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건강, ‘죽음의 입맞춤’을 피하기 위해

업무스트레스로부터 건강한 일터 조성해야

최근 유럽연합에서는 업무관련 스트레스 안내서를 발간하며 ‘삶의 양념인가, 죽음의 입맞춤인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유럽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업무관련 스트레스를 예방관리하기 위한 안내서에서 약간의 업무관련 스트레스가 노동자에게 긍정적인 자극제(삶의 양념)로 작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노동자를 질병과 죽음으로 내모는 역할(죽음의 입맞춤)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붙여 놓은 부제이다.

왜 이런 부제가 붙었을까? 스트레스는 인간의 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사망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인간은 스트레스 호르몬 배출, 전반적으로 신체의 방어체계가 악화되고 가운데 다양한 질병이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흡연, 음주의 증가와 가족관계나 인간관계 파탄, 우울증, 걱정, 불안 등의 각종 정신질환을 유발하며 심하면 자살로 이어진다. 업무관련 스트레스로 인한 과로사는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며 스트레스로 인한 다양한 질병은 개별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파괴한다.

노동자의 삶과 건강을 파괴하는 업무관련 스트레스는 자본주의적 이윤창출을 위해 노동자의 삶의 질과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노동환경이 조성됐을 때 발생한다. 예컨대 업무부담이 많거나, 노동시간이 길거나, 노동스케줄이 불규칙하거나, 직장 내 인간관계에 갈등이 있거나, 직장문화가 수직적·권위적이거나, 노동자가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 참여할 통로가 없거나, 일한만큼 경제적·정신적 보상이 충분하지 않을 때, 일하는 장소가 너무 덥거나, 춥거나, 소음이 많거나 등의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나타난다. 즉 노동자가 직면하는 모든 노동환경이 복합적으로 작동해 건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하는 업무관련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노동자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미국의 경우 전체 노동자의 40%가 ‘매우’ 또는 ‘극도로’ 심한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스트레스가 높은 수준이라고 보고한 노동자는 스트레스가 적은 노동자보다 의료비를 50% 가량 더 지출했다. 영국의 경우도 한해 스트레스, 우울증, 걱정으로 손실된 노동일수는 전체 노동자가 취하는 병가 중 53%에 해당된다.

일본의 경우도 5년마다 실시되는 노동자 건강상황조사결과를 보면, 일이나 직업생활로 인해 ‘강한 불안, 고민, 스트레스가 있다’고 한 사람의 비율이 높아 2002년에 61.5%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경우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노동자 5명 중 1명은 업무관련 스트레스가 매우 높은 고긴장 집단에 속한다. 스트레스를 받아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인 뇌심혈관계질환과 정신질환이 지난 3~4년 동안 약 2~3배 가량이 증가하고 있으며 직업병 인정건수로 보더라도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근골격계질환 발생률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노동자 건강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더 이상 노동자의 건강을 담보로 경제성장을 추구할 수 없으며, 건강한 일터 조성을 위한 행동이 취해져야 할 때이다. 업무관련 스트레스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사업주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예방해야 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직무스트레스 발생요인에 대한 조사와 개선, 작업량, 작업일정 등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와 의견 반영, 뇌심혈관계 위험에 대한 노동자에게 주지시키기 등 세부적인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법에 마련된 기본사항마저도 현실에서는 외면되고 있다. 따라서 사업주는 법에 마련된 조치를 수행해야 하며, 우리 모두 건강한 일터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때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업무관련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쉬운 여성, 연소자, 고령자 등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정진주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