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일이 즐거웠던 한 여교사의 죽음
재능교육 교사 서모 교사 왜 자살했나…“부당영업 강요” 주장에 회사 “관계없다”
“현명 어머님. 안녕하세요? 새로 현명이를 맡게 될 재능교육 선생님 서○○입니다. 현명이가 참 귀엽네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재능교육의 학습지 선생님으로 근무하다 지난 2일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아무개 교사. 서 교사의 유품인 업무 수첩에는 ‘교재가 어려우면 밀리는(안하는) 아이’로 기록돼 있던 현명이의 어머니에게 미처 전해 주지 못한 쪽지가 꽂혀 있었다.
‘꽃다운 나이’인 24살의 서 교사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님으로 입사해 겨우 2달을 근무했다. 짧은 업무 기간이었음에도 서 교사의 수첩에는 학습지 회원인 아이들에 대한 관리 사항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지혜-화요일 오후 18:00~18:20 방문. 형편 어려움. 부친 실직. 형편 나아지면 타 과목 권유.”
아이들 가정형편까지 세심히 고려했던 서 교사
학습지 교사로 이제 겨우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아이의 가정형편까지 세심히 고려해 가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서 교사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변 동료들에 따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자체를 매우 좋아했다던 서 교사는 지난 1월27일 지국장과의 개별 면담 때 울면서 그 자리를 뛰쳐나온 이후 사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어 31일 지국장에게 사직의사를 표시하고 지난 1일부터 도급계약 해촉 절차를 밟기 위해 교재를 정리하고 보유 회원들에 대한 인수인계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 서 교사는 귀엽다던 아이의 학부모에게 미처 이 편지를 못 보내고 말았다. ⓒ 매일노동뉴스
목숨을 끊은 2일에도 서 교사는 지국에 출근해 이관서류를 쓰고, 지국장과 함께 동행해 회원들을 관리하다가 3시부터는 어머니의 도움까지 받아 가면서 서류와 교재 정리를 했다. 그러던 서 교사가 자신이 살던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진 것은 오후 5시30분경이었다.
서 교사가 자살한 원인에 대해 노조와 유족, 회사인 재능교육 쪽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어린 딸의 죽음을 겪고난 뒤 극도의 신경쇄약 증세를 보이고 있는 서 교사의 부모는 언론 등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재능교육교사노조에 서 교사의 죽음과 관련한 일체의 권한을 위임한 상태다.
서 교사의 아버지는 노조에 권한을 위임하면서, 서 교사가 투신자살 전 부모와 나눈 대화 내용과 정황들을 정리한 진술서를 작성했다.
서씨(서교사의 아버지)는 진술서를 통해 서 교사가 사직을 결심하면서 회사가 요구하는 위약금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지국장과 면담 후 딸이 매우 불안해했고, 지난 1월31일에는 ‘회사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가 딸을 직접 재능교육 금천지국까지 데려다 줘야 했다. 그런데 이날 저녁부터 회비 미수금을 채워 넣어한다며 엄마에게 20만원을 빌려 달라고 하더니, 죽던 날인 2일에는 ‘회사에 위약금으로 300만원을 물어줘야 그만 둘 수 있다’며 울면서 돈을 빌려 달라고 애원했다.”
다시 말해, 명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지난달 27일 있었던 지국장과의 면담 후에 서 교사는 매우 불안해했고 출근을 하기 싫어했던 것이다. 그리고 회원들로부터 못받은 회비를 내기 위해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가 사직을 결심한 것이고, 그 후 ‘회사에서 300만원의 위약금을 지불’하라고 한 사실로 인해 걱정하다가 자살했다는 것이다.
서 교사의 아버지 서씨는 “개인이나 가정 내의 문제로 자살할 이유는 전무하다”며 영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위약금 요구 등 회사가 서 교사의 자살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국장이 면담에서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에게 돈을 꿔 달라고 했던 것 등의 정황을 보아 회원 유지 등 영업 강요 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국장이 요구했다는 해촉 위약금은 회사 규정상 교사에 강요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서 교사가 맡고 있던 회원도 약 70여 회원으로 모든 회원들로부터 미수금이 발생한다고 해도 이는 200만원 남짓한 금액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해당 관리자인 지국장은 서 교사가 회원들을 제대로 인수인계 하지 못하고 그만 둘 때를 대비해, 거짓으로 위약금을 책정해 회비 대납을 강요했다는 것이 된다.
