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웨스트래이는 없다” 캠페인
지난 11월 7일, 캐나다에서는 ‘단체의 형사 책임에 대한 형법 개정안(An Act to amend the Criminal Code (criminal liability of organizations))’이 상원의회를 통과하여 법으로 제정되었다. 이 법안은 기업 등 단체 대표자가 행한 행위에 대하여 단체에게 형사 책임을 지우는 방식을 결정하고, 노동을 지도 감독하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와 공중의 안전을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법적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이 법이 제정됨에 따라 캐나다에서는 기업의 경영자나 관리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에 대해 기업을 형사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법의 제정은 캐나다 금속노조의 투쟁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은 일명 ‘웨스트래이 법안’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는 1992년 노바 스코티아주 스텔라튼에 있던 웨스트래이 광산 폭발 사고로 26명의 광산 노동자들이 사망한 후, “더 이상 웨스트래이는 없다(no more westray)”는 구호 아래 진행된 캐나다 금속노조의 일련의 사회적 캠페인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1992년 5월 9일, 웨스트래이 광산에서 석탄 가스와 메탄 가스가 폭발하며 동시에 화재가 일어나서 광산에서 일하고 있던 26명의 노동자가 사망하였다. 화재 직후 구조대가 재빨리 구조를 시작하였으나, 생존자는 없었고 붕괴된 광산에서 15구의 시체만을 찾아낼 수 있었다. 웨스트래이 광산은 클리포드 프레임이 경영하는 큐래프 자원회사의 소유였다. 이 광산은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정부 및 연방정부의 정치적 지원 아래 설립되었다.
사고 직후 1992년 5월 15일에 의회의 명령으로 노바 스코티아주 대법원의 리차드 판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에서 사고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다. 위원회에서는 사고에 대한 청문회를 계획하였는데, 웨스트래이의 경영자측이 캐나다 연방대법원에 이의 신청을 하였고, 이것이 기각될 때까지 시간이 걸려 최종적으로 1995년 5월 9일부터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다.
청문회는 1996년 7월 11일까지 76일간 진행되었고, 1996년 7월 22일 최종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웨스트래이의 경영자들은 청문회에 출석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큐래프 자원회사의 회장인 클리포드 프래임, 큐래프사의 부회장이자 웨스트래이의 사장인 마빈 펠리 등을 소환하였으나, 이들은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하여 이 소환에 불응하였다. 한편 웨스트래이 광산의 관리자인 제랄드 필립스와 현장 책임자인 로저 패리 역시 간단히 청문회의 소환에 불응한 채, 형사 고발이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노바 스코티아를 떠났다.
청문회의 최종보고서에서는 이 사고가 ‘천재’가 아니고 ‘인재’임을 명확히 하였다. 보고서는 이 사고가 광산 경영자, 정치인, 정부 정책 담당자의 총체적 무관심과 부주의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1차적으로는 광산 기계에서 발생한 불꽃이 광산 안의 석탄 가스와 메탄 가스의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지만, 이는 이윤에만 눈이 멀어 아무런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경영자와, 이에 대하여 눈감고 있었던 정부의 합작품이었다고 결론내렸다. 웨스트래이 광산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규제를 지키지 않았고, 정부는 이에 대하여 묵인한 채 영업 허가를 내주었고 이후 감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이 회사를 비호하였고 정부가 광산 설립을 위한 은행 융자에 보증을 섰다. 광산 노동자들은 수 차례 광산 안전의 문제점을 건의하였으나 이는 경영자, 감독관, 정부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에 대하여 광산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항의하려고 하자, 경영자들은 이들을 해고하겠다고 위협하고 탄압하였다. 보고서는 이와 같이 경영자, 정부, 정치인의 범죄 행위를 명확히 하고, 향후 이와 같은 범죄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권고안을 수록하였다.
이후 광산은 폐쇄되었고 웨스트래이사와 큐래프사는 파산하였다. 그러나 희생자들의 가족이 산재보험에 의한 혜택을 받음으로써 경영자들에게 민사소송을 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1998년 6월 30일 노바 스코티아 주정부는 경영자들에 대한 형사 소송을 취하하였다. 이는 이들을 형사 처벌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캐나다 금속노조와 웨스트래이 희생자 가족대표단은 이들을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의 개정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금속노조의 요구를 반영하여 1998년 8월 4일 캐나다 신민주당 대표인 알렉사 맥도나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연방정부가 “기업의 살인”에 관한 범죄 행위가 포함되도록 형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음을 하원의회에서 연설하였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는 알렉사 맥도나휴의 제안을 의회가 받아들이도록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의원 개개인에게 편지와 팩스를 보내는 운동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었고, 금속노조는 다양한 형태로 압력을 행사하고 로비를 진행하였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금속노조는 앞으로 이와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향에서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첫째, 기업이 작업장에서 직업안전보건 기준을 적절히 지키지 않을 경우 경영자와 그에 준하는 사람에게 형사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의 제정, 둘째 “기업의 살인 행위”에 대한 새로운 법률의 제정, 경영자와 관리자의 책임을 광범위하게 규정하는 방향으로의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 등이 그것이었다. 위원회는 이러한 제안이 설득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정부는 기업 경영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법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였다.
