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불승인 뒤 유사사건 왜 분석 지시했나?

근로복지공단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파문 확산되자 대응 지시

“서울관악지사 관내 집단요양신청에 따른 자문결과에 대해 보안유지 및 자문의(자문의사협의회) 보호에 철저를 기하고, 과거 사건과의 차이점을 분석, 대처방안을 마련하되 필요하면 설명회도 개최할 것.”

근로복지공단(이사장 방용석)이 지난 3일 공단 내 ‘보험급여국’에 이사장 지시사항으로 이 같은 내용을 지시했다. 이는 지난달 30일 공단 확대간부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9일 알려졌다.

▲ 지난달 30일 근로복지공단 확대간부회의 문서 중 ‘이사장 지시사항’.

공단 내 한 관계자는 “이사장 지시사항에서 언급한 집단요양신청은 최근 산재불승인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금속노조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 13명 조합원들에 대한 집단산재신청을 두고 말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근로복지공단이 개별 진정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위 지시사항 중 “과거 사건과의 차이점을 분석, 대처방안을 마련하되 필요하면 설명회도 개최할 것”이라는 부분이다. 여기서 ‘과거사건’이란 지난 7일 <레이버투데이>가 보도한 ‘근로복지공단 산재승인 오락가락’ 기사 중 2003년 8월 집단산재요양을 신청한 청구성심병원의 산재승인을 지칭하고 있다는 게 하이텍공대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청구성심병원 조합원 8명은 “회사쪽의 노조탄압으로 집단 정신질환에 걸렸다”며 ‘산재인정신청’을 제출, 근로복지공단 서부지사가 “노조탄압에 따른 정신질환이므로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며 지난 2003년 8월2일 산재인정을 승인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이사장 지시사항은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 조합원에 대한 산재불승인 결정 뒤 청구성심병원 사례와 형평성이 어긋나는 등의 문제가 제기되자 공단은 이 유사사건에 대한 ‘차이점’을 분석하고 대처방안을 모색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 하이텍공대위의 주장이다. 이는 그동안 하이텍공대위가 주장했던 절차상 하자에 대한 문제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민정 공대위 간사는 “하이텍알씨디지회 조합원들의 산재인정신청과 청구성심병원의 산재승인 내용이 유사한 사건임에도 관악지사가 이에 대한 검토 없이 산재불승인 결정을 내렸다”며 “조사의 기본은 과거 유사사례가 있는지 여부부터 확인하는 것인데도 지금 과거 사건과의 차이점을 분석하겠다는 것은 역으로 하이텍알씨디 조사가 매우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2일 하이텍공대위의 이번 산재불승인과 관련 관악지사 불승인 결정철회 및 재심의 실시 등의 요구와 관련, 근로복지공단은 8일 서면을 통해 “현장조사 등을 통해 사용자의 주장과 신청인들의 주장을 충분히 수렴해 관악지사장이 판단한 것으로 절차상 하자가 없다”며 “재심의나 불승인 결정을 철회할 사유가 없다”고 답변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존 공단의 불승인 결정을 수정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는 속에서 ‘과거사건과의 차이점을 분석해서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공단 이사장이 지시한 것은 공정한 분석 보다는 ‘면피용’ 분석을 위한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하이텍공대위는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이번 사건과 관련 후속 조치 등을 직접 지시를 내린 것이 확인된 상황 속에서도 ‘관악지사장이 판단한 것’이라고 일축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어 “지난 4년간 감시와 차별에 시달리다 마지막으로 살기 위해 산재신청을 선택한 하이텍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전면투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공대위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집단 정신질환 산재불승인 규탄과 재심의·산재승인쟁취 투쟁선포 및 결의대회’를 근로복지공단 본부 앞에서 진행하고 이 자리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공대위는 “하이텍조합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 속에서 심각한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업무상 재해이며 산업재해로 인정되어 시급히 치료를 받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공대위는 하이텍조합원들이 산재승인·노동건강권 쟁취·민주노조 사수를 촉구하며 철야농성을 계속할 예정이며, 오는 17일 투쟁승리문화제 및 매주 수요일 집중집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마영선 기자 leftsun@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