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대한민국]無籍者 2세 급증 ‘최소한 기본권’ 보장을
[경향신문 2006-02-09 19:35:08]
몽골인 ㄱ군(15)은 현재 부모 없이 혼자 지내고 있다. 아버지는 지난해 6월 불법체류자 일제단속에 적발돼 강제 추방당했고 어머니는 건강문제로 2004년 먼저 귀국했다. ㄱ군도 아버지와 함께 몽골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부모는 단호했다. “너는 여기서 어떻게든 남아서 꿈을 이뤄야 한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꾹 참고 지내거라.” 아버지가 떠나면서 ㄱ군의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한 말이다. “이곳에서 한국어라도 배우면 몽골에 돌아가 고수익이 보장되는 직장을 잡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해 5월 4일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외국인노동자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서울대공원을 찾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산업연수생은 가족 동반입국이 허용되지 않아 자녀를 데려올 때 가짜여권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관광비자로 입국, 일정기간이 지나면 소재 불명자가 된다. ㄱ군도 몽골 여권브로커의 아들로 행세하며 한국에 관광온 것처럼 입국했다.
스리랑카인 ㅎ군(6)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본국인 스리랑카에도, 한국에도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은 ‘무적자(無籍者)’다. 태어났을 때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해 외국인 등록을 받는 게 원칙이지만, 신고 과정에서 불법체류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부모가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엄연히 살고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은 무적자는 ㅎ군 외에도 많다.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면서 2세도 자연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에서 불법체류자 현황은 파악하면서 2세 문제는 애써 외면하고 있어 현황이 파악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정부가 외면하는 사이 불법체류자 2세들은 한국사회의 어두운 그늘에서 성장하고 있다. 산업연수생 제도가 시행된 지 10여년이 되면서 불법체류자의 2세들은 이제 취학연령에 접어들고 있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존재로 성장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음지에 있는 이들을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 사회 안전망에 포함시킬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규범을 공유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교육권 보장이 필요하고 공교육 문호를 대폭 개방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2세들이 안정적인 체류를 할 수 있도록 시각을 바꿔야 한다”면서 “부모가 한국을 떠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줘 한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일본과 같이 10년 이상 거주한 불법체류자에게 합법적 신분을 보장하는 체류 특별허가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권 보장을 위해 부모가 강제출국 대상이 된 경우 출국시기를 자녀의 학기가 종료된 이후로 유예하는 등 탄력적 운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의료 문제는 불법체류자 본인에게는 5백만원까지 지원하면서 배우자와 2세에 대해서는 일절 지원이 없는 모순을 시급히 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 김미선 사무처장은 “민간단체와 의료상담소에 지원금을 줘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불법체류자 2세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출산을 전후한 모자의 건강권에 대한 보장이 시급하다”며 “산재보상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른 배를 숨기며 일하거나 산후조리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국내에서 겪는 문화적 충격을 해소할 대안 마련도 시급한 실정이다.
지구촌학교 이은하 운영팀장은 “독일처럼 현지어 학습을 정부차원에서 지도하고 부모와 자녀간 문화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다문화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지역사회복지관에 위탁교육을 실시하거나 학교교사나 자원봉사자를 통한 후견인 제도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불법체류자 2세에 대한 부모 양육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코시안의 집 김영임 원장은 “양육비 부담과 불안한 신분 때문에 갓난 아기를 비행기에 실어 본국으로 보내는 실정”이라며 “적어도 부모들이 체류하는 기간에는 한시적 영주권을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철·임지선기자 cho1972@kyunghyang.com〉-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미디어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