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내 감시와 차별로인한 건강권 침해 보고대회
“투쟁할 땐 몰라. 그 뒤에 오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감시·차별 당한 노동자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산재 승인 촉구
빛 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내들며 지나간 옛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몸서리쳐지는 ‘고통’인 사람들이 있다. 번쩍이는 카메라 셔터 세례에 “제발, 카메라 좀 저리 치워줘”라고 울부짖다 까무러치는 사람들.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CCTV, 몰래카메라, 전화도청, 대화 녹음, GPS 추적 등에 시달리다 ‘불안, 우울 증상을 수반한 만성적응장애’라는 병명조차 생뚱맞은 정신질환 판정을 받고도, 산재 불승인 판정을 받은 하이텍알씨디코리아노조 조합원들이 그들이다.
또 있다. 각종 차별과 감시, 폭언, 폭행에 시달리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버린 청구성심병원, KT, 성진애드컴의 조합원들 역시 옛 기억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노동조합을 했다는 이유로,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으로서 견뎌내기 힘든 모멸감을 맛봐야 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 매일노동뉴스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몰랐어”
올해 마흔넷, 두 아이의 엄마라는 김명희씨는 자신이 청구성심병원에서 당한 일들을 생각하면 온몸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기억의 일부분이 지워져 버렸다는 김씨.
그녀의 고통은 IMF 때 정리해고 당했다가 6개월만에 복직되면서 시작됐다. 노조를 결성하고 부지부장을 맡았다는 그녀. “저를 감시하기 위한 직원이 2명 고용됐어요. 감시카메라가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또 그 사람들이 저를 감시해 상부에 보고하고…. 차 한잔 마시고 있어도 전화가 와요. 왜 근무시간중에 차 마시냐고.”
김씨는 2003년 8월 오랜 투쟁 끝에 산재 승인을 받고 아직까지 치료를 받는 중이다. 정신과 치료 프로그램 중 사회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은 병원(청구성심병원) 앞까지 다녀와야 하고, 그러고 나면 며칠은 악몽에 시달린다는 그녀는 “하이텍 동지들 빨리 치료해야 돼요. 투쟁할 때는 몰라. 그 뒤에 찾아오는 고통이 얼마나 큰 건지…”라며 눈물을 훔쳤다.
“욕 좀 하지 말라고 노조 만들었더니, 카메라로 감시하더라”
동네 골목 전봇대에까지 흔하게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실은 ‘사람 잡는’ 카메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너무 흔하니까 무감각해진 것이다.
서울 을지로 인쇄골목에 위치한 성진애드컴.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멸감을 넘어 무기력증까지 경험했단다. 사장 아들이 끊임없이 내뱉는 욕설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위축되기에 이른 것. 참다참다 노동자들이 지난해 5월 단일 인쇄업체노조를 결성하기에 이르는데, 이게 바로 언론노조 성진애드컴 분회다.
“우리 요구는 손님들 보는 앞에서 욕 좀 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그러고 며칠이 지나니, 회사 안에 카메라가 하나둘 설치되기 시작하는데, 거의 건물에 도배하는 수준인 거에요. 직원들 눈보다 카메라가 더 많아….”
성진애드컴분회 이진훈 분회장의 말이다. 그도 처음엔 카메라의 위력을 미처 몰랐다. 조합원들을 한쪽자리에 몰아서 배치시키고, 거기에 카메라가 집중 설치되고 난 연후에라야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화장실만 갔다와도 바로 전화가 와요. 어디 갔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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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도 분명 산업재해입니다”
지워버리고 싶은 고통의 기억, 그 한가운데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열세명의 조합원이 있다. “쟁의행위 중인 조합원들은 사용주의 지배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산재로 승인되지 않는다”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판정을 받고, 병든 몸을 이끌고 오늘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더구나 오늘(15일)로 30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폭언, 폭행, 감시, 안 당해본 것이 없습니다. 감시 탄압으로 인한 정신질환, 당연히 산재로 승인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근로복지공단은 우리들을 죽음으로 내몰 건가요?”
민원상담실에조차 감시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민원인 사고를 대비한다는 근로복지공단. 하이텍알씨디코리아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이 고달픈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닐까.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