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정부예산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평가하기 위해서 먼저 정부의 예산에 대하여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정부예산이란 일반회계에서 다루어지는 부문을 말한다. 그러나 정부예산이란 매우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고 노동안전보건부문의 재원은 일반회계보다는 기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므로 정부의 재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한 국가의 경제는 크게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으로 나눌 수 있으며, 공공부문은 다시 비금융공공부문과 공공금융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넓은 의미로 공공부문을 정의하면 공공금융부문과 비금융공공부문이 모두 포함되지만, 재정적 측면에서 공공부문을 논의하는 경우 공공금융부문을 제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금융공공부문은 다시 비금융공기업부문과 일반정부부문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일반정부부문의 재정은 다시 중앙정부의 재정과 지방정부의 재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지방정부의 재정은 국제통화기금에서 정한 통합예산(consolidated budget)의 범위에서 제외된다.1) 중앙정부의 재정은 크게 예산과 기금으로 구성되며, 예산은 다시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로 나누어진다.2) 예산 외로 운용되는 민간관리기금은 정부재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앙정부의 재정활동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및 기금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일반적으로 기금을 제외하고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만을 중앙정부의 예산이라고 부르며, 중앙정부의 예산을 가장 좁게 정의하면 일반회계만을 의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재정 혹은 예산의 규모는 예산의 포괄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사뭇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회계, 특별회계 그리고 기금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해야만 우리나라 재정의 구조와 그 규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일반회계는 일반 세입으로 일반적 지출을 담당하는 회계이다. 일반회계는 국가예산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우리가 통상 정부예산이라고 하면 일반회계를 지칭한다. 즉, 일반회계는 중앙정부의 기본적인 재정활동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산이다. 일반회계는 행정부의 예산편성, 국회의 심의 및 의결, 행정부의 집행, 그리고 국회의 결산이라는 네 가지 과정을 거쳐 운용되며, 그 수입은 거의 중앙정부가 징수하는 조세 수입으로 구성된다.

 

특별회계는 일반회계와는 달리 정부의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치?운용되는 것이다. 예산회계법에 의하면, 특별회계는 국가에서 특정한 사업을 운영할 때, 특정한 세출에 충당함으로써 일반회계와 구별하여 경리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로써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특별회계는 다시 (공)기업특별회계와 기타특별회계로 나눌 수 있다. 기업특별회계는 일반행정활동과 정부기업활동의 중간적인 성격을 갖는 정부활동을 위해 설치된 것으로서 조달특별회계, 철도사업특별회계, 양곡관리특별회계, 통신사업특별회계 등이 그 예이다. 기업특별회계를 제외한 나머지 특별회계는 모두 기타특별회계로 분류되며, 재정투융자특별회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기금은 1961년에 종전의 ‘재정법’을 대체하여 새로이 제정된 ‘예산회계법’에 의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현행‘예산회계법 제 7조’에 의하면 국가는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자금을 운용할 필요가 있을 때에 한하여 법률로써 특별한 기금을 설치할 수 있고, 이렇게 설치된 기금은 세입세출예산에 의하지 아니하고 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기금은 2000년 말 기준으로 61개(공공기금 43개, 기타기금 18개)로 운용규모가 191조 원 수준에 이르러 재정은 물론 실물경제, 금융시장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기금제도는 국가재정의 투명성을 저하시키고 재원의 최적배분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공공개혁의 일환으로 기금제도 개선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1999년 ‘기금관리기본법’ 개정과 더불어 1999년 말 75개에 달하였던 기금을 2003년까지 55개로 정비하기로 했고, 종래 개별 기금별로 운영되던 기금운영에 대한 점검?평가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기금정책심의회’와 ‘기금운용평가단’을 신설하는 등 기금운용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따라서 기금제도가 존치되는 동안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재원이 확보되는 장점이 있지만 기금제도가 폐지되거나 변화를 겪으면 재원확보에 상당한 곤란을 겪게 된다. 현재 기금정비, 기금에 대한 국회의 통제강화 등의 개혁을 내걸고 새천년민주당의 ‘기금제도개선기획단’과 정부가 기금제도 개혁안을 마련하여, 이를 반영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이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2002년 3월 1일자로 산재보상보험법 제80조를 개정하여 산업재해예방기금은 산재보상보험기금과 통합하여 관리하게 되었고, 산업안전공단으로 출연되는 산재예방기금이 근로복지공단이 관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노동안전보건에 투입되는 대부분의 재원이 기금에서 충당되고 있다는 점에선 기금의 통합 관리에 따른 내용상의 변화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산재예방사업에 투입되는 공공재원은 대부분 기금으로부터 충당되고 있다. 노동부의 일반행정이외의 노동안전보건에 사용되는 정부의 산재예방사업은 대부분 산재보험 및 예방기금3)에서 충당되고 있다.

