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제도 발전방안 토론회 쟁점
산재보험 ‘재정안정화’ ‘도덕적 해이’ 논란 번져
‘장기요양’ ‘휴업급여’ 문제 집중 제기…노동계 “지출 줄여 산재노동자 희생” 반발
올해는 산재보험제도 도입 40주년 되는 해. 노동부는 산재보험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예고해왔다. 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이 15일 개최한 ‘산재보험제도 발전방안 토론회’는 그 ‘그림’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노·사·정과 관련 단체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노동부는 이날 40년의 산재보험제도 역사상 하지 못했던 실질적인 제도개선을 이루겠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산재보험제도를 논의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산재환자 요양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전면적으로 다룬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혹의 눈들도 적지 않다. 산재보험재정의 안정화를 주장하면서 마치 그 원인이 장기요양환자와 요양기관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사용자 편향적인 제도개선을 추진할 것이라는 우려가 그것이다. 결국 도덕적 해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요양인정기준을 엄격히 해 지출을 억제하고 재정안정화를 이루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같은 문제들을 놓고 열띤 공방이 이어졌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는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산재환자 10여명이 참가해 직접 비판에 나서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 15일 토론회가 열린 은행연합회관에서 민주노총 조합원과 산재단체 회원들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매일노동뉴스
[쟁점1] 산재보험 재정안정화
이날 발표된 내용은 △요양서비스 제고 △급여체계 개선(재정안정) △재활사업 강화 등으로 압축된다. 이는 산재보험제도의 부분적인 내용이지만, 일정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체계와 관련돼 있다.대체적인 맥락은 이렇다. 2002년 현재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은 부채규모가 8~9조원에 이른다. 급여보상수준의 확대 등으로 산재보험 급여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추세는 향후 재정고갈이나 보험요율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비용상승을 제어해 산재보험의 재정안정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김호경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김 연구위원은 비용상승의 요인으로 △의료단가 증가 △연금액 누적증가 △휴업급여 등 각종 일시금 급여의 증가 △재해자수 및 재해인정 대상 확대 등을 꼽았다. 개선을 위해서는 보험요율 급증에 대비해 재정방식을 적립(펀드)방식으로 전환하고, 산재인정절차 정비(산재인정 후 비용상승 대비 제도개선), 현금위주 보상보다 재취업을 위한 의료·직업재활 위주 급여로의 전환(단, 추가적 상승비용 억제), 퇴직연령 이후 연금수급 국민연금으로 이관, 출퇴근재해의 자동차보험으로의 전환 청구 등을 제시했다.
[쟁점2] 장기요양과 휴업급여 실태
이현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재보험 요양·보상서비스 개선방안’이란 발표를 통해 부정수급 방지대책을 제시했다. 이 연구위원은 “산재보험에서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는 주체는 재해자, 노조(단체), 병원, 사업주, 공단(보험담당자) 등이 광범위하게 연계돼 있다”며 대처방안으로 △보험자(공단)간 정보교류 활성화 △민영보험의 대응방안 참고 △장기요양자와 휴업급여에 대한 대책 △전담조직 설치·운영 △신고포상금제 운영 등을 제시했다. 이 연구위원은 도덕적 해이와 관련된 산재보험의 특징으로, 임금을 받으면서 휴업급여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점, 재해자와 요양기관의 담합 가능성, 보험료 체납 사업장에 대한 보험급여 지급 등을 꼽았다.
이에 따라 장기요양자 실태조사를 통해 도덕적 해이 여부와 장기요양제도 악용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병원 및 환자에 대한 근본대책 수립, 장기요양환자의 관리와 진료기관 점검, 휴업급여에 관한 실태조사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또 산재보험조사협의회(가칭) 설립과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해 도덕적 해이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해 보험급여 누수를 방지할 것을 제안했다.
[쟁점3] 산재노동자 중심의 요양서비스
이현주 연구위원은 “요양서비스가 산재근로자의 원상회복을 위한 핵심 사항임에도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필요한 분야여서 노동부(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제도 개선부분에서 간과돼 왔다”며 ‘산재근로자 중심’의 요양서비스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의사의 진단과 사업주 날인을 분리하는 등 요양처리절차를 단축하고, 지정의료기관에 대한 정기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필요 이상의 장기요양을 유인하는 병의원과 환자에 대한 특별관리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위원은 “그동안 요양에 대한 연구자료가 없고 근로자의 입장에서 연구된 것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금부터 구체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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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엇갈린 시각…민주노총 ‘공개토론’ 제안
이날 주제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각 주체들의 상반된 시각이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청중석의 질의는 주제발표 내용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노동계는 상당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산재보험제도 개선의 목적은 신속·공정한 치료를 통해 현장에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신고포상제도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결국 산재노동자가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산재노동자의 원직복직을 위한 기업문화와 법·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은기 민주노총 산업안전부장은 “가장 큰 문제점은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다루면서도 모든 과정이 공개적이지 않았고 여론수렴도 없었다는 것”이라며 “노동부가 산재보험제도발전위를 구성한 지 6개월만에 이같은 연구결과가 나오는 과정에서 의견수렴도 없었고 이날 토론회 자료도 하루 전에 전달돼 검토할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김 부장은 노동부에 대해 “제도개선에 관한 노동계의 입장과 정부, 사용자 입장을 동등하게 다룰 공개토론 의향이 있는지 답변하라”고 되물었다.
반면 재계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산재보험은 (사회보장이 아닌) 보험이기에 당연히 악용을 막아야 한다”며 “정작 산재보험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도덕적 해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회장은 “산재보험 재정방식과 관련, 적립방식으로의 전환이나 세금방식으로의 이동도 관심사항이나 추후 책임있는 의견을 만들어 별도로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
노동계 비판,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이날 토론회에서 노동계와 산재단체들은 노동부가 의도하는 제도개선 방안이 결국 요양인정기준을 엄격히 해 지출을 억제하고 재정안정화를 이루려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강하게 드러냈다. 산재보험을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으로 보지 않고 단순한 보험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제도개선의 핵심을 재정안정화 문제에 두게 된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와 관련 이상석 노동부 노동보험심의관은 이날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이미 마련한 ‘근골격계질환 업무상관련 인정기준 처리지침’에 이어 심·혈관질환, 정실질환 등에 대해서도 요양인정기준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세민 금속산업연맹 산안국장은 “도덕적 해이의 원인으로 장기요양을 지목하고 있는데, 치료가 완료됐는데도 휴업급여를 타기 위해 일터로 안 돌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노동자들은 요양기간이 길어지면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할까봐 심리적 불안감에 떠는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상석 심의관은 “도덕적 해이를 거론한 것은 재정·보상·재활문제 등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며 “장기요양이 도덕적 해이라고 단정한 것이 아니며 이번 연구결과에 장기요양자 치료의 미흡한 부분들이 잘 지적돼 있다”고 반박했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 6월 구성된 산재보험제도발전위의 첫 연구결과 발표로, 정부는 이 결과를 토대로 향후 산재보험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당초 정부는 12월 중으로 연구를 완료해, 내년 1월께 입법안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석 심의관은 “앞으로 발전위의 안을 좀 더 심도 깊게 논의해 노동부에서 실행계획을 수립할 것”이라며 “입법안을 내놓을 시기는 아직 정해진 바 없으며 단계적인 계획을 세워 개선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편 민주노총의 공개토론 제안에 대해 윤조덕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개토론을 준비하겠다”고 답변, 이후 노·사·정·공익이 참여하는 ‘제2라운드’가 이어질 지도 주목된다.
연윤정 기자 yon@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