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잡는 근로공단 관행 제동
“소송중 휴업급여 소멸시효 중단” 행법 판결
재판을 오래 끌어 산업재해 피해자에게 휴업급여를 받을 자격을 박탈해온 근로복지공단의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 “소송진행 땐 휴업급여 시효 중단”=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최은배 판사는 6일 류아무개(63)씨가 “23년 동안 항공기 조종사로 근무하면서 이명과 난청이 생겼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휴업급여일부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요양승인이 나지 않으면 휴업급여도 지급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며 “산재보험법상 휴업급여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요양 때문에 취업을 하지 못한 다음날부터 진행되지만, 반려될 것이 확실한 휴업급여 청구를 노동자에게 3년마다 계속하도록 하는 것은 무익하다”고 밝혔다.
항공기 조종사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류씨는 지난 98년 근로복지공단에 낸 요양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법원에 상고까지 하는 등 4년동안의 지리한 법정싸움을 거쳐 2002년 12월 업무상재해 인정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1월 근로복지공단이 “요양신청을 한 지난해 1월부터 거슬러 올라가 소멸시효 3년이 지난 때에 해당하는 96년 8월부터 2000년 1월까지의 휴업급여는 지급할 수 없다”고 하자, 류씨는 다시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소송끌며 소멸시효 3년이유 급여 거부
“이 기회에 산재보험법 고쳐야”목소리
◇ “산재보험법 자체를 고쳐야”=이번 판결은 ‘시효중단의 효력이 휴업급여 청구에까지 미치지 않는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와 부닥치는 것으로 최종심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 지 벌써부터 주목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그동안 대법원 판례에 따라 요양신청 다음날부터 소멸시효를 계산해 3년이 지나면 휴업급여 지급을 거부해왔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비슷한 사례가 자주 발생해 휴업급여의 소멸시효 부분을 개선하는 문제에 대해 노동부와 협의 중”이라면서도, “아직까지는 대법원 판례와 공단 규정이 유효하기 때문에 행정법원에서 다른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기존 행정처리 방식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동권 전국산업재해인총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산재보험법의 산재보상급여 시효를 공무원연금법이나 일본의 노동재해보험법의 5년보다 짧은 3년으로 해놓았고, 산재보험청구권을 침해하는 규정이 많이 있다”며 “산재보험법을 적용받는 노동자는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이들의 근로복지를 개선하는 쪽으로 차제에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 직할기관인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나 감사원도 근로복지공단의 소극적인 휴업급여 소멸시효 판단에 대해 잇따라 시정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지난 96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박아무개(58·인천 남동구)씨가 지난 1월 대법원으로부터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뒤 휴업급여 소멸시효와 관련해 산재보상심사위에 재심사를 청구한 데 대해 심사위원회는 휴업급여 및 간병료 부지급 처분 취소 결정을 내렸으며, 이에 앞서 감사원도 지난해 말 한 산재 노동자가 낸 ‘휴업급여 부지급 결정에 관한 심사 청구’에 대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김영인 황예랑 기자 yi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