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골격계직업병 요양투쟁의 흐름과 현재

 

1. “근골격계” 자기 이름 찾기

 

발음도 하기 힘들었던 근골격계질환이 2003년 7월부터 질환예방을 위한 여러 가지 법규정1)을 가지게 되었다.

 

근골격계질환은 자신의 이름인 근골격계 이전에 우리들에게 경견완장애, VDT증후군 혹은 요통처럼 각 부위를 부각시키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불린 직업병이다.

 

우리 노동자건강권 운동의 역사를 보면 필요한 곳에서 요구들을 하고, 이것으로 법을 만들어가는 투쟁의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경경완장애, VDT증후군은 주로 한국통신, 전산업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집단질환 호소와 이에 따른 질병에 대한 인식확대와 투쟁이 이것들을 예방하기 위해 고시2)를 만들었던 과거가 있다.

 

요통에 대한 문제는 일반 생산현장에서 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고통스러워한 질환이지만 직업성 질환이라기보다는 사고성재해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누적된 질환이라 하더라도 한때 현장에서 허리가 아프면 “목격자가 있는 사고를 만들어라”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사고성 재해에 대해서만 인정해왔다.

 

이후 단순반복작업에 의해 목, 어깨, 손목이 아닌 다른 여타 부위의 질환이 발생하면서 또 새로운 고시3)를 만들었고 이러한 질환을 통괄하는 근골격계질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통신개발 연구원, 남일금속, 한국통신 등에서 시작한 근골격계질환은 10여년의 역사를 통해 고시가 아닌 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내기까지 무수한 싸움과 시간을 보내왔다.

 

2. 개별의 싸움에서 전국의 싸움으로

 

처음 근골격계질환의 시작은 통신개발연구원 노동조합의 문서입력을 담당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질환을 호소하면서 VDT증후군 문제대책팀을 구성하여 조사를 시작하였고, 이런 기반으로 1994년 한국통신노조의 114교환업무 노동자 중 3백45명이 집단으로 산재신청을 받으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는 1989년 남일금속4) 노동조합에서 허리환자예방대책위원회를 구성과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서 노동과정 변화에 대한 투쟁을 통해 1995년 야간조의 작업시간을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하는 성과를 시작으로 여러 사업장의 요구들이 있었다.

 

이때의 투쟁들은 현장의 요구를 모아내서 치료와 예방을 위한 현장개선을 이루어낸 투쟁이었지만 문제를 지역화, 산업화, 전국화 시켜내지 못하고 각 단위 사업장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근골격계 투쟁은 전국 사업이었던 2001년 금속연맹 산하 53개 사업장의 근골격계실태조사 결과5)를 바탕으로 심각성을 알려나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3.전국적인 투쟁을 만들어내는 근골격계 사업

 

집단요양신청

 

근골격계질환이 중요하다고 인식된 계기는 1998년부터 시작한 현대정공 5공장에서의 생산량증산과 인원 감원에 대한 대응으로 현대정공 노동조합이 2000년에 건강검진을 통해 56명의 노동자를 집단으로 산재신청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6). 이후 대우조선 노동자들이 회사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76명이 집단요양신청을 한 것을 기점으로 지역 단위의 중소 노동조합에서 동시에 집단요양신청7)을 하면서, 언론에서는 신종(?)직업병이 발생했다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집단요양투쟁은 근골격계사업을 새롭게 바라보고 현장에서 그간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의 억눌림을 표현하는 하나의 투쟁방식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집단요양투쟁을 통해 얻은 성과는 첫째, 아픈 노동자에게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고 둘째, 혼자의 아픔이 아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비슷한 통증과 질환을 나타내는 것은 개별의 문제가 아닌 작업환경의 문제로 시야를 넓히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또한 집단요양신청은 백전백승이라는 결과를 덤으로 얻게 되었다.

 

노동부를 압박하라

 

근골격계가 직업병이라는 인식의 확대는 이것이 치료로만 마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이 알게 되고 현장의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그러나 사업주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를 “개인적인 질환을 어떻게 다 회사가 책임지나” “난 모른다” “꾀병이다, 날나리 환자가 판을 친다” “법이 만들어지면 이후에 개선해 보자” 등 현실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환자들을 현장으로부터 이간질하기 시작한다. 현장에 중심을 두지 않는 사업이라면 이런 폭풍 앞에 현장은 갈가리 찢기고 환자들은 고립되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가가 무식하게 대응하거나 무대응으로 배짱을 부린다면 우린 주변을 활용해야 한다. 노동부의 고유업무가 노동자가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노동할 수 있도록 사업장을 지도 감독해야 하는 것에 대한 요구들을 하기 시작한다. 산재환자가 많이 발생한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산업안전 감독8)을 실시하도록 요청하고, 요양신청을 하고 쉬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검진할 수 있도록 전 사업장에 대한 건강검진9)을 요구하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각 지역 노동청(지사)에 집회를 하고 면담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사업장 감독을 통해 현장에서 근골격계는 노동자가 주도권을 가진 사업이 시작된다.

 

4. 그러나 현장의 변화는 더디고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다

 

우리가 근골격계 투쟁에서 계획했던 목표는 당당히 치료받을 권리확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의해 골병 들어가는 공장에서의 인간답게 노동할 권리, 강화되는 노동강도를 저하시키기 위한 현장의 조직력 강화, 투쟁력 복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아픈 사람은 치료해주고 안정적으로 산재처리를 하는 사업으로 그친 경우가 없지 않았다. 현장 노동자 전체의 사업으로 공유?결의?집행에 이르지 못하고 사업초동주체인 노조 집행부 혹은 담당(부서)활동가 그리고 요양자들에 제한되었던 사례도 적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근골격계질환이 개별 사업장의 문제가 아닌 1400만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라는 시각을 가지고 사회쟁점화 해야 한다. 2000년, 2001년 한해 500명 이상의 노동자가 과로사로 죽어갔고 전체 노동자의 17.7%가 당장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될 근골격계 환자임이 확인10)되었다.

 

전체 노동운동은 근골격계질환의 집단 발생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자본의 일방적 구조조정과 인력감축, 높아진 노동강도 등 자본의 이윤 논리와 탐욕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노동자건강권 현실을 폭로하고 사회적으로 전면화 시켜야 한다.

 

한 단위사업장의 노동강도의 문제가 아닌 전체 노동자의 노동강도 강화, 특히 정규직노동자가 힘들다고 거부하는 노동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있다.

 

이는 비정규직노동자 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근골격계투쟁의 시야를 현장의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고 개선하고 조직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또한 모든 것의 중심은 현장에서 시작하고 현장의 투쟁을 이끌