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집회에 검거령… 울산 ‘계엄’ 방불
[오마이뉴스 2005-05-11 17:00]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월급 ‘반쪽’, 엄마·아빠도 힘내고 싶다
오마이뉴스 – 비정규직 공대위 공동기획
비정규직 800만 시대. 이들은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항상 해고의 위험 앞에 서있습니다.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거나 더 힘들게 일하지만 월급은 ‘반쪽’입니다. 그러나 불만도 이의제기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언제든 고용계약이 파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비정규노동법 개악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workfair.or.kr)와 함께 ‘월급 ‘반쪽’, 엄마·아빠도 힘내고 싶다’는 제목으로 공동기획을 진행합니다.
▲ 울산건설플랜트노조는 작업 환경 개선을 촉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점심 시간 뒤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이들은 별도의 휴식 공간 없이 작업장에서 바로 쪽잠을 자기도 한다.
ⓒ2005 울산건설플랜트노조
“바로 비상계엄이 따로 없어요. 분위기가 너무 살벌해요.”
1980년대 계엄을 경험했다는,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50대 조합원이 한 말이다. 9일 오후 울산에서 만난 그는 이어 50일 넘게 파업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털어놓았다.
“새벽밥 먹고 현장에 와서 옷 갈아입을 장소가 없어 도로에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어요. 쇳가루며 시멘트가루 날리는 난장에서 비가 와도 피할 곳 없이 밥을 먹지요. 하루 일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어도 손 씻을 세면장, 샤워장 하나 없는 게 건설일용 노동자들의 현실이요.”
눈물이 나오는 걸 참기 위해 침을 꿀꺽 삼킨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현장에 와서 하루만 지내보면 우리 실정을 금방 알 것입니다. 휴식시간에는 현장 이곳저곳에서 ‘쪽잠’을 자고, 식당이 없어 현장 여기저기 쭈그리고 앉아 자기 돈으로 산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요.”
결국 거리로 나선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11일로 55일째를 맞고 있다. 이들은 계속 시내 곳곳에서 집회를 열고 있고, 경찰과 충돌하면서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4월 8일 울산시청 집회 때는 조합원 825명이 한꺼번에 경찰에 연행되어 경남·북 경찰서까지 갔다가 조사를 받고 풀려나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6일 집회 때는 경찰과 충돌로 인해 100여명이 다치는 최악의 ‘유혈사태’까지 벌어졌다. 지금까지 22명이 구속되고, 7명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 울산건설플랜트노조 간부와 조합원 3명은 5월 1일부터 SK 울산공장 정유탑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정유탑 중간 쯤에 그물망을 설치해 놓았다.
ⓒ2005 오마이뉴스 윤성효
이들은 현재 서울과 울산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30일부터 서울 아현동에 위치한 SK건설 현장의 타워크레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으며, 노조 배관분회 이문희(42) 부분회장을 비롯한 3명은 지난 1일부터 SK 울산공장 정유탑(80m)에 올라가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펼침막을 내걸고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지난 9일 찾아간 울산 고공농성장 주변은 경비가 삼엄했다. SK 경비원과 경찰이 배치되어 감시하고 있다. 공장 옆 도로에는 주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정유탑 중간쯤에 그물망을 설치해 놓았다. 9일 오후 노조 관계자가 전달해 주는 음식물도 경찰의 ‘검열’을 받은 뒤 전달될 정도다.
경찰은 또 체포영장 발부자의 검거에 나서고 있다. SK 공장을 비롯한 울산지역은 한 노동자의 말대로 ‘비상계엄’이 내려진 상황이라고 할 정도의 분위기는 험악하다. 이 와중에 1000여명의 조합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고통도 이만저만 아니다.
