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사고와 철도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끊일 줄 모르고 일어나고 있다. 7월 말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열차 여객사고는 2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25건에 비해 60.0%(75건)가 급증했고, 사상자 수도 지난달까지 사망은 36명으로 지난해의 19명에 비해 89.4%, 부상은225명으로 지난해의 161명에 비해 39.8% 가 증가했다. 이 통계는 8월 8일 대구에서 발생한 열차 추돌사건이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철도노조는 8월 29일 개통예정인 분당선 수서-선릉 연장운행과 관련해 인력과 안전조치가 부족하다며 연장운행을 연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올해 들어 업무중 사망한 철도노동자의 수도 17명에 이른다. 2001년 34명, 2002년 24명의 산재사망자 수는 철도현장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철도청의 안전대책 수준을 말해주고 있다.
민주화된 철도노조의 첫 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공공연맹 운수분과를 이끌고 있는 김재길위원장을 만난 건 이처럼 계속되는 철도노조의 사고에 대한 어떤 의구심이 들어서 이다. 현재 정부는 628파업이후 대량징계와 해고로 민주철도노조를 난도질하려 하고 있다. 철도노조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분주한 사이 정부는 철도승객의 생명과 철도노동자의 안전에 빨간 불을 켜는 정책을 간도 크게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지금 운수쪽의 최대화두는 안전문제다. 대구 참사 때문만이 아니다. 노조의 역량이 있을수록 시민안전을 화두로 싸울 수 밖에 없다, 안전을 얘기하면 경영권 침해라 하지만, 노조만큼 잘 아는 곳도 없다. 불안전요소를 잘 안다. 일반시민은 몰라서 지나치지만 노조는 등골이 오싹할 때가 많다. 양심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도, 떳떳이 일하기 위해서도 안전을 얘기해야 한다.
8월 18일, 용산 철도노조에서 만난 김재길 위원장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계속되는 철도사고에 대해 철도노조를 만나고도 싶었지만 628 파업이후 위원장까지 구속하면서 노조를 밀어부치는 정부와의 싸움에 힘겨울 것을 생각하면서, 철도를 잘 알면서도 공공연맹에서 궤도노조를 조직하고 있는 김재길 위원장을 대타로 정했다.
먼저 대구지하철 사고 이후 노동조합이 지하철과 열차의 시민안전, 공공안전에 대해 말하고, 투쟁을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대구 사고가 난 후 대구지하철 노동자들이 죄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624 파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거 보면서 사회공공성에서 시민안전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임을 실감했다. 서울지하철하고 도시철도가 파업이 부결됐는데도 대구, 인천, 부산 세 군데 지하철이 기죽지 않고 파업을 하면서 ‘시민안전위원회’를 따낸 거다. 사실 불안했는데 조합원들 하는 거 보면서 하길 잘했구나 생각했다.
당시 지하철 3사의 핵심요구는 시민들의 안전운송을 위한 대책을 내라는 것이었다. 대구참사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확실한 안전대책을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오히려 약간의 예산배정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하고 있어 대구참사 유가족들은 아직도 고인들의 시신도 수습을 못한 채 애를 태우고 있다.
아, 바뀐 것이 있기는 하다. 지하철 역사 곳곳에 대피요령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고, 대형TV는 간간이 소화기 작동법, 지하철 문여는 법을 보여준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무심한 듯, 그러나 비장하게 TV 화면을 노려본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 출근길에 퇴근길에 우연히 덮쳐올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유비무환.
8월 8일 일어난 고모역 열차사고는 다시 한번 철도안전을 생각하게 했다. 사고가 일어나자 일제히 기관사와 역무원이 구속됐고, 정부와 언론은 기강해이, 안전불감증을 들먹이고 있다. 철도노조는 이에 대해 성명과 보도자료를 내며 반박했는데..
대구 사고 때도 대구시장과 정부가 책임을 졌어야 했는데 언론도 정부도 이를 외면했다. 불지른 사람이 무기형을 받고, 직원들도 금고 5년씩 때렸지만 중간관리자 하나 구속되지 않았다. 예산과 집행권한이 있는 시관계자를 처벌해야 하는데.
고모역사고는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다. 기관사의 잘못이 아니라 신호기, 자동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일어난 사고였다. 그나마 기관사가 조심해서 열차가 전복되지 않고, 사상자도 적은 편이었다. 신호시스템의 문제를 인정하면 철도청장과, 건교부장관이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못 한다.
사고가 나면 노사가 공동조사단을 꾸리고, 공동발표를 해야 믿을 수 있는데, 언론 중에 한겨레정도만 살짝 이 문제를 건드렸을 뿐, 모두 근본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공공연맹에서는 건교부만 끼면 노동문제는 파국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데, 안전문제조차 대화가 불가능하다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건교부는 노조를 정책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교통안전을 말아먹고 있다. 모양새 갖추는 시늉만 낸다. 그야말로 교통불안전부 아닌가. 무책임하게 안전불감증을 조장하고 있다.
대구지하철 사고 이후에도 안전대책이란 게, 보이는 물량을 투입하는 것만 한다. 가장 손 쉬운게 납품할 업체 찾아서 불연재만 살짝 바꾸는 거다. 사고 난 후 공공안전에 대해 대안을 내는 전문가들이 많이 등장했는데도 건교부는 이 사람들을 챙겨서 일을 할 생각이 없다. 노무현대통령이 생각이 없는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공안전의 주체로서 노동조합이 연대전선을 꾸려 투쟁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노조의 투쟁이 공공안전을 만들어간다는 것인데 구체적 계획이라도 나왔는지..
