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제5차 세계여성파업, “죽임이 아니라 보살핌에 투자하라”
여성들이 파업에 나섰다.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무기인 줄로 알았던 ‘파업’을 가정주부, 농민 여성, 빈민 여성, 그리고 성노동자들이 올해로 이미 5년 째 전개하고 있다.
3.8 세계여성의 날에 맞추어 전개되는 여성 파업은 여성의 모든 노동(가사 노동, 아이를 낳고 기르고 가르치는 일과 노인과 아픈 사람 등 약자를 보살피는 일과 같은 사회적 노동 그리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위반하는 차별 임금이 구조화되어 있는 임노동 등)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불인정을 뒤엎어버리기 위한 투쟁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세계여성파업은 세계 70여개 나라에서 동시에 전개되는 데 다양한 여성 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다. 수출자유지역과 같은 공단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수돗물을 요구하는 빈민 여성, 병원비 삭감을 주장하는 지역 여성 주민, 미사일 배치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시설 앞에서 농성을 하는 여성, 시청의 도시 미화 정책으로 철거의 위협을 받고 있는 성노동자, 미국의 침략 전쟁으로 50만 명의 어린이를 잃은 이라크 여성, 무력 분쟁으로 인해 난민이 되어 버린 여성, 댐 건설 등의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외지’의 선주민 여성,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을 다시 일구는 농민 여성 등.
이들 다양한 지역과 다양한 일을 하는 여성을 하나로 잇는 것은 ‘죽임’이 아니라 ‘보살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세계여성파업은 “세계를 멈추어라 그리고 바꾸어라 – 죽임이 아니라 보살핌에 투자하라”를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성노동 가치 사회적 불인정 “뒤엎자”
세계여성파업은 아일랜드의 ‘전국여성협의회’와 ‘가사노동 임금 쟁취’라는 두 단체가 ‘국제가사노동임금쟁취운동네트워크’라는 국제 네트워크에 ‘여성 파업’을 전 지구적으로 전개할 것을 제안하면서 2000년에 처음 전개되었다.
‘가사노동 임금 쟁취’를 내세우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세계여성파업은 유급노동과 무급노동 간을 구분하는 가치관을 문제 삼으며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여성의 모든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임금 지급 그리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이 여성뿐만 아니라 세계의 빈곤, 착취, 차별 그리고 폭력과 전쟁을 없애는 핵심 지렛대로 파악하고 있다.
유엔에 의하면 모유 먹이는 것, 육아, 아픈 사람과 나이 많은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살피는 일, 가족을 먹이는 식량을 재배하고 음식을 장만하고 요리하는 일(아프리카에서 소비되는 모든 식량의 80%가 여성에 의해 생산된다), 자원 활동, 청소, 의류 생산, 노점상, 성 노동 등 비공식 경제 부분의 노동을 비롯한 공식 부분의 노동 등 세계의 모든 노동의 2/3를 여성이 맡아서 한다. 공식 부분의 여성 노동도 상당 부분 병원, 학교, 가정부, 탁아, 개인 비서 등 보살핌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은 영세 공장 등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한다. 이러한 노동을 하는 과정에는 성과 인종에 빗댄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파업 요구 사항
* 모든 ‘보살핌’의 노동에 대한 임금, 연금, 토지, 기타 자원을 등의 보수를 지급하라. 아이들을 키우고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보다 더 귀중한 것이 무엇인가? 군사비와 감옥 대신에 생명과 복지에 투자하라.
* 전 세계 시장에서 모든 여성과 남성에 공정한 임금을 보장하라.
* 모유를 먹이는 어머니를 시작으로 모든 사람들의 식량 안보를 보장하라. 유급 출산 휴가, 수유 휴식 그리고 기타 혜택을 보장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행되는 모든 불이익 철폐하라.
* 제3세계는 외채 상환 책임이 없다. 우리는 빚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진 빚을 받아야 한다.
* 깨끗한 물, 보건의료, 주택, 교통, 문자해독능력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라.
* 여성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비오염 에너지와 기술을 보장하라. 모든 사람에게 조리 기구,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그리고 휴식 시간을 보장하라.
* 가정 구성원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한 모든 형태의 폭력과 박해로부터 보호와 휴식처를 보장하라.
*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자본은 자유롭게 이동한다, 사람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
그러나 실제 여성이 노동을 통해 받는 대가는 세계 총 자산의 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1995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유엔 세계여성대회에서는 여성들의 생애 무임금 노동 시간과 이를 통해 창출되는 가치를 국가 차원에서 집계하도록 하는 결의가 이뤄졌다.