캐나다의 형법에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경영자의 행동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명시한 조항이 없었다. 웨스트래이 사건을 조사한 위원회는 웨스트래이사의 행동에 대해 “고의적 무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그러한 경영자의 행동이 직접적으로 사고를 일으킨 것이 명백하고, 경영자들은 26명의 죽음에 대하여 형사적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였다. 그러나 캐나다의 형법상으로는 사고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경영자에게 묻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그에 따라 경영자를 처벌할 수 없었다. 이에 금속노조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경영자에게 물을 수 있도록 형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캠페인의 결과 2000년에 두 개의 개인 의원 입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그리고 금속노조의 활발한 활동으로 금속노조 활동가들과 의회의 인권과법률 상임위원회 위원들과의 토의가 이루어졌다. 이 토의 결과 상임위원들은 두 개의 개인 의원 입법안의 정신을 반영한 형법 개정안을 법무부가 제출하도록 하는 요구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그러나 2000년도에 총선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정부의 법안 제출이 늦어졌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의 활동은 2000년 총선 후 재개되었다. 새롭게 선출된 의원들과 법무부 장관을 대상으로 또다시 형법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사고 10주년인 2002년 5월 의회에서 또다시 의원들과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또다시 법사위원회 전원의 동의를 얻어, 정부가 기업과 대표자 및 경영자의 형사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법률을 의회에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권고안을 채택하였다. 2002년 11월에 권고안이 정식으로 채택되었고, 정부는 이것을 받아들여 2003년 6월에 이에 대한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하였다.
금속노조 입장에서는 정부의 법안은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회기를 넘기면 또다시 총선을 맞이하게 되고 다른 의회에서 똑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에, 금속노조는 정부안에 대해 몇 가지 개선을 요구한 후 이를 받아들였고, 이것은 지난 11월 7일 최종적으로 상원의회를 통과하여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되었다.
새롭게 개정된 법률의 중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정책 결정 능력을 가지고 있는 최고관리자가 범죄를 범했는지 여부에 따라 기업 및 기타 단체의 형사 책임이 결정되지 않는다.(이전에는 최고관리자가 ‘범죄의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범죄가 성립되었음 캐나다의 형법 체계 내에서 ‘기업’은 독립적으로 범죄 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된다. 이는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 형법은 ‘개인’만이 범죄를 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캐나다의 기존 형법 체계 내에서 기업의 범죄는, 기업의 정책 행위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최고경영자가 범죄의 의도를 가지고 행한 행위나 과실에 대해서만 성립하였다. 이를 ‘입증의 원칙(identification theory)’라 부른다. 이러한 체계 내에서 최고관리자의 ‘범죄 의도’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음으로써, 대부분의 기업 범죄, 특히 대기업의 범죄가 유죄로 입증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이는 영국, 호주 등 ‘기업’을 범죄 행위의 주체로 인정하는 나라에 동일한 현실이다.)
? 기업 및 기타 단체의 범죄를 구성하는 의지적 요소와 행위적 요소가 동일인에게서 연유해야 할 필요가 없다.
? 자신의 행동이나 태만이 기업 및 기타 단체 범죄의 행위적 요소가 될 수 있는 대상을 모든 피고용인과 계약자까지로 넓힌다.
? 과실에 의한 범죄의 경우, 최고관리자의 집합적 실책이 인정된다면 이는 기업 및 기타 단체에게 과실 범죄의 의지적 요소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
? 고의와 무모함에 의한 범죄의 경우, 최고관리자가 범죄의 당사자이거나, 최고관리자가 기업 안의 다른 이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를 알고서도 그러한 행위로 인한 결과를 예방하거나 멈추게 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범죄를 구성하는 고의가 기업 및 기타 단체에 있었다고 본다.
? 기업 범죄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판결 원칙을 따른다.(벌금의 정도나 형량의 정도 등에 대하여)
? 기업의 임원에 대해 특별히 형사적 책임을 묻는 방안은 기각한다.
? 다른 사람의 노동을 관리하는 책임을 지닌 자가 그 노동을 행하는 이들이 그것으로 인하여 해를 입지 않도록 합리적인 조치를 취할 법적 의무를 지님을 명확히 한다.
캐나다 금속노조는 위의 법안이 기업의 최고관리자에게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 책임을 지우는 정도가 불충분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현재의 법안이 기업의 최고관리자가 자신의 대리인을 내세워 자신의 특정 의무를 대신하도록 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는 대리인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로 인해 최고관리자의 책임이 면제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현재의 법안은 작업장 안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노동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이에게 부여하고 있는데, 노조는 이 책임을 최고관리자와 경영자에게 포괄적으로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 두 번째 언급한 이유 때문에 현재의 법안은 작업장 안전의 법적 책임을 하청업체나 계약업체에 지울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노조는 이는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작업장 안전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기업의 최고관리자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는 이 법안의 제정을 환영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던 바와 같이 12년간 지속되었던 노조 캠페인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캐나다 금속노조 위원장인 로렌스 맥브레티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법안이 제정된 것은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노동자의 생명을 고의로 위험에 빠뜨리는 기업과 임원 및 경영자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오랜 동안 힘들게 싸워 왔다. 90년대 중반에는 청문회가 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싸웠고, 청문회 결과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끌어 내었다. 이후로 우리 활동가들은 하원의회와 상원의회의 모든 정치인들을 만나 지지를 요청하였다. 나는 우리 노조원과 우리 운동을 지지해 준 모든 이들이 자랑스럽다. 특히 신민주당은 연방의회에서 우리 입장을 충실히 대변해 주었다. 웨스트래이 희생자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고, 그들의 가족은 더 이상 웨스트래이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자료 : 캐나다 금속노조 홈페이지(www.uswa.ca)
정리 : 김종민(노동건강연대 사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