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진짜 ‘안전교육’ 받아야 될 사람들”

지하철사고 ‘사람 탓’만 하는 무책임한 언론…직원 마구자르는 정책결정자도 책임

독일 베를린 시청 뒤에는 우리의 남산타워 같이 우뚝 솟은 높이 400m가 넘는 거대한 첨탑이 서 있다. 그 기능도 우리의 남산타워와 같은 텔레비전 송신탑이다. 베를린 주 전역으로 보내는 독일의 모든 지상파 방송사의 주 송신탑이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오르내리며 수십명의 노동자가 첨탑 위에서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송신탑은 지상파 방송사의 심장이다. 그래서 방비도 철통같다.

“TV가 안 나온다고 사람이 죽진 않아요”

우리의 경우 몇 년 전 남산송신소 아래 지하에 매설된 송신케이블 중 일부가 잘려 나가는 사고를 겪어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 지하철 7호선 전동차 화재가 발생한 3일 오전 지하철 온수역에서 소방관들이 전동차의 잔불을 진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는 2002년 3월 독일 방송사 관계자와 함께 베를린 송신탑을 방문했다.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상파 방송을 디지털로 전환한 독일의 방송운영 상태를 듣고 보기 위해서였다. 송신탑에 올라가면 야트막한 구릉지로 이뤄진 베를린 시가지 전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3시간 넘게 첨탑 위에 설치된 각종 송신장비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베를린 전역으로 나가는 모든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전송은 송신탑 안의 가장 안전한 곳에 설치된 4대의 메인 컴퓨터가 담당하고 있었다. 4개의 컴퓨터 옆에는 불의의 사고로 시스템이 다운될 것에 대비해 똑같은 기능을 하는 2대의 예비 컴퓨터가 있다.

같이 방문한 한국의 방송 노동자가 질문했다. “한국은 메인 컴퓨터 한 대마다 비상용 예비 컴퓨터가 한 대씩 더 설치돼 있다. 독일의 경우 예비 컴퓨터가 2대 밖에 없어 메인 컴퓨터 4대 중 3개 이상 동시에 다운되면 국민들은 TV를 볼 수 없겠네요. 불안하지 않나요?”

독일인의 답은 간단했다. “TV가 안 나온다고 사람이 죽는 건 아닙니다. 사람 안전과 관련된 문제라면 예비 컴퓨터를 10대라도 설치했을 겁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물건의 안전과 관련된 예비 컴퓨터는 있어도 사람 안전과 관련된 예비 컴퓨터는 없다.

각 언론 “도시철도공사 근무자 탓”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에 이어 지난 3일 지하철 7호선 방화사고와 그 후속 처리 과정을 소개하는 모든 기사에서 언론은 한 목소리로 ‘안전’을 외쳤지만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대안을 내놓기보다는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언론은 이번 7호선 방화사건 직후 처리과정의 문제점을 실컷 지적했다. 잔불이 남은 채 몇 구간을 운행했느니, 운전사령실과 기관사와 역내 사무소간의 통신체계의 문제 등을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4일자 1면 머리기사와 사진으로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불이 난 사실을) 운전사령실은 알았는데 기관사는 몰랐다”며 불가피한 사고가 아닌 인재라고 했다. 같은 날 MBC는 마감뉴스의 논평을 통해 “문제는 사람”이라고 했다. MBC는 돈을 들여서 전동차 내부를 불연재로 바꾸고, 지하철 운행 시스템을 아무리 개선해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면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고 했다.

쉽게 말하면 멍청한 도시철도공사 근무자들 모두가 이번 사고 처리 과정의 문제점을 낳은 원흉이라는 소리다. 따라서 정신무장도 시키고 안전교육도 시켜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런 주장은 산재사고로 죽은 노동자보고 안전의식이 미흡해서 죽었다며 사망의 근본 원인은 죽은 사람 자기 책임이라는 소리다. 세상이 어떤 인간이 제 목숨을 버릴 만큼 안전의식이 없을까.

“국민목숨 담보로 직원 자르는 정책결정자가 문제”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은 딱 하나 ‘1인 승무’다. 출퇴근 시간이면 한 번에 2천명의 시민을 실어 나르는 10량의 전동차가 맨 앞 칸에 단 한 명의 기관사만 탑승한 채 돌아다니는 것은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다. 전동차 1량에 출입문 4개씩 해서 역사로 들어선 지하철은 한 번에 40개의 문이 열리고 닫힌다. 기관사가 탄 맨 앞에서 승객이 탄 맨 뒤쪽까지 160m나 된다. 그나마 직선 역이면 흑백 CCTV로 보이기라도 하지만 이번처럼 곡선 구간이면 아예 승객을 볼 수도 없다. 사람을 볼 수 없으니 불이 난 것을 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지하철 1~4호선을 달리는 서울지하철공사는 앞에 운전하는 기관사가 타고 맨 뒤에는 차장이 타는 2인 승무제다. 그러나 도시철도공사가 운행하는 5~8호선은 1인 승무제다.

대구 지하철도 역시 1인 승무제다. 대구 참사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불은 뒤 쪽에서 났다. 기관사가 있는 맨 앞에서 140m나 떨어져 보이지도 않았다. 만약 맨 뒤에 차장이 타는 2인 승무였으면 불과 20m 앞의 불을 못 볼 리 없었다. 국민을 싣고 달리는 도시철도공사의 인력은 98년 오히려 20% 넘게 줄었다.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MBC의 보도대로 “문제는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은 지하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공황장애에 걸려 자살하는 기관사가 아니라, 국민 목숨을 담보로 직원을 마구 자르는 정책 결정자다.

이정호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