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처리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간다?

[오마이뉴스 고기복 기자]아침 일찍부터 인천에서 전화가 왔다. 산업연수생으로 98년에 입국했던 수마르야디(Sumaryadi·30)였다. 산재 처리를 해 주지 않는 사장과 중간에 낀 동료 인도네시아 친구들로 인해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정오가 다 돼서 수마르야디는 친구 사야뿌딘과 함께 찾아왔다. 두 사람 다 긴 머리에 염색을 한 모양이 여느 한국 젊은이들과 다름없었지만, 우리말은 여전히 서툴러 인도네시아어로 상담해야 했다.

상담에 앞서 인도네시아 지진 해일 피해에 대해 물었다. 자신들의 고향은 피해 지역과 거리가 멀어 피해가 없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참담하기만 하다고 했다. 수마르야디는 미등록자에 대한 단속도 심하고, 고향 생각도 나고 해서 이번 산재 건만 잘 해결되면 귀국하고 싶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수마르야디는 경기도 김포에서 인도네시아인만 20명 가까이 있는 00업에서 도색 작업을 했다. 자신을 그 공장에 소개해 준 디온(Dion)이라는 친구와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용접공으로 일했는데, 늘 일감이 많아서, 잔업과 야근을 자주 했다. 월급은 120에서200만원까지 경력과 근무 조건에 따라 다양했는데, 수마르야디는 자신은 일반적인 친구들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았다고 했다.

문제는 지난 8월 말 수마르야디가 검지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면서부터 사장과 공장을 소개해 줬던 친구의 태도가 변하면서부터 발생했다. 애시당초 사고 당일에 사장은 산재 처리를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입원했던 병원에서 수술을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면서 사장의 말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장은 수마르야디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산재처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가, 자신은 사장이 아니고, 하청업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산재처리를 해 줄 수 없다고 말을 바꾸었다. 급기야는 친구인 디온이 중간 하도급업자이기 때문에, 디온에게 산재처리를 요구하든 보상을 요구하든 디온과 처리하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사장은 사실상 디온이 한국어도 잘하고 인도네시아 친구들도 데려오면서 업체 사장으로부터 소개비도 받고, 그곳에서 반장 노릇을 했는데 사고가 나자 나 몰라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업체 사장은 입원비와 석달 입원 기간 동안 휴업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사장은 수마르야디가 퇴원하자, 디온과 함께 해고시켰고, 결국 수마르야디는 현재 인천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 일로 수마르야디는 몇몇 단체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변변한 도움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언어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산재처리하면 다른 이주노동자에게 피해가 간다?

사실 확인을 위해 업체 사장이라는 공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 사장은 본인은 산재처리를 해 주지 않으려고 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산재처리를 위해 수마르야디에게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지만, 그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산재처리를 할 의향이 있었으면 병원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수마르야디를 부르는 것은 그를 출입국에 신고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답변을 회피한 그는 이번에는 산재처리를 하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신고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수마르야디 한 사람을 위해 산재처리를 했다가 애매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그러한 공 사장의 말에 그러면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공상처리를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에 대해 공 사장은 “나도 알아 볼 만큼 다 알아 봤어요. 수마르야디가 장해등급 11급 정도 되는데, 한 백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공 사장의 말에 “산재처리를 했을 때, 수마르야디가 받을 수 있는 돈과 비교하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하시는 말입니까?”하고 되물었다. 공 사장은 “나도 할 만큼 했어요. 다른 사람들(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불법체류자들) 피해 주지 않으려고 병원비도 내가 냈고, 휴업급여도 줬어요. 그리고 수마르야디가 다른 곳에서 일 못하는 것도 아니니 정작 피해를 본 것은 나뿐이거든. 불법체류자를 쓴 것 때문에 피해가 많아요”라고 궤변을 늘어놨다.

나는 공 사장의 말에 “그러면 그 사람들로 인해 돈을 벌지 않으시는 모양이죠? 불법체류자를 써서 피해라고 하셨는데, 이참에 수마르야디 산재처리 해 주시고, 합법적인 틀 안에서 외국 인력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네요”라고 대꾸했다.

공 사장은 “어쨌거나 수마르야디 계좌나 팩스로 넣어 주소. 적당한 보상이 될 수 있도록 해 보겠소”라면서 퉁명스레 전화를 끊더니, 다시는 핸드폰 연결이 되지 않았다. 사장의 요구대로 나는 공 사장에게 팩스를 넣어 줬고, 수마르야디는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산재를 당하고도 피해 보상을 청구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런 사람에게 오히려 큰소리치는 고용주를 보아 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정형화된 듯한 모습을 다시 한번 보았구나 하는 생각에 상담을 마치면서 씁쓸함이 더해졌다./고기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