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과 환경, 분리된 두 영역인가?

 

국민소득 2만불이라는 구호를 중심으로 온 나라가 마치 거대한 생산체계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다시 생산의 시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몸부림 속에 지금의 시대가 있다고 평가하면 지나치게 조급한 판단일 것인가? IMF 경제이전보다는 덜하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아직도 일본식 표현을 빌리자면 여전히 중후장대형 설비산업과 장치 산업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역의 국가공단 및 지역공단을 중심으로 여전히 설비산업을 늘리지 못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고, 전통적인 의미의 제조업에 대한 중요성은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다.

 

상대적인 생산액 기준만 보면, 금명간 IT를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 산업들이 제조업의 비중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산업부문에 대한 절대 생산액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소위 3대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라고 부르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산업에서의 국내 설비증설은 거의 마감하다시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위 ‘위험한 노동’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당분간의 전망이다.

 

인천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는 경제특구에 관한 전개과정 역시 실제로 상존할 수 있는 위험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현재의 경제특구 추진 추세라면,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 현 정부가 파격적으로 제시하는 조건의 실체 중 중요한 부분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환경이나 기본적인 인권 등에 대해서 지금까지 이 사회가 이룬 체계적인 절차들을 파격적으로 완화시키는 것인데, 결국은 이러한 변화들이 이 지역의 임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더욱 중요하게 지켜보아야 할 점은 특구에 실제로 외국기업이 정부의 주장대로 유치될 것인가 아니면 국내 기업이 수출이라는 대 명제 하에 이 지역에 진출하여, 그야말로 국내에서 생산지역의 단순 이전만으로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 그리고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특구의 기준이 우리나라 전체의 ‘표준’의 역할을 하게 될 최악의 가능성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상황을 보다 열악하게 만드는 부문은 비단 노동 분야만은 아니다. 새만금 사업과 위도 핵폐장 문제로 크게 상징되는 현재의 환경정책 기조는 2만불 경제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당장 심각한 문제들을 노정시키고 있다. 현안으로 대두된 문제들 외에도 그린벨트의 해체와 관련된 지역 차원의 크고 작은 개발 건들, 그리고 무원칙하며 효과가 불분명한 지역 개발 사업들이 ‘지역불균등’의 해소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강행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당장 수도권 지역만 보더라도 공급 위주의 주택정책을 통해서 ‘땅값 안정’이라는 목표를 풀기 위한, 전형적인 개발주의적 시각에서 150만호 건설계획 같은 것들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현재의 개발목표대로 추진이 된다면, 전국 인구의 3/4이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별적인 사안들이 각각의 논의로 분리되어 접근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체는 신자유주의적 개발 제일주의 경제정책이지만, 드러나는 현상은 분리되어 있다. 한전민영화 과정에서 잘 보여지듯이 특정 산업에 대한 고용의 문제를 풀 것인가, 아니면 화력발전 위주의 독점시장에서 소규모 발전체계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체계로 갈 것인가는 목표달성의 시기와 방법을 전제로 여러 가지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이 가능하다.

 

새만금 사업의 경우는 농업기반공사의 고용안정과 친환경적 정책을 둘러싸고 방향 설정과정에서 논란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재생가능에너지의 장기적 확대 방안이 위도 방폐장 문제의 장기적 해법이라고 할 때, 고용의 문제는 새만금의 경우보다는 조금은 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전체 노동의 입장으로 볼 때는 핵발전 산업의 경우가 고용효과가 클 것인지 아니면 풍력이나 태양광 혹은 연료전지와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의 경우가 고용효과가 높을 것인지에 장기적인 관심이 집결되게 된다. 여담이지만, 독일이나 대부분 자체 기술개발을 하는 국가들의 경우에는 재생가능에너지가 전체적으로 보다 높은 고용효과를 가지고 있다.

위도의 경우를 계기로 드러난 몇 가지 충돌점은 정부정책과 지역주민의 갈등, 서로 대체관계에 있는 산업 사이의 잠재적 갈등이지만, 아직까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점은 그렇다면 과연 핵발전소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안전할 것인가에 관한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외부적으로 발표되거나 드러난 자료가 거의 없다.

