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풀기 급급 ‘노동안전’ 내동댕이
노동재해 왕국 멍에를 벗자 ① 멈추지 않는 죽음의 행렬
일하다가 발생한, 또는 일과 관련된 사고의 정확한 표현은 ‘노동재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재해’로 불리운다.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수 없는 재해라는 식으로 본질을 흐리는 용어다. 이는 노동자를 ‘근로자’로 부르는 것과 같은 차원이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노동자가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는 ‘공안부 검사’가 처리한다. ‘노동재해’를 ‘사회의 안녕과 질서’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담당하는 노동부의 주무 기관은 ‘산업안전국’이다.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다루는 법규마다 쓰이는 용어도 ‘노동안전’이 아닌 ‘산업안전’이다.
‘재해업체 불이익’ 규정없애
관련용어는 여전히 ‘산업안전’
보험탓 누락 많아 통계 엉터리
새로운 유형의 질병과 사고까지 가세하며 ‘노동재해’는 갈수록 늘고 있지만,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정부와 사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의 안전·보건 영역은 환경·식품·의약품·공공·노동 안전 등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정부 예산과 관련 부처 규모에선 노동안전에 투입되는 예산과 인력이 가장 적다. 그럼에도 정부는 관급공사 입찰 때 ‘산재다발 건설업체’에 주던 ‘불이익’ 규정까지 최근 없애는 등 해마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각종 규제를 풀어가고 있다.
노동부 통계를 보면 해마다 3천명에 가까운 애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또는 일터에서 얻은 질병으로 삶을 마감한다(표1). 이조차도 정확한 숫자는 아니다. 까다롭기 유명한 산재보험으로 처리된 숫자만을 집계한 때문이다.
특히 노동자가 숨지는 이른바 ‘중대재해’가 아닌 일반 노동재해에 대한 정부 통계는, 집계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엉터리’다. 실례로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의 업무상 ‘사고 재해율’(산재보험 적용 노동자 대비 노동재해 발생 비율)과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 당 노동재해 사망자 수)을 비교하면, 재해율에선 영국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는 한국의 사망 만인률은 영국의 20배가 넘는다. 또 재해율이 높은 미국, 일본보다도 4배 가까이 높다. 산재보험의 높은 진입 장벽 탓 등으로 집계보다 몇배나 많은 노동재해가 기록에서 아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8만8874명’으로 발표된 지난해 노동재해 규모도 작지 않지만, 발표조차 무의미한 통계일뿐이다.
한국의 노동재해 사망률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국가들은 물론이고, 상당수 개도국보다도 월등히 높다. 국제노동기구가 노동안전보건을 위한 예산·제도·산재실태 등을 종합평가한 ‘2004년 국가별 노동안전지수’(표2)를 보면, 한국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물론,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보다도 낮다.
한 직장에서 해마다 20~30명의 산재로 숨지는 철도노동자들의 현실은 이런 노동재해 불감증의 심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추락, 붕괴, 감전 등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해마다 800여명이 목숨을 잃는 건설현장도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노동재해가 ‘각성’ 대신 ‘불감증’을 낳은 기막힌 현실이다.
지금 ‘노동자의 안전’은 ‘산업 안전’의 짐을 짋어진 채 고통스런 ‘물구나무 서기’를 계속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y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