공공연맹 운수분과 위원회에는 궤도노동조합과 항공, 관제사노동조합이 모여 있다. 궤도 뿐만 아니라 항공도 노조의 모토가 항공안전이다. 공공안전이 공공부문 노조의 화두인 것은 맞다. 올해 하반기는 임금협상만 남아있기 때문에 공공안전이 쟁점화되기는 어려운 시기이고, 안전이 단위노조만 해서는 쟁점화되기도 어려운 사안이다.
우선 노조조직이 강화돼야 대안도 만든다. 운수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동일화해야 하고, 그럴러면 비정규직문제를 신경써야 한다. 안전문제를 장기적으로 잡고 갈 정책단위도 꼭 필요하다.
조합원들도 자신감이 생겼다. 운수노동자의 얘기가 곧 안전정책이라고 자신있게 떠들어야 한다.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 지하철 3사 파업을 통해 시민안전위원회가 꾸려졌으니 그 구성을 잘 하는 것도 과제이다. 물론 일상활동으로도 잘 돼야 한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한국철도시설공단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2002년 2월, 발전, 가스, 철도 노조의 사유화반대 투쟁으로 사유화고비를 한 단계 넘긴 철도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개혁안을 마련하기로 한 2003년 4월의 약속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깨면서 다시 한번 공공성을 훼손당하고 있다. 철도노동조합은 6월 28일 공공철도 건설을 내걸고 파업에 돌입하였다. 628 철도파업은 한국 노조운동에서 가장 사회공공적이고 적극적인 투쟁이었다고 민주노총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은 통과되었고, 공무원연금문제가 해결되어 ‘한국철도공사법’까지 통과된다면 노무현정부의 철도구조조정법안 3개가 완결된다.
지금의 철도청은 철도산업의 시설과 운영 권한을 모두 갖고 있으나 이번에 법안이 통과되면서 시설과 운영이 분리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열차가 운행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철도시설의 유지보수가 철도를 운영하는 기관으로부터 떨어져나온 별개의 사업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안전의 책임소재를 두 기관이 서로 떠넘기는 구조가 되어 철도안전을 지금보다 더 위협한다는 것이 철도노조 파업의 이유이기도 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이 철도 사유화 노선으로부터 멀어진 건지,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봐야 하는 건지, 철도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설명을 부탁한다.
이번 법안 통과는 현재 국가가 운영하는 철도는 이제는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겠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공사화는 사유화의 과도기적 단계로 볼 수 있는 건데, 이후 공공성 강화로 가기 보다 사유화 체제로 가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시설과 경영이 분리되면 안전에 대한 국가책임을 회피하기가 더 쉬워진다. 법안에 민간위탁이 공식화되어 있기 때문에 야금야금 사유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많다.
628 파업 때, 노조가 제기하는 철도 공사화의 문제점이나 안전문제는 부각되지 않았던 것 같다.
언론의 공격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다. 그 때 쟁점이 ‘누가 4월 합의를 어겼나’ 거짓말 논쟁이 돼 버렸다. 합의를 어긴 게 아니라고 정부가 떠들어댔는데 그 대응에만 너무 힘을 쏟은 게 아닌가 아쉬움이 남는다. 안전문제로 걸었어야 하지 않나. ‘책임질 놈이 없게 철도를 쪼개고 있다’, ‘국민안전 책임질 놈이 없다’고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되면 국회의원들도 국민들 눈치보고 이 법안 통과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시민안전위원회를 요구한 6월의 지하철3사 파업때 지도부들은 지금 줄줄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628 파업을 지도한 철도노조 천환규 위원장은 징역2년을 구형받았다.
이 와중에 철도청은 9월부터 분당선 수서-선릉간 열차를 연장운행하면서 4개 역에 정규직 역무원을 배치하지 않고 모두 위탁 운영해 매표업무만 취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분당선은 무인운전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2인승무제가 필요한 구간인데도, 철도청이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1인 승무제로 전환을 강행한 후 2002년에만 11건의 사고가 난 곳이다. 여기에 매표소까지 외부 위탁해 최소의 인원만 역을 지킨다는 것은 ‘사고가 나라’고 비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철도노조는 서울시, 건교부, 경기도에 특별안전점검을 요구하는 민원을 접수했다.
지난 4월 열린 ‘대구 지하철 참사로 본 궤도 산업의 안전시스템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한 공청회 열 당시, 김재길 위원장은 전국궤도노동조합연대회의(궤도연대)를 이끌면서 민중연대를 비롯한 시민, 환경, 노동단체와 함께 공청회를 준비했다. 당시 공공연맹, 도시철도 등 노동조합의 대응은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칡뿌리 얽히듯 어지럽게 말만 무성한 사고원인, 책임공방, 향후 대책에 대해 문제해결의 주체로서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정부는 지하철 3사 노동조합의 파업당시 시민안전요구를 집단이기주의로 몰아 여론작업에만 몰두했다. 사고가 나면 ‘나사 풀린 철도원들’이라며 말 만드는 재미에 열을 올리는 언론과, 이를 조장, 이용하는 정부를 딛고 노동조합이 일어서야 할 길은 험하다. 그러나 가난한 노동자민중의 발일 수 밖에 없는 철도와 지하철, 공공교통의 안전을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나서겠는가.
공공철도와 민중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동조합의 선택을 많은 눈이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