 

산재보험 및 예방기금은 산재보상보험법 80조에 의해 보험사업 및 산재예방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 보험급여에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 운영되고 있는데, 보험급여의 지급 및 반환금의 반환, 차입금 및 그 이자의 상환, 근로복지공단에의 출연, 산업안전보건법 제61조의 34)의 규정에 의한 용도, 재해근로자의 복지증진, 한국산업안전공단법에 의한 한국산업안전공단에의 출연, 기타 보험사업 및 기금의 관리 · 운용 등에 관한 주요 용도를 법률로서 규정하고 있다.

 

기금의 총 규모는 2004년도 기준으로 수입 및 지출예산액이 각각 5,858,391백만원이다. 수입금의 대부분은 보험료 수입이며 기금계정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즉, 산재보험기금은 전적으로 산재보험료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의 일반회계 전입금은 144억 5800만원으로 2004년도 총기금 수입액 5조8583억9천백만원의 0.2%에 불과하며, 이는 전년도의 0.3%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지출예산 중 산재예방에 소요되는 비용을 살펴보면, 전체 기금의 5.3%인 3133억원에 불과하다. 정부의 일반회계 전입금 144억원이 모두 산재예방에 사용되었다고 해도, 산재예방 비용 중 정부 예산 비율은 4.6%에 불과한 것이다. 산재예방에 소요되는 비용의 구체적인 내역을 보면, 한국산업안전공단 출연(1307억, 2.2%), 산재예방시설 투자(1032억, 1.8%), 클린사업장조성지원사업(700억, 1.2%), 사이버안전대학 설립(35억, 0.1%), 중대사고 대응 구축(19억, 0.05%), 화학물질 연구용역(39억, 0.1%) 등인데, 정부 예산이 대부분 한국산업안전공단 출연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정부 예산에 의한 노동안전보건의 실질적 투자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산재예방사업은 시장을 통해 해결하기 어렵고 서비스의 성격이 공공재적 성격을 강하게 갖기 때문에 국가가 사업의 기획, 집행, 평가 등에 대한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당연하게 재원의 마련에 있어서도 기금 방식이 아닌 정부 예산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 합당하다. 정부 예산을 통해 공공재 확보를 못하면서 편의적 발상으로 산재보험 기금을 이용하는 것은 여전히 산재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낮음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산재보험기금의 주요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산재노동자의 치료, 보상, 재활 등에 요구되는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고 적용 범위도 전체 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산재예방에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산재보험기금을 통해 산재예방사업을 하더라도 기본적인 산재예방시설의 확충이나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출연 등과 같이 정부 예산을 통해 직접 해야 할 사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특히 예산과 달리 기금은 국회의 예산 심의를 받지 않고, 정부 소관부처에 의해 관리된다는 점에서 감시 기전이 작동하기 어려운데, 산재보험 및 예방기금도 마찬가지다. 2000년 10월부터 일부 의원들이 국회의 기금 심의권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하였고, 이를 둘러싼 논의가 1년 이상 진행되었으나, 특별한 이유 없이 2001년 12월 국회 논의 과정에서 기획예산처에 전체 기금운용을 총괄하는 권한이 부여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결국 기금의 감시는 산재보상심의위원회에서 담당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 주도의 심의위원 구조, 자료 부족, 심의 시간 부족 등으로 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라 하겠다.

 

일년에 2500명이 넘는 노동자가 희생되는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은 정부가 여전히 산재문제를 중심적 과제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그의 반영물이 예산에 반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ECD 표준은 노동자를 해고하기 위해 무기로 사용한 채 정말 OECD 표준이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눈을 감아버리는 정부 당국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현재의 비참한 현실은 좀처럼 바뀌기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생각을 하게 된다. 예산은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지의 척도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정말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가? 그렇다면 예산을 최소 산재예방사업에 소요되는 비용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라! 이것이 첫 출발이어야 한다.

 


주)

 

1) 정부예산의 포괄범위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데는 커다란 어려움이 따른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고 재정통계 작성의 일관성을 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통화기금(Intermational Monetary Fund : IMF)에서는 통합예산에 의한 재정통계 작성을 권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부터 IMF방식에 따른 통합예산을 작성하고 있으며, 재정의 총괄적인 규모는 1970년까지 소급하여 IMF방식에 따라 분류해 놓고 있다. 〈표2-1〉에 제시된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체계도 이러한 통합예산에 따른 공공부문의 분류체계이다.

 

2) 지방정부의 예산도 크게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로 나누어진다.

 

3) 산재보상보험기금과 산재예방기금이 2002년부터 법에 의하여 통합되어 현재는 산재보상보험 및 예방기금으로 운용되고 있다.

 

4) 제61조의3 (재해예방의 재원) 다음 각 호의 용도에 사용하기 위한 재원은 산업재해 보상보험법 제8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산업재해보상보험및예방기금에서 지원한다.

  1. 재해예방관련시설과 그 운영에 필요한 비용
  2. 재해예방관련사업, 비영리법인에의 위탁업무 및 기금운용관리에 필요한 비용
  3. 그 밖에 재해예방에 필요한 사업으로서 노동부장관이 인정하는 사업의 사업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