 

방사능의 효과가 장기적이고 점진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핵발전소의 대부분이 80년대 이후에 건설되었으므로 아직은 가시적인 문제점들이 노정될 만한 시기는 아니라는 현실적인 문제점과 함께 핵산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산업 특징상 외부에 공표되거나 외부의 공신력 있는 기관이 체계적으로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아, 현실적으로는 거의 관리 공백 상태에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면 여기에 대해서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과연 특수 산업에 종사하는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안전한 환경 속에 있는 것일까? 현 시점에서 노동과 환경이 소통하고 문제를 공유하는 1차적 접합지는 바로 노동보건 부문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왜 지금 보건 문제인가?

 

예방의학이라는 관점에서 보건경제학(health economics) 분야가 미국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여년 전이다. 그만큼 보건에 관한 것들이 전면적으로 앞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방의학과 환경 문제가 본격적으로 접목되면서 기계적인 ‘재해’라는 관점이 아니라 예방보건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접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부에서 매년 발표하고 있는 산업재해 통계는 ‘4일 이상의 요양을 필요로 하는 사고성 재해’와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는 ‘업무성 질환’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데, 그 주요범주는 다음과 같다.

 

진폐증, 소음성 난청, 금속 및 중금속 중독, 유기용제 중독, 특정화학물질 중독, 신체부담작업, 뇌?심혈관 질환, 요통, 기타 (산업재해보상보험에 의한 업무상질병자 기준)

  

추세로는 진폐증이 전체의 79.9%에서 23.7%(98년)로 감소하는 추세이고, 소음성 난청이 11.6%에서 18%로 증가하는 추세이고, 유기용제 중독과 특정화학물질중독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뇌?심혈관 질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현재의 노동질환 관리가 직접적으로 증상이 드러나는 작업재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누적외상성 질환과 요통, 그리고 뇌,심혈관계질환과 같은 특수건강진단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재해에 관해서는 거의 관리사각지역에 놓여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직업병 통계에 의하면 피부관련질환을 포함한 기타 질환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데, 선진국의 추세와 비교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몰라서 그렇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의 문제들을 드러날 것이 예견되고 있다. 

 

특히 방사능을 포함한 특수화학 공정의 경우는 보건 이론의 발전과 함께 주기적이고 유기적으로 이러한 관리 항목 및 방식이 계속해서 발전해야 하는데, 이러한 여건은 아직 국내에서는 미흡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보건상의 문제점은 중소기업의 경우는 더욱 더 열악하며,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체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포르말린을 직접 취급하는 중소기업 위주의 목재산업이나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의 배출빈도가 높은 소형 화학업체의 경우에서의 비정규직에 대한 보건관리 문제는 노동재해의 차원을 뛰어넘어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에 해당한다고 해야 할 정도로 현재의 상황은 열악하다.

 

3.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작업재해의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은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조금 더 확장된 예방보건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우리나라의 상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 환경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적인 추세가 직접적인 오염배출 관리에서 점차적으로 인체의 직간접 유해도를 중심으로 사람에 대하여 미치는 영향 쪽으로 이전하고 있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한동안 유명세를 탔던 다이옥신이나 환경호르몬 같은 경우가 미량으로도 인체에 치명적인 누적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 물질들이며, 여기에서 발생하는 영향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상당 부분이 과학적인 연구단계에 있는 것들도 많다. 물론 모른다고 해서, 영향마저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에 1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주체는 노동조합이며, 동시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살펴보아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주체도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보건의학이나 환경 문제와 관련된 외부의 전문기관의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작업장에서 다루고 있는 유해물질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노동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임금이나 복지와 같은 일반적인 접근이 상당 부분 가능한 분야와는 달리 보건의 문제는 상당히 지역접이며 동시에 전문적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스스로 이 분야에 대한 관리능력을 전반적으로 제고시키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빠른 관리수준 제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시급한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유해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어떠한 화학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예방의학과 환경 부문의 전문가, 그리고 노동현장과 지원체계가 결합되어야만 첫 발을 딛을 수 있는 일이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특수화학물질에 의한 장기 질환이나 암발생률 상승과 같은 문제들은 개인이 입증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또한 체계적으로 보호받을 제도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지난한 세월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첫발을 내딛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