서 교사의 동료들인 우아무개 교사 등 재능교육 금천지국 교사들도 “지국장이 서 교사에게 회사와의 계약을 해촉하려면 300만원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며 “지국장 자신도 서 교사에게 그런 요구를 했다는 것을 다른 선생님들에게 말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 서 교사의 업무 수첩은 아이들에 대한 메모로 가득 차 있다. ⓒ 매일노동뉴스
회사 “원래 우울증 병력, 업무상 관계 없어”
재능교육교사노조 최종훈 금천지부장은 “이제 겨우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해당 교사에게300만원이라는 거액을 내라는 요구는 견디지 못할 정신적 압박이었을 것”이라며 “이번 일은 서 교사 개인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라 부당영업 강요와 비인격적 대우 등 학습지 교사들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재능교육 금천지국 교사들은 서 교사의 죽음에 대해 회사 대표이사의 공개 사과, 책임자 징계, 유족에 공식사과 후 보상, 재방발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지국 출근과 교사 교육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회사 쪽은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서 교사에게 위약금 납부를 강요한 것으로 알려진 재능교육 금천지국 황아무개 지국장은 “서 교사의 죽음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다른 할 말이 없다”며 “회사 홍보팀을 통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확인하라”며 사실 확인을 회피했다.
재능교육측은 서 교사의 죽음과 회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겨우 2달 근무했을 뿐인 교사의 죽음을 회사의 책임으로 모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회비 미수금은 상해 보험에 가입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보험사에 징수하면 되는데, 위약금을 강요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휴회(그만 둔 회원) 회비를 대납하도록 하는 부당 영업에 대해서는 감사팀을 구성해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회사측은 또 “서 교사는 이전에 우울증을 앓은 병력이 있었다”며 “지극히 개인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사건을 극구 회사와 결부 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사건 수사를 담당한 남부경찰서 관계자도 “자살 사건에 대해서는 자살이 확실하면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데, 수사 결과 타살의혹이 없고 4년 전까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아 투신자살이 확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 교사의 우울증 병력에 대해 서 교사 가족들은 “이미 4년 전에 완치돼, 현재는 약도 먹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학습지 교사는 실제는 사용자로부터 종속되어 일하고 있지만, 법률적으로는 회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현재 보호 법률 마련을 추진하고 있기는 하지만, 노동자로서 근로기준법 등의 관련 법상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4대 보험에서도 제외돼 있다.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 항의를 하다가 해고를 당해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 현행법상으로 도급계약 해지일 뿐 부당해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학습지 교사들은 부당영업을 강요당하면 스스로 그만 두거나, 회사의 질책을 피하기 위해 그만둔 회원의 회비를 대납하며 ‘가짜 회원’을 그냥 떠안고 있다.
▲ 지난해 4월 가짜회원 회비를 대납하다 수천만원의 카드빚에 시달려 돌연사한 고 이정연 교사.
ⓒ 매일노동뉴스
지난해 구몬 학습지의 고 이정연 교사는 200개가 넘는 가짜 회원의 회비 대납을 위해 진 수 천만원의 카드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신적 압박을 겪다가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세로 돌연사 한 바 있다. 또 서 교사의 경우처럼 영업 실적과 이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고민하다가 한 두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노조에 따르면, 재능교육만 해도, 한해 3천명 정도가 입사하지만 이중 30% 이상이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 둔다는 것이다.
이정연 교사의 죽음 때도 그랬지만, 이번 서 교사의 죽음에도 학습지 회사들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꽃다운 20대에 연이어 세상을 떠난 학습지 여교사들의 현실은 학습지 업계의 부당영업에 대한 보다 철저한 실태 조사와 함께,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법제도 보호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김경란 기자 eggs95@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