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으로부터 외면 당한 또 하나의 죽음”
자살한 중국인 노동자 고 정유홍씨 노동시민사회단체장 치러

김용한(news4u) 기자

지난 4월 27일 회사의 임금체불에 못 이겨 안심역에 들어오는 전철에 뛰어들어 숨을 거둔 정유홍(여, 34, 중국 요령성)씨의 ‘노동시민사회단체장’이 지난 27일 파티마 병원 주차장 근처에서 열렸다.

고 정유홍씨는 자살이라는 이유로 인해 회사로부터 임금체불, 정신적 스트레스 등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승인 불인정 결정을 받은 바 있다.

고 정유홍씨의 유족과 친지, 중국 동포들, 지역사회·시민단체들이 참석한 가운데 쓸쓸하게 발인 절차를 밟았다. 발인 절차를 마친 고인은 대구종합고용안정센터(노동부 산하)에서 이승과의 마지막 이별절차인 영결식을 거행했다.

지난 2000년 7월 21일 한국에 합법적으로 입국해 취업한 정유홍씨는 남편(한족, 37)과 아들(12)을 남겨둔 채 유명을 달리했다. 장씨의 영결식은 대구참여연대, 대구외국인노동자상담소, 성서공단노동조합, 대구여성회,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 등 31개 단체가 참여했다.

영결식은 장례사, 선곡에 맞춰 유족 잔 치기, 경과 보고, 각 단체의 추모사, 추모시(변홍철 장례위원), 추모곡(동지를 위하여), 결의문 낭독 순으로 이어졌다.

추모사에 나선 함철호 장례위원장은 “정씨는 이 땅에서 가장 어두운 곳, 힘든 곳에서 일을 하다가 꽃다운 나이에 숨져간 사람이다”고 언급하면서 “사장, 고용안정센터, 현장(취업현장)에서의 외국 노동자에 대한 차별로 정유홍씨의 죽음을 재촉했다”고 말했다.

함 장례위원장은 고인의 죽음을 비통해 하면서 “고인은 고 김선일씨와 똑같이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한 죽음이다”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중국인으로서 추모사에 나선 손입강(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 중국모임) 대표씨는 “당신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 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런 보상이나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또한, 그는 “오오 슬프도다, 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 대한민국 정부는 정유홍 당신을 두 번 죽였습니다”라고 절규 어린 추모사를 읽어 영결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차는 대구종합고용안정센터를 출발해 동성로를 거쳐 근로복지공단대구본부에서 항의 집회를 연 후 곧바로 대구시장묘사업소로 향했다.

고인의 유족들은 장례사, 추모사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만 흘려 주위를 숙연케 하였다. 장묘사업소에서 고인의 화장 절차를 기다리고 있던 정호씨는 “근로자 대접을 못 받은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고… 외국인 근로자들도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자에게 “한·중국간 우호증진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에 왔는데 언니의 죽음을 보면서 이제는 더 이상 한국말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경태 대표(목사, 대구외국인노동자상담소)는 “산재승인이 쉽게 이뤄지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을 하면서 “우리가 두 달이 넘도록 싸워왔는데 지역의 기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 보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등이 너무나도 안타깝다”며 정씨의 죽음이 단지 ‘자살’로만 취급된 것에 안타까워했다.

박순종 목사(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는 “꽃다운 나이에 죽어야 할 이유는 그 누구도 없는데, 외국인 인력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한 젊은이가 죽어간 것이 마음 아프다”고 하였다. 그는 “유족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아들한테는 엄마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데…. 그런 것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말했다.

두 달 가량 유족들과 함께 농성장을 지켜며 싸워왔던 고경수(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 목사도 “이번 죽음은 우리 사회의 외면과 차별이 외국인 노동자 정유홍씨를 죽인 것이다”며 외롭게 장례를 치러야 하는 정씨의 죽음을 슬퍼했다.

고인의 화장은 1시간 30분 가량이 소요된 후 유족들에게 고인의 유골이 인계되었다. 고인의 유골은 하얀 옥함에 담겼으며 유족들은 중국의 국기를 넣어 고인의 넋을 기렸다.

화장 절차가 끝날 무렵 장묘사업소에는 고인의 죽음을 위로하고 슬퍼하기라도 하듯 장대비 같은 빗줄기가 하염없이 내려 유족들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했다.

고인은 대구근로복지공단, 고용안정센터를 거쳐 외국인노동자들의 쉼터인 대구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 임시적으로 유골이 안치된 후 한 달 뒤 고향땅을 밟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