1997년 영국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여성의 무임금 노동이 영국 경제에 7,400억 파운드의 가치를 기여하고 있으며 1995년 조사에 의하면 임노동에 종사하는 아이가 있는 여성은 추가로 주당 46시간의 육아, 음식 장만, 청소, 빨래, 시장 보기 등의 가사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로 여성이 아무런 임금을 받지 않고 담당하는 장애인 등을 보살피는 노동은 연간 390억 파운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이를 포함한 각종 공식, 비공식 자원 활동의 비용을 돈으로 환산하면 680억 파운드가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세계 각국 정부는 군사비에 매년 9천억 달러 이상을 투입하고 있는데, 1997년 유엔 인간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이 돈의 10%만 있으면 세계 모든 민중의 기본 의식주가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여성파업에 참여하는 여성 단체들은 ‘죽임’을 숭배하며 지속시키는 데 대한 자원 투입을 중단하고 생명을 낳고 키우고 보살피는 여성의 ‘보살핌’의 노동을 인정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데 투입할 것을 요구한다.
세계 곳곳의 여성노동자 투쟁 – 모든 노동 거부
2000년 제1차 세계여성파업에는 30여개 나라의 여성단체들이 참여하였다. 아일랜드에서는 전국여성협의회 등 많은 여성 단체들은 여성의 무급 노동이 연간 140억 파운드의 가치를 생산하는 아일랜드 최대 산업이라고 주장하며 2월1일을 모든 여성에게 휴가비가 지급되는 유급 공휴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필리핀에서는 여성단체들이 3월8일을 유급 공휴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여성을 상대로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 자본에 대한 항의로 쇼핑하지 않는 날로 지정하고 ‘쇼핑파업’을 전개하였다. 나이지리아의 기층여성재단도 3월8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며 모유를 먹이는 여성노동자들에게 특별 수당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였다. 인도에서는 3월8일 하루 동안 가사노동 및 기타 모든 노동을 거부하기로 하고 지역별로 수 천 명이 참여하는 행진을 진행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가정주부노조 회원들이 각종 조직된 행사 외에 자기 집 앞에 빗자루를 세워놓는 행동을 진행하였다. 이들은 “무임금 노동자들에게 무기여 연금 지급하라”를 주요 요구로 내세웠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진행된 지난해 4차 세계여성파업은 70여개 나라의 여성단체들이 전쟁 반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참가단체들은 공동 호소문에서 “세계 군사예산을 주로 여성이 담당하는 보살핌의 노동에 투입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생명과 보살핌이 사회의 최우선 과제가 될 수 있도록 우선 순위의 전면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모든 여성과 민중에 전쟁을 자행하는 전쟁을 위한 기름, 석유를 위한 전쟁을 중단하라”고 요구하였다.
런던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항의집회에서는 이라크 여성대표가 미국의 경제 제재 등으로 50만 명의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폭로하였고, 에트리아에서 난민으로 온 여성 대표가 여성과 어린이가 무장 분쟁의 주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소개하였다. 그린햄코먼스에 참여했던 여성 대표는 여성들의 직접 행동으로 미국의 순항 미사일을 무찔렀던 사례를 되새겼다. 그리고 장애 여성 대표는 전쟁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장애인을 위한 예산이 삭감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였다.
인도에서는 3개 지역에서 5일 간 파업을 전개했는데, 매일 5천명 이상이 반전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10일에는 주지사를 면담하여 과부에 대한 재정 지원, 마을 단위에서 여성 지원 정책 실시, 여성에 토지 분배와 부부의 토지 공동 소유제의 제도화, 지참금 제도 등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 근절, 동일 임금 그리고 빈민층에 대한 사회보장 등을 요구하였다.
아일랜드에서는 미군의 샤논 공항 사용을 저지하기 위한 공항 점거와 에워싸기를 전개하였다. 몇몇 여성들이 미군 비행기를 공격하여 군인을 실은 3개의 군함이 철수하기도 하였다.
페루에서는 농촌지역 여성들이 농산물의 공정한 가격,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 수도와 전기 확충, 모성 보호 확대를 요구하였다. 이들은 또 선주민의 문화와 언어 보전 권리를 요구하면서 자기 언어로 교육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물과 전기와 같은 모든 사람들의 공동 자원으로 생산되는 서비스의 사유화, 사영화를 저지할 것을 호소하였다.
우간다에서는 깨끗한 물 보장, 농촌 여성의 빈곤과 질병 퇴치, 무기 대신 생필품 제공 등을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전개하여 병원 진료 때 개인이 내야 했던 개인 부담금 제도의 철폐를 쟁취했다.
세계 여성의 저항 전통 승계
세계여성파업을 주도하는 단체들은 이러한 운동은 사파티스타 투쟁, 인도 칩코 여성들의 벌목 반대 투쟁, 영국 여성들의 그린햄코먼스 미군기지 반대 투쟁, 여성 참정권 투쟁, 러시아 혁명을 촉발시킨 여성 노동자 파업 투쟁, 작업장 내 탁아소 쟁취 투쟁 등 세계 여성의 저항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급노동과 유급노동의 모순과 전쟁, 빈곤, 차별, 폭력의 직접 피해자인 여성이 나서서 극복하기 위한 운동으로써 의식적으로 ‘파업’을 주요 행동 양식으로 채택하여 역사적으로 이어져왔으며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는 여성 운동의 ‘전투성’을 재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 사이트 http://www.globalwomenstrike.net
윤영모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국제정보센터 추진위원
beard@kls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