총으로부터 부당노동행위 사용자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윤경 지부장 직무대행은 “97년 이전까지는 노사관계가 원만한 편이었는데 김 이사장이 병원에 들어오면서부터 노사갈등이 심해지기 시작했다”며 “김 이사장은 노조를 너무 싫어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청구성심병원의 노조 탄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98년에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식칼테러와 똥물 투척사건, 간부집단해고 등의 비상적인 일이 벌어져 여론의 지탄을 받은 바 있다.
이 병원 김 아무개 이사장의 노조 혐오증으로 인해 최근 2년 동안 병원을 그만 둔 노조원은 20여명에 이르며, 1998년 당시 180여명에 이르던 노조원 수는 현재 19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김 아무개 이사장은 ‘노조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삭발과 단식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미 청구성심병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법원도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노조가 병원에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제기한 1억 손해배상소송에 대해 법원은 병원은 노조에게 2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화해권고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지난 4일에 병원이 조합원들에게 노조비방유인물을 배포하고 노조탈퇴를 강요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러한 노조 주장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노조가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폭행과 폭언, 업무과부하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도 뚜렷한 근거는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노조가 산재 신청을 한만큼 앞으로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반박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우석균(가정의학과 전문의) 정책국장은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노동자에게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것이 있는지,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노동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건강을 지키자고 만들어진 병원에서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질환에 걸리고 숨겨야할 자신들의 정신질환을 오히려 스스로 폭로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이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yleft9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