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폭발사고 잦은 여수산단, 공황장애 집단발병 첫 확인
노동재해 왕국 멍에를 벗자 ①멈추지 않는 죽음의 행렬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산업단지에서 ‘폭발사고에 대한 공포’ 때문에 신경정신질환인 ‘공황장애’가 노동자들에게 집단 발병한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조행신 여수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은 “여수산단의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 사고에 대한 공포 때문에 호흡곤란, 전신마비 등을 겪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 확인 결과, 이 병원에서 1999년 이후 지금까지 ‘공황장애’ 진단으로 치료받은 노동자만도 20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노동자들은 고용 불이익을 우려해 발병 사실을 숨기고 있다.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노동자 박아무개(35)씨는 “최근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공장의 배관을 보는 것 조차 두렵다”며 “공황장애 증상이 오면 정상적인 근무가 힘들지만, 실직할까 겁나 회사엔 지병을 숨기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 김아무개(39)씨도 오래 전부터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곧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오는” 호흡곤란 증세에 시달리다, 최근 서울 ㄱ대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여수산단 노동자들에게 공황장애가 나타나는 이유는 끊이지 않는 대형 폭발사고 때문이다. 여수산단 입주 업체 122곳 가운데 유독성 인화물질을 취급하는 석유화학·정유공장 72곳은, 대부분 30년 이상된 노후 설비에다 사고도 잦다. 1970년 이후 214건의 사고가 일어나, 지난해 말까지 101명이 숨지고 171명이 다쳤다. 특히 70년대 7건에 지나지 않던 사고는, 80년대 33건, 90년대엔 122건으로 급증했다. 여수/특별취재팀 y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