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골격계 부담작업’ 11개 고시 공방
“소주 맥주 섞어 마시면 음주단속 제외?”

김소연 기자

민주노총 “조사 회피 원인, 폐지해야”…노동부 “실태조사 뒤 대책 논의”

민주노총이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 유해요인조사 미실시 사업주를 고발하는 등 노사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작년 근골격계 부담작업을 11개로 한정해 고시한 것이 ‘뜨거운 쟁점’으로 또 다시 부상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근골격계 부담작업 범위 고시가 폐지되지 않은 한 예방대책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진단을 내놓고 있다.

근골격계 부담작업이 11개로 한정되면서 사업장의 실효성 있는 유해요인조사가 사실상 차단될 수밖에 없다는 것.

조태상 민주노총 산업안전부장은 “근골격계라는 질환은 작업량, 작업속도, 작업장 조건, 인원, 휴식시간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며 “사업주들이 11개 작업만 근골격계 요인으로 인식하면서 예방대책도 그 수준으로만 나오게 되고, 실효성 없는 대책으로 한 쪽에서는 근골격계 질환자가 계속 발생하게 되는 등 악순환만 거듭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견해는 노동계뿐만 아니라 의학 전문가들도 동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철홍 인천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근골격계 부담 작업을 11개로 고시한 것은 코미디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지극히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11개 작업 고시는 소주 1병, 맥주 1병, 양주 1병 등 3가지 경우에만 음주운전이고 소주 반병에 양주 반병을 마신 사람은 해당이 안 된다고 단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은 “유럽연합을 포함한 스웨덴, 캐나다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근골격계 부담작업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를 정부는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며 “즉각 범위 고시를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제도가 근로자의 건강을 완전히 보호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부담작업을 모두 포괄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달 말 실태조사가 나와 면밀한 분석을 한 뒤, 이 부분을 놓고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며 “현재 전문기관에 근골격계 부담작업 실태조사에 대한 용역연구를 맡긴 상태로 결과에 따라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노동부는 지난해 고시를 통해 △하루에 4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자료입력 등을 위해 키보드 또는 마우스를 조작하는 작업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또는 손을 사용하여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작업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쪼그리고 앉거나 무릎을 굽힌 자세에서 이루어지는 작업 △하루에 10회 이상 24kg 이상의 물체를 드는 작업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분당 2회 이상 4.5kg 이상의 물체를 드는 작업 등 11가지 경우를 ‘근골격계 부담작업’이라고 지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