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해외판결] ‘업무상 재해’ 인정 배상 결정
[서울경제신문 2006-02-06 16:09:28]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로부터 심한 모욕적 언사를 들어 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했다면 그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미국 노동부의 결정이 나왔다.
20년간 우체국 직원으로 일해온 크뢰스트(Kruest)씨는 지난 1999년 우편물을 나르던 중 머리와 목에 부상을 입은 이후 우편물 포장 등 단순업무만 담당하는 부서로 배치됐다. 그 후 그는 직장 상사나 동료들로부터 “나가서 자살해라”, “아픈 척 하지 마라”, “게으름 피우지 마라”는 갖은 욕설과 모욕적인 언사들을 듣게 됐고, 이를 빠짐없이 기록해 둔 일기를 자신의 개인사물함에 남겨둔 채 2002년 권총으로 자살했다.
연방근로자보상심의회는 그의 자살은 회사에서 들은 모욕적 언사 등으로 인해 발생한 심한 우울증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고, 미국 노동부는 크뢰스트의 미망인에게 매년 1만5,000달러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조 제1호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상 사유에 의한 근로자의 부상ㆍ질병ㆍ신체장해 또는 사망을 말하고, 그 인정기준에 관하여는 노동부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령 시행규칙 제32조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적극적 요건으로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의한 업무를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수행하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하거나(업무수행성)”, “사고와 근로자의 사상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을 것(업무기인성)” 과 함께 소극적 요건으로 “근로자의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상이 아닐 것”이라 규정하고 있어 원칙상 자살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 7월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은 자 또는 업무상 재해로 인해 요양 중인 자가 정신장해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 능력 또는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행위로 인해 사상하였다는 의학적 소견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증권회사 직원이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생겨 음독자살을 시도했다가 뇌손상을 입은 것과 관련,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 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의 판결을 한 바 있다.
반면,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서 수사를 받은 후 한강에 투신자살한 모 건설회사 사장의 부인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패소판결을 선고했다.
비자금 조성은 정상적 회사 업무가 아니므로 이는 업무수행성 등이 없고, 이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은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김정훈 변호사 (한국ㆍ미 뉴욕주) 법무법인 바른(Kim, Chang&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