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지하터널 장시간 운전이 부르는 공황장애…기관사 8명 중 1명 꼴 정신과 질환

최근 들어 깊고 어두운 터널에서 하루 평균 5시간 이상 지하철을 운행하는 지하철 기관사들이 우울증 및 구토, 메스꺼움 등 위장장애를 동반한 ‘공황장애’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공황장애란 실제 위험 대상이 없는데도 ‘갑자기 무슨 사고가 생길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는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1인승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도시철도의 경우 이미 지난해 전체 8명의 기관사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직업병적 연관성을 인정한 산재승인을 받은 상태다. 공황장애가 직업병으로 인정된 사례는 도시철도기관사들의 예가 처음이다. 도시철도기관사들은 집단적인 공황장애 발병원인을 ‘1인 승무’와 장시간 지하운전 등 노동조건에서 찾는다.

ⓒ 매일노동뉴스

“언제 사상사고 겪을지 몰라 불안해요”

지난 11일 오후 3시30분. 기자는 도시철도노조에 협조를 얻어 온수역에서 수락산역까지 운행되는 7호선 열차의 기관실에 기관사 박아무개(37)씨와 동승했다. 그는 1평 남짓한 운전석에서 혼자 일하다가 언제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한 부담감과 기관사들의 불규칙한 생활패턴, 본사 중간관리직원들과의 마찰 등이 가장 큰 업무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사상사고(사람이 죽는 사고)를 직접 겪은 적은 없어요. 하지만 혼자 열차를 운전하다 보면 ‘혹 누가 자살이라도 하면 어쩌나’, ‘차량이 고장 나면 어쩌지’하는 생각에 수시로 불안함을 느낍니다.”

특히 얼마 전 철산역 화재사건처럼 대형사고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 “사고열차를 운전한 기관사는 시말서, 경위서 등을 작성하느라 혼쭐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기관사 혼자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지탄에 시달리게 됩니다.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쌓이다 보면 결국 정신적으로 장애가 오지 않겠어요?”

그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혼자 일하다가 언제 갑자기 사고가 날지 몰라 한시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며 계기판과 역마다 설치된 CCTV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또한 수면부족과 불규칙한 근로시간도 기관들이 건강권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도시철도노조의 자체 조사에 의하면 기관사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수면시간을 하루 평균 7.4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주간근무 때는 6.7시간 야간근무 때는 평균 4.7시간의 수면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생활은 수면건강 저해는 물론 위장장애를 발생시키고 가족과 친구들간 사회적 관계를 끊어놓기도 한다.

기관사들, 공황장애 외 각종 질병 노출

지하철 개통구간 확장으로 인한 운행거리 및 운행시간의 증가로 기관사들의 업무량이 증가했지만, 추가적인 인력충원이 이뤄지지 않아 기관사들이 느끼는 육체적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철도 기관사수는 832명이며, 5~8호선 152km 구간에서 1일 평균 전동차 1,662회를 운행, 1일 평균 승객 220여만명을 수송하고 있다.

서울지하철의 1~4호선 구간과 비교했을 때 전 구간이 지하로만 구성돼 있는 도시철도의 5~8호선 운행구간도 기관사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평균 지하 3층 정도의 깊이로 돼 있는 깊고 어두운 지하터널 속을 기관사 혼자 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포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열차가 어두컴컴한 형광등 불빛 속을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면, 눈물이 나고 안압이 높아지는 등 눈의 피로가 오게 된다.

또한 레일과 열차바퀴의 마찰로 발생하는 금속성 소음(90데시벨 이상)으로 인해 기관사들의 청력은 일반인들보다 매우 떨어진 상태며, 일반 마스크로는 막을 수 없는 금속성 미세 분진을 여과 없이 마시며 근무하다보니 순환기 장애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세 먼지들 중에는 암을 유발하는 성분도 다량 포함 돼 있어 또 다른 형태의 직업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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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승무제, 노동자건강권과 시민안전 확보”

동종업계인 서울지하철공사(1~4호선)가 2인승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과 달리, 5~8호선을 운행하는 도시철도공사는 열차의 운전시스템이 자동화돼 있다는 이유로 1인승무제를 고수하고 있다.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공단 직무스트레스연구회에서 지난해 1월 실시한 도시철도 승무직능 직무스트레스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경정신과 치료 유경험자가 21명, 불안장애·공황장애·적응장애 등 신경정신과적 정밀검진 유소견자가 112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철도 기관사 8명 중 1명꼴로 정신과적 질환을 안고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2인승무제와 1인승무제 하에서의 열차 사고발생률을 비교하면, 1인승무제 때 사고발생률이 2배정도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부산지하철이 2인승무제였다가 1인승무제로 전환되기 직전인 지난 99년 부산대 경영·경제연구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2인승무제를 시행중이던 부산지하철의 사고발생률이 0.454%인데 반해, 당시에 국내 최초로 1인승무제가 도입돼 시행중이던 도시철도의 사고발생률이 1.056%인 것으로 조사됐다.<표 참조>

