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 국제산재노동자추모의 날 기념 특집]
“산재정책 노동자 배제는 반민주주의” … 노동자 대표가 나서야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 노동자건강권 확보를 기대하며
박두용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한성대 안전보건경영대학원 교수)
지난 총선 때 민주노동당은 1,25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정책공약집을 발간했다. 거대한 여당이나 다른 어떤 야당보다도 양이나 질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방대하고 구체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시급하고 중요한 민생현안이 모두 포함되지는 못했다. 그만큼 우리사회에 쌓이고 뒤틀린 민생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민주노동당 정책공약에는 노동보건정책이란 항목으로 산업재해에 대한 정책공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탓일까. △산업재해ㆍ직업병 인정 기준의 확대, 휴업급여, 장해급여 등의 보장성 강화 등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개정 △소규모, 영세 사업장의 산업재해, 직업병 예방을 위한 공공적 제도 마련과 체계 구축 △직장건강증진사업의 활성화와 사업장 평생건강관리체계 구축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참여를 통한 노동자 건강감시체계 확립 △각종 ‘노동안전보건 규제완화 조치’의 조속한 복원을 통한 근골격계질환, 뇌?심혈관계 질환, 스트레스 관련 질환 다발 사업장에 대한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하는 민주노동당의 정책공약이 모두 중요한 것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산재사망자 해마다 급증
지난 22일, 노동부가 발표한 2003년 산업재해 현황은 민주노동당 정책자료집의 빈틈을 여지없이 파고든다. 지난 한해동안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가 2,923명에 이르고, 일하다가 사고를 당해 다치거나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가 9만 4,924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날마다 멀쩡한 노동자들이 8명은 죽고, 260명이 상해나 질병에 걸렸다는 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최근 들어 이러한 산재가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에도 2001년보다 증가했었는데, 2003년에는 또 다시 2002년보다 재해율은 무려 16.9%, 산재사망자수와 사망만인율은 12.2%나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유독 사망자수가 많다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않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 뉴스는 고스란히 늘어난 사망자 수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들의 죽음 앞에서 사후보장성 강화를 논하고 있는 것은 죽은 자는 물론 수많은 잠재적 피해자인 살아 숨쉬는 노동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이제 더 이상 일하러 갔다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 줄 정책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일터는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는 곳이지 전쟁터가 아니다.
기업살인 막기위한 입법장치 필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산재사고를 보면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같은 사업장에서 유사한 종류의 사망사고가 반복된다든지, 노동조합이나 노동자가 위험성을 문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방치했다든지, 노동부로부터 시정명령이나 개선명령을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산재사고가 발생했다면 이것은 단순한 과실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고의적인 안전조치 의무위반이고 그 결과로 인해 노동자가 사망했다면 이것은 기업의 구조적인 살인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고의적인 위반(wilful violation)에 의한 산재사망에 대하여 사업주의 처벌을 형법상 살인에 준하는 수준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기준을 강화한 입법사례는 국회라는 입법기관으로 진출한 민주노동당의 노동안전보건정책에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노동자의 참여 보장해야
그 동안 노동자들은 가장 큰 이해당사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산재문제나 산재정책에 있어서는 늘 소외되어 왔다. 노동부 산하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노동자가 참여하도록 법으로 보장되어 있으나 유명무실하였으며, 근로복지공단이나 산업안전공단의 운영에도 노동자 참여는 배제되어 왔다. 기업의 수준에서 실질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에 대한 참여도 대부분 형식적이거나 그나마도 참여기제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이것 또한 일차적으로 법적 하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은 실질적인 노동자의 참여가 보장되는 법과 제도의 마련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을 노동자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미 민주노동당은 산재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나 보호조치를 위한 산재보상보험법의 강화를 공약으로 제시해 놓고 있다. 이것은 그 동안 노동계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된 바 있어 이번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로 가장 확실하게 제도개선이 이루어 질 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그동안 노동계에서 꾸준히 제기해 온 ‘선보장 후판정’가 같은 문제는 시급히 해결하여 산재판정까지 고스란히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노동자가 떠안는 불합리한 점이 하루빨리 고쳐야 할 것이다.
산재노동자 보장성 강화
노동건강권은 사후약방문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건강검진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건강검진은 노동자가 소외된 상태에서 속된 말로 짐짝 취급을 받는 ‘건강검진대상자’였지 건강검진권리자가 아니었다. 이제 노동자가 일년에 하루라도 원하는 병원에서 원하는 날짜에 당당한 손님으로 나의 건강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한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의 입장에 서서 진정한 의미의 노동자 건강검진권을 돌려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을 보면서 ‘개별검강검진권제도’나 ‘건강검진휴무일’이 실현되는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험난한 현실적 장벽을 넘어 이제 막 원내 진출한 민주노동당에게 이 땅의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수많은 기대와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은 그저 민주노동당 의원들에게만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의회라는 틀에서 우리의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나간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4월 28일은 국제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이제 우리도 이 땅의 노동자, 농민이 참여하여 더 이상 산재가 발붙일 수 없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사회를 만들어 국제사회에서 자랑할 수 있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한 해가 되기를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과 함께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