울산시와 경찰서, SK 등 사측은 노조의 파업이 ‘불법’이라며 빨리 일터로 돌아오기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각종 기자회견이며 성명서 발표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 9일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건설플랜트노조 파업에 연대투쟁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또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오는 23일~25일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투쟁 승리를 위한 지역 연대총파업 파업찬반투표’를 진행하고 5월 말경 지역 연대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민주노총도 오는 27일 울산에서 ‘울산건설플랜트노조 총파업 투쟁 승리와 노동탄압 분쇄,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 예정이다. 노동계는 투쟁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으며,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사측도 강경해지고 있다.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울산과 포항 여수 등지에서 지역별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울산은 지난해 1월 1000여명이 모여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교섭을 요구했지만 원만히 진행되지 않았다. 노조측은 58개 전문건설업체를 교섭 대상으로 보고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하도급 업체로 원청인 SK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 “샤워시설도 제공하지 않아”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사측에게 노조와의 교섭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SK는 지난 4월 29일 교섭대상 업체 가운데 7개사와 교섭을 벌이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노측은 집단교섭을 원하지만 사측은 개별교섭을 하자며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퇴직금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1년 전에 소속 회사를 바꾸고, 연차휴가·초과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지난해 4월 삼양제넥스 폭발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10월 바스프 현장에서 폭발사고로 5명이 중대재해를 입는 등 ‘울산은 산재사고의 왕국’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쇳가루와 발암물질인 석면에 노출된 속에 작업을 하고, 사측이 기본적인 샤워시설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 울산건설플랜트노조 박해옥 위원장. 그는 “누구 하나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서럽다”고 말했다.
ⓒ2005 오마이뉴스 윤성효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의 직장가입자 대상에 적용되지 않고, 사업주들의 피보험자 관리 누락으로 실업급여 혜택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해고나 채용을 거부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노조 관계자는 주장했다. 지난해 2월 한 업체에서는 블랙리스트가 나돌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채용을 조건으로 노동조합 탈퇴 확인서를 요구하는 사업주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노조 장상규 상황실장은 “여수·광양·포항에는 교섭을 하고 있는데 왜 울산은 못하느냐”면서 “무엇보다 플랜트산업의 대표성이 있는 SK가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장 상황실장은 “회사측은 노조측이 노무공급권을 요구하고 있다고 언론홍보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요구를 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박해욱 위원장은 “서럽다. 한없이 서럽다. 힘없는 사람은 억압하고 마구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면서 “파업이 50일을 넘었지만 정상교섭은 한번도 한 적이 없고, 울산시 등의 기관장들도 중재에 나서지 않고, 우리들 이야기는 누구 하나 들어 보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측 노무사 “노무공급권 갖기 위해 집단교섭 요구”
▲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작업 현장에서 낮잠을 자기도 한다.
ⓒ2005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하지만 사측을 대표하는 이우헌 노무사의 주장은 상반된다. 그는 교섭과 관련해서 “울산의 플랜트 분야는 작은 업체까지 합치면 1000개나 되는데, 노측은 조합원 명단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사측이 교섭에만 나오라고 한다”면서 “노측은 궁극적으로 노무공급권을 갖기 위해 개별교섭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집단교섭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로기준법 위반 주장을 부인했으며, 산재사고는 지역 건설플랜트 분야의 경우 전국 평균재해율보다 낮다고 주장했다. 또 4대 보험 미적용에 대해 그는 “그런 사업장은 극소수다. 근로계약기간이 짧은 (3일~1주일) 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해고·채용거부·사찰 여부에 대해서도 이 노무사는 부인하면서 “지난해 한 노조 간부의 경우 취업이 되어 일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조합탈퇴 확인서에 대해 그는 “조합원이면 회사에서 쓰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그렇다보니 직원들 중에는 취업하기 위해 일부러 조합탈퇴 확인서를 받아 제출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재가입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관련해서도 그는 “일부 작업장은 사내 식당까지 거리가 멀어 점심을 현장에서 바로 먹고 쉬는 경우가 있고, 사나흘 일하고 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식당을 만들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는 두 당사자의 팽팽한 의견 대립. 지금 울산의 노사는 마주보는 두 열차가 궤도를 따라 가속도를 내면서 치닫는 것처럼 위태하다.
/윤성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