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짤리면 회사도 영원히 짤려요”
영세사업장 산재노동자들의 희망없는 나날 “단 몇시간이라도 일할 곳 있었으면”
이수현 기자
“어우 징그러. 손이 왜 이래요.”
“멀쩡한 손이 ‘닭발’이 되었을 때의 심정을 아십니까.”
“병신 소리 듣지 않기 위해, 처음에는 여름에도 장갑 끼고 다녔어요.”
인간 진화의 상징 ‘손’. 사지 멀쩡한 노동자가 한순간에 손가락의 전체와 일부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다치지 않은 사람이 짐작할 수 있을까.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은 노동하는 인간으로서는 치명적이다. 어디에도 받아주는 곳은 없고 살아갈 길은 막막할 뿐이다.
8월 30일,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광명성애병원. 산재환자들 400여명이 몰려 있는 이 병원은 수도권에서 산재환자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손, 발이 기계에 눌리거나, 찍혀 다친 환자들로 병원은 분주했다. 병원 앞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동자들. 손을 내보이며 서로의 상태와 안부를 묻는다.
산재급여는 ‘낮고’ 병원비는 ‘높고’
“자네는 그래도 멋있게 짤렸구만.” “아이고, 젊은 친구가 우찌하노.” 엄지, 검지 등 손가락 한 두 마디가 잘려 나간 것은 예사였다. 손가락 네 마디가 잘렸거나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남은 노동자, 손목만은 절단하지 않으려, 그들은 몇 년간 손가락과 씨름하고 있었다.
“병신 취급하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두려워요.”
“누군 뭐 다치고 싶어 다쳤나.”
“누구나 다 그럴(사고 날) 수 있다는 생각이 필요해.”
모인 이들 가운데 최연장자인 장우상(59)씨가 치료받으면서 고충을 토로한다. “2년 반을 치료하고 있는데, 매달 70여 만 원 산재급여 받아서 입원비 20~30만원 정도는 개인부담으로 내죠. 40~50만원 내는 경우도 수두룩해요.” 산재환자들은 6인실 이상의 침상을 쓰면 입원비가 무료지만 병원 측은 ‘침상이 부족하다’며 3~4인실(일일 2만9천원에서 4만5천원) 병실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 병원노조 유미라 지부장은 “항생제 흉터완화제 혈관확장제 등 약값, 치료비가 높고, 병실료 등 환자의 개인부담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화상환자의 경우 개인부담이 몇천 만원 단위”라며 “조속히 산재환자들의 무상치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노동자들의 고민은 끝이 없었다. 대부분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다가 다치다 보니 치료 후 원직 복귀는커녕 당장 사측과의 산재보상과 치료비도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다치고 처음에는 회사가 신경써주더니만, 6개월 지나니까 남남이지 뭐. 회사 사정 안 좋으니 함부로 보상 얘기 꺼낼 수도 없고. 다친 놈만 병신이지.”(명희근, 54)
“다친 후 아내가 식당일을 나가고 내가 애를 보는데, 6살짜리 아기를 먹여 살릴려고 하니 앞날이 막막하다. 신경 쓰이니까 밤에 통 잠도 안 오고, 걱정이다.”(이문식, 40)
“3년째 환자 생활인데 검지가 아직도 회생이 안된다. 9월에는 통근치료를 받는데 다니던 회사는 부도나고, 앞으로 일할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조성수, 35)
나이든 노동자들은 처자식 먹여 살릴 걱정, 젊은 노동자들은 결혼과 장래에 대한 걱정.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산재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처음에는 ‘치료만 잘 받고 나중에 와서 일하라’고 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냉담해지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걱정마, 치료받고 와서 나중에 일하라고”
원래 다니던 직장 복귀나 재활 등 제도적 장치는 너무나 취약한 상황이다. “오전 통근치료만 하는데 남 보기도 흉하고 다만 몇 시간이라도 일할 곳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곳이 없거든. 마땅히 할 게 없으니까 오후에는 텔레비전이나 보고 술이나 마시고 할밖에.”(명희근, 54)
“기계소리 다시 들으니 겁나서 못하겠더라. 할 수 있는 일이 자영업뿐인데 그것도 밑천이 있어야 하죠. 산재환자들 퇴원하면 대개 경비나 배달 등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많죠.”(이문식, 40)
선천성 오른쪽 마비에 이어, 94년 산재로 왼손을 다친 강송구(41)씨는 “산재로 두손, 두발 다 들었다”고 말할 정도다. 96년 이후 우유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결혼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혼자 살겠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 “장애인 재활센터나 직업훈련기관 등에 몇 번 찾아갔죠. 근데 책자하나 달랑 던져주며 ‘찾아보고 알아서 가라’는 무성의한 상담에 치를 떨었죠.”
산재 노동자들은 그나마 함께 있으면 동병상련의 아픔을 같이 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홀로 있을 때 이들은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막막한 앞날과 맞서야 한다. 사회생활 적응실패, 그리고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면서 불면과 불안, 초조감과 공포는 더해간다. 한해 산재 사망자수는 3천여명, 신병을 비관해 자살한 산재 노동자는 한해 15~20여명에 이른다.
최근 대우조선 산재요양 노동자의 자살은 이를 잘 웅변한다. 광명성애병원에서도 올 초 정신과 치료를 받던 30대 중반의 산재노동자가 퇴원 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밝은 성격이라 담당 간호사들도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었다. “‘건설업종에서는 노동자들이 하루에 두명꼴로 죽는다’는 말에 외국노동단체 간부들이 아연실색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는 건설산업연맹 활동가의 지적처럼 우리 사회의 산재불감증은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영세사업장 산재노동자들의 단체인 산재노동자협의회 박영일 사무국장은 자신도 산재를 당한 처지라 이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산재 인정받기도 힘들고, 받더라도 본인부담 치료비가 매달 30~40만원에 이릅니다. 산재보험 사전승인제를 없애고, ‘선보장 후평가’와 함께 보장성을 강화해 무상치료가 가능해야 합니다. 원 직장 복귀의 법제화는 물론이고요.”
산재단체들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이번 국감에서 ‘노동자 사망감소와 산재율 정상화’와 ‘취약계층 노동자 건강 보호’ 해결을 핵심의제로 삼고 있다.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산재보험 전면적용, 선보장 후평가 실시, 원직복직 법제화, 산재예방 대책마련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산재치료를 받는 노동자들이 완치에 대한 불안감과 ‘노동권 확보’를 위해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산재노동자들은 산재를 인정받고, 제대로 치료를 받기 위한 고단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산재노동자협의회의 2001년 이후 전화, 인터넷 등 상담기록 수천 건을 보면 ‘산재불인정’으로 노동자들이 제대로 치료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이 가운데 70% 이상이 근골격계, 추간판 탈출증(디스크) 등이고, 30%가 산재적용이 되지 않는 영세사업장, 공사현장 등이다. 불인정 사유는 퇴행성 질병으로써 업무와 연관성이 없고, 공사대금 2천만원 이하, 100평 이하의 산재미적용 사업장이라는 이유에서다.
추간판 탈출로 대구에서 광명으로 치료를 받고자 올라오고 있는 20대 중반의 한 노동자는 버스 차창 밖의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산재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이 치료를 어떻게 하지.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가나.” 현실은 너무나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