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부가 발표한 3/4분기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산재현실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경기 불황과 고용 불안정성이 심화되어 산재은폐가 더 늘어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년 동기간에 비해 재해자수가 10,673명이 늘었고, 증가율도 18.0%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망자수를 보면, 그 심각성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재해자수가 증가한 이유를 산재보험 요양청구 경향이 커졌고, 노동자의 권리의식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좋게 해석하더라도 사망자수가 전년도 동기간에 비해 2백68명이 증가하고 증가율이 14.2%에 이른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 처참한 노동안전보건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욱이 사업장 안전의 직접적 지표라 할 수 있는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가 전년도에 비해 12.0%가 증가하였다는 점은 노동자의 건강권이 십 수년 전으로 후퇴하였음을 의미한 결과라 하겠다.

 

이러한 사망재해의 증가 양상은 비단 올해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양상을 보여왔다. 연도별 산재통계를 보면, 80년대 이후 재해율은 완만한 감소세를 보이는데 비해 사망만인율은 일정한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용대상자가 계속 증가하였기 때문에 사망만인율 역시 줄어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줄지 않은 것은 절대 숫자가 계속 증가하였음을 의미한 것이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은 물론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교해볼 때도 매우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산재로 인한 사망만인율은 2002년 현재 2.46인 것으로 발표되고 있는데, ILO의 조사결과에 의할 때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건설현장의 중대재해, 화학공장의 폭발사고, 철도현장의 압착사고, 조선소의 대형사고 등 전통적인 사고성 재해에 의한 사망사고가 많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렇듯 원시적 형태의 사고성 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 산재에 있어서 만큼은 어떠한 진전이나 발전이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후퇴하였다는 이야기가 정확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사실 7-80년대에 한국사회를 지배한 성장 패러다임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 자체가 산재 문제의 해결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전시 동원체제를 방불케 했던 개발독재 시대에서 노동자는 고도성장을 위한 기계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 다치고 병들어 효용가치가 떨어질 경우 기계에 새로운 부품을 갈아 끼우듯 새로운 산업예비군으로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그 과정에서 산재란 전쟁 중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산물, 또는 사회적 비용쯤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지배적 담론으로 유지되고 있다.

 

물론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의 성장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의식이 커지게 되면서 부분적이나마 노동자의 건강권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던 측면이 존재하게 되었다. 또한 총자본 역시 과거와 같은 폭력적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고, 산재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무시하기 어려워지면서 노사에 의한 산재문제의 자율적 해결이라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산재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정부 규제 방식이 아닌 전문가를 매개로 한 노사 자율 해결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서 안전보건의 획기적 진전을 이루자는 자본측의 주장은 전후 맥락에 대한 고려나 구조적 조건에 대한 언급 없이 주장되면서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무분별한 규제완화 조치들이 가시화되면서 현재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 노사에 의한 자율적 해결 방식이 성공을 거두었는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미국에서 이러한 담론과 정책이 사회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구조 및 생산조직의 변화를 전제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즉,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핵심적 의제 중 하나인 ‘형식적 규제 완화’가 의미한 바는 전통적 산업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생산조직 및 생산패턴의 변화라는 구조적 조건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하며, 전통적인 안전보건의 문제가 주요한 흐름이 아니라 새로운 안전보건의 문제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생산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안전보건과 환경 등에 투입되었던 비용이 점차 커지게 되면서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점도 신자유주의 패러다임 또는 시스템을 강제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미국에서조차 문제 해결을 위한 종착역이 아닌 계급갈등을 더욱 확대 재생산하는 계기가 될 뿐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노동자의 분할과 노동조건의 변화를 통하여 노동과정을 새롭게 통제하려는 전략은 모순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노동자 건강 문제 역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직업병의 확대와 새로운 노동자 건강 문제의 등장으로 현상화된다는 사실을 짧은 경험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복지의 축소에 따른 빈부격차의 심화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대하여 근본적 비판을 제기하는 사회적 흐름을 강화시키고 있고 패러다임 자체의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지배적 담론으로 형성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복지의 과잉’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할 수도 존재해본 적도 없는 사회적 조건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일 뿐 아니라, 산업구조의 변화와 생산조직 및 패턴의 변화를 전제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성장 논리를 들이밀면서 한번도 제대로 된 규제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총자본이 법적 제도적 규제장치가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었다고 진단하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모든 규제 장치를 풀라고 요구하는 것은 궁색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다. 그보다 예전엔 지키지 않으면 그만인 규제 장치,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규제 장치가 있는지 조차 신경을 쓰지 않았던 총자본이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성장으로 규제장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전술적 목표가 형식적 규제장치를 실질적인 보호 장치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투쟁으로 모아지면서 형식적 규제 장치조차 무력화하여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장의 신화, 전사의 논리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등에 업고 여전히 우리사회에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전통적 안전보건규제가 현 시기 적합하지 않은 낡은 유물이라는 자본측의 주장은 예전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던 규제 장치, 즉 효용성을 논할 가치조차 없었던 규제장치가 지금은 자본의 발목을 잡는 규제장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과거의 규제장치가 효용성이 없었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안전보건의 측면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전일적 구조화는 일반적인 신자유주의 구조화보다 훨씬 심각한 후유증과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고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 수밖에 없다. 여전히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전통적 산업이 주요 구성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산업구조 및 생산패턴의 고도화가 쉽지 않으며, 물적 조건의 취약성으로 노동의 유연화 자체가 노사정 합의구조로 정착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항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전일적 구조화는 과거의 법적 제도적 유물을 동원한 폭력적 강제 및 통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폭력적 방식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양분하고 문제의 상당 부분을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등 주변부 노동자로 전가하면서 아주 제한적인 양보만을 중심부 노동자에게 제시하고 합의를 강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폭력적 방식의 신자유주의 구조화는 필연적으로 모순을 완화하기 보다 증폭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다.

 

결국 한국의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과거와 현재의 갈등 구조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고 정부 내에서조차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안전보건과 관련한 정부정책의 혼선과 대립양상, 그리고 규제 개혁의 실상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산재 사망에 대하여 거의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모습일지 모른다. 단편적, 기술적 차원 외에는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나 구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현재의 법과 제도, 그리고 행정력으로 산재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산재 사망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높은 수준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총체적 노력을 전개하지 않고서 OECD 표준을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산재 사망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와 구체적인 노력이 지금 당장 전개되어야 한다. 과연 정부는 그러한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