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무섭다. 이런 비정규직 없어져야 한다”

한진중 비정규 노동자 김춘봉씨 자살…명퇴 후 촉탁직으로, 재계약 거부 비관

“24년간 이 회사(한진중공업)를 위해 몸과 청춘을 다 바쳤지만 아무 소용없이 이렇게 밖으로 쫓겨나게 됐다··· 다시는 이런 비정규직이 없어져야 겠다. 비정규직이 정말 무섭다…. 한진중공업에서도 비정규직이 죽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현재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나은 대우를 해 주겠지….”

한진중공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명예퇴직 후 촉탁직으로 근무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춘봉씨(50)가 27일 아침 이 같은 유서<사진>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한진중공업 마산공장 도장공장 입구 계단에서 청소용역 노동자 옥아무개(65) 씨에 의해 목을 매 숨진 상태로 발견된 김씨의 곁에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5장의 장문의 유서가 함께 놓여 있었다.

유서 내용과 주변 정황을 취재한 결과, 김씨는 최근 회사가 올해 말까지로 촉탁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에 반발해 재계약을 요구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산재휴가자에 명퇴 강요, 재계약 약속 사라져

지난 해 4월까지 생산직 정규직으로 근무하던 김씨는 지난 2002~2003년 한진중공업이 약 600여명의 생산직을 상대로 단행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명예퇴직을 당한 후 촉탁직으로 전환됐다. 당시 산업재해 요양자들이 주요 명예퇴직 권고 대상이 됐는데 김씨 역시 지난 2000년 작업 중 다리를 다쳐 산재 9급 판정을 받고 10개월간 요양을 하고 있었다. 김씨는 유서에서 “회사 노무팀에서 산재보상보다는 명예퇴직을 한 뒤 촉탁직으로 근무할 것을 제안했다”며 “마산공장 운영이 끝날 때까지 촉탁직 고용을 보장해 주겠다는 말만 믿고 회사의 제안을 수용했는데 아무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촉탁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마산공장 운영 때까지는 고용 보장하겠다는 것을 문구로 삽입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규정상 안된다’고 하기에 관리부장과 노무차장이 책임지겠다는 말만 믿고 도장을 찍었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한다”고 한탄했다.

결국 김씨는 11월 회사관리자들과의 면담에서 올해로 고용계약이 만료된다는 통보를 들었고, 김씨가 담당하던 가스창고 관리 업무가 ㅅ기업이란 하청기업으로 외주화돼 다시 이 회사로 전적하라는 말을 듣고 절망에 빠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규직→계약직→간접고용, 비참한 현실 그대로

이번 사건은 구조조정을 이유로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전환 됐을 때의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김인수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사무장은 “2002년부터 진행됐던 구조조정에서 명예퇴직을 당하고 그나마 촉탁 계약직으로 고용을 이어가던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계약이 반복되는 것을 두려워한 회사가 다시 외주화 시도를 했다”고 밝혔다.

김사무장은 또 “원래 촉탁직은 정년퇴직한 직원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계속해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채용하던 방식인데 회사가 이를 악용해 산재 환자들의 명예퇴직을 강요하고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수단으로 악용했다. 뿐만 아니라 97년부터는 정규직이 곧바로 사내하청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즉, 김씨의 경우 촉탁 계약직으로 전환해 근무할 것을 권유하고 다시 외주업체 하청노동자로 전환시키는 단계적 비정규직화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양대노총도 김씨의 죽음에 대해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위정자들은 시장경제가 어떻고 고용유연화가 어떻고 하면서 노동자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고인의 죽음은 차별에 대한 대책마련 없이 비정규직만 양산하려는 정부와 사용자들에게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규직으로 20여 년 간 열심히 일하다 산재까지 당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40대에 명예퇴직을 당하고 비정규직이 되어야 했던 김씨. 결국은 회사에서 쫓겨나 외주업체로 떠밀려나게 되자 다친 다리를 이끌고 계단을 올라 목을 매었을 김씨. 절망을 강요하는 비정한 인사정책이 이 추운 겨울, 한 비정규직 노동자 가장의 생명을 앗아갔다.

김경란 기자 eggs95@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