1인승무와 2인승무 사고율 비교

열차주행거리 100만km당 사고율
99년기준 사상사고발생율 주행장애율 열차지연율
서울도시철도(1인승무) 1.065% 2.964% 4.838%
부산지하철(2인승무) 0.454% 0.440% 0.660%

<부산대학교 경영·경제 연구소>

정흥준 도시철도노조 승무본부장은 “만성적인 피로와 스트레스의 누적은 기관사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손상시키는 것은 물론, 지하철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며 “화재 등 재난사고에 신속히 대처할 수 없고 기관사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현재의 1인승무제를 2인승무제로 전환해 시민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공황장애 유소견자 대책마련 시급하다”

도시철도노조 기관사들의 직업병 인정투쟁은 힘겨운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말 도시철도노조가 7명의 기관사에 대해 직업병 인정신청을 낸 것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사상사고’ 경험이 있는 4명은 승인, 나머지 3명은 불승인 결정을 내려 노조와 마찰을 빚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전문의에 의뢰해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노조의 반발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기관사들의 경우 특별한 사상사고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공황반응과 연관된 증세를 보일 수 있는 과거질병력이 없고, 도시철도 승무직에 근무하면서 야기되는 사회심리적 스트레스가 공황장애 발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소견을 밝혔다.

정흥준 본부장도 역시 “병이 발생하지 않게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이자, 이미 병이 발병해 심각한 증세를 호소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휴식과 치료, 치료 후 전직 등이 보장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한 3명의 기관사 중 한 명은 산재 신청을 포기한 상태며, 나머지 두 명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승인 결정을 촉구하며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도시철도노조는 이미 심각한 공황장애 증세를 호소하고 있는 ‘공황장애 유소견자’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며 △근로복지공단의 신속한 직업병 인정 및 치료 보장 △노동부 등 정부차원의 도시철도 기관사에 대한 업무상 질병 원인조사(역학조사) △사용주인 도시철도공사 차원의 유소견자에 대한 업무전환(전직)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인터뷰-공황장애 앓고 있는 기관사들
“처음엔 청룡열차…지금은 감옥열차”
사고 뒤 발작 등 정신적 고통 심각…“다시 돌아가도 승무직은 싫어”
지난 11일 저녁, 공황장애 승인을 받고 요양 중인 기관사들과 도시철도노조 관계자 등 10여명이 서울시 군자동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요양자 모임’의 11번째 모임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막고 복직 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서로를 보듬는 자리다.

이날 모임에서 만난 황진만(가명·39)씨는 지난해 1월 산재 승인을 받고 현재 요양 중이다. 96년 입사해 “처음엔 열차운행이 청룡열차 타는 것만큼 재미있었다”는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멍한 상태가 지속되고, ‘출근-열차운행-취침’을 반복하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과 단절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털어 놓았다.

결국 지난 97년 1월 열차고장으로 3시간 넘게 운행이 지연된 사고에 이어 99년 3월 앞 열차가 사고를 낸 사체를 본인이 직접 처리하는 등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몸에 이상이 오는 걸 감지하게 됐다. “속이 쓰리고 소화가 안되더라구요. 내과치료를 받아도 별로 나아지지 않고…. 나중에 알고 보니 신경계통 이상으로 인한 증세라고 하더군요.”

2001부터 신경과 치료를 받아왔다는 황씨는 열차운전을 하고 있으면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서 운전 중 차창을 열고 토한 적도 있다고 토로한다. “운전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다가 어느 순간 뛰어내리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어요. 컴컴한데 혼자 오래 있다 보면 뒤통수가 스산한 느낌도 들고요.”

98년 입사해 지난해 12월 산재 승인 판정을 받은 박아무개(36)씨도 2000년 4월 자살자를 치는 사상사고를 겪으면서 공황장애가 심각해진 경우다.

“그 사고를 겪고 그해 6월 첫 발작이 시작됐어요. 운전 중에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그날 이후 운전석에만 앉으면 심장에 불덩이가 있는 것 같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떨리고 숨이 막히고….”

“한약도 먹어보고, 종합검진도 해봤지만 운전석에만 앉으면 증세가 심해지는 데 정확히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지난해 산업안전공단이 승무본부 기관사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무 스트레스검사 결과 ‘공황장애’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신 소주잔을 비운 황씨와 박씨는 “‘공황장애’라는 질병이 언제쯤 완치될 수 있을지 의사들도 확언하지 못 한다”며 “나름대로 운동도 하고, 몸에 좋다는 약을 일부러 찾아먹기도 하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지금 산재 인정을 받아 요양 중이지만, 치료 후 직장에 정상적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불안하기만 하다. 이들은 “운전석 생각만 해도 병이 도지는 것 같다”며 “직장으로 돌아가면 승무직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