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폐광 오염문제 사건 안터지면 모르쇠로 일관”
농수산물 판매 우려 피해 주민도 쉬쉬…“국민의 건강권은 어디로”
미디어다음 / 김진경 기자
병산마을에서 5분 정도 바닷가로 향하면 만날 수 있는 용호마을. 삼산광산, 성지광산 등 6개의 폐광 갱도를 짊어지고 있는 마을 앞바다의 갯벌이 죽어간 것은 우연일까. ⓒ미디어다음 김준진
“지도에 폐광된 수천개의 광산을 붉은 점으로 찍으면 시뻘겋게 될 겁니다. 폐광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는 하천에 섞여 강과 바다로 흐르죠. 그 물로 기른 쌀과 바다에서 난 굴과 바지락을 먹고 삽니다. 우리가 외면한다고 오염된 산과 강이 사라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공해병’ 토론방 바로가기
마산창원 시민환경연구소 수질센터 이상용 실장의 얘기다. 이실장은 “정부는 전국 휴, 폐광산의 수를 906개, 이 가운데 158개가 오염상태가 심각해 중점관리 대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일제시대 부문별하게 개발된 중금속 광산까지 포함하면 1500개는 넘을 것”이라며 “복구처리 되지 않은 채 방치된 폐광 주변이 오염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녹색연합 생태국 서재철 국장은 “제 2, 제3 고성 병산마을 사태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폐광 10년 지난 후에야 오염실태 조사 시작
우리나라 금속광산은 1910년부터 193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개발됐다. 일제는 금과 은, 구리, 아연, 납 등의 자원을 본국으로 가져가기 위해 곳곳에 땅굴을 뚫었다. 1970년대에는 국가경제를 위한 금속광산 개발이 계속됐다. 1980년대 중반 들어 생산성 저하로 하나 둘 폐광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금속을 채취하는 광산은 불과 10여개 정도 남아 있다.
폐광을 환경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토양환경보전법이 제정되면서부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1995년부터 3년간 전국 휴·폐 금속광산 906개를 조사한 결과 127개 금속광산에서 환경오염이 발생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2002년 대한광업진흥공사가 실시한 ‘폐금속광산 토양오염실태 일제조사(영남권역)’에서 경북 영천시 신령면의 폐금광인 은성광산 등 18곳은 농경지 등 일반 토양까지 오염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영천시 신령면 은성광산 폐광석 더미 주변에서 납이 토양환경오염대책기준의 14배인 4천3백40ppm까지 검출됐다”며 “카드뮴도 오염대책기준인 4ppm의 다섯배나 나왔다”고 밝혔다. 광산 인근 논과 밭에서도 기준을 초과한 납과 카드뮴이 발견돼 이곳에서 생산된 농작물이 중금속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함께 지적됐다.
200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폐금속광산 토양오염실태 일제조사’에서는 강원도, 경기도,전남 등 4개 지역 32개 폐광 중 16개 폐광이 중금속에 오염됐으며, 주변 토양까지 오염시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태조사를 맡았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최용수 박사팀은 “광미 적치량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상동광산에서 1200만톤으로 가장 많이 조사됐으며, 폐광석은 강원도 양양광산이 60만톤으로 최대양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올해는 환경관리공단 중부지사에서 충남 논산 금화광산 등 23개 폐광에 대한 토양오염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적은 예산, 짧은 기간에 이뤄지는 실태조사 ‘신뢰성 떨어져’
환경부는 병산마을에 대한 치밀한 역학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을 주민들이 겪고 있는 질환에 대해 ‘이타이이타이병’으로 볼 수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주민 일부는 여전히 유모차에 의지한 채 걷고 있었다.ⓒ미디어다음 김준진
부산동의공업전문대 김철 교수는 정부 기관의 폐금속광산 토양오염 실태조사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민간업체인 ㅎ개발의 의뢰로 울산시 달천광산 인근의 토양오염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는 김교수는 “정부는 올해 충남지역 23개 지역 오염실태 조사에 9,200만원을 책정했지만, 민간기업은 달천광산 1개 토양오염 조사에만 2억 2천만원을 책정했다”고 비용문제를 지적했다.
김교수는 또 “현행 정밀조사 지침으로는 복잡한 폐광오염실태를 파악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며 조사방법과 기간의 문제를 지적했다.
일이 터진 후 땜질식 처방을 내리는 것도 문제다. 김교수는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되지 않는 이상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정부의 현재 모습”이라며 “고성 병산마을처럼 사고 후 뒷수습을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폐광 지역 토양오염 및 주민 건강문제는 주로 지역 환경단체나 언론에 의해 제기된다. 경남 고성 병산마을의 오염실태는 마산, 창원 환경연합이 밝혀냈고, 경남 거제시 동아광산의 실태도 거제환경연합이 이슈화했다. 일제시대 때 금과 비소를 캤던 강원도 정선군 낙동광산 주변의 환경오염 문제는 2002년 KBS 환경스페셜이 오염실태를 보도한 후 올해 들어서야 폐광 복구사업 계획에 포함됐다.
환경단체 문제제기에 주민들 생계 우려 ‘쉬쉬’
병산마을에서 산 하나 너머 있는 미룡마을. 마을의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저수지 위에는 폐광이 있다. 주민들은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본 적이 없다고 전한다.ⓒ미디어다음 김준진
정부와 지자체의 운영미숙도 폐광지역 오염에 한 몫하고 있다. 경남 거제시 하청면 덕곡리 동아광산은 86년 문을 닫은 이후 채석장이 들어섰지만, 광업권은 소멸되지 않아 폐광산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거제시 환경운동연합 윤미숙 사무국장은 “거제시가 ㄷ산업에 채석장허가를 내주었지만, 광업권이 살아 있어 정부의 폐광 공해방지 사업비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동아광산은 2002년 환경부가 조사한 ‘폐금속광산 토양오염 일제조사(영남권역)’에서 중금속 오염도가 고성 제일삼산광산보다 1.75배로 영남권역 32개 광산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환경오염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지역 주민들은 오히려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윤사무국장은 “동아광산 주변 주민들은 굴과 바지락 양식장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로가 막힐 것을 우려해 쉬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다음이 취재를 위해 들른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과 경남 고성군 용호마을 주민 중 일부도 “환경오염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일부 주민들은 “환경오염은 사실이지만, 이 지역 농산물의 판로와 자식들 혼사길 막힐까 걱정이 돼 말을 못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건강보다 마을의 이미지 실추로 당장의 생계가 위협받는 일이 더 무서운 일이다. 윤사무국장은 “삶을 위해 건강을 포기하는 주민들을 정부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남 고성 병산마을을 가다 “‘이타이이타이병’ 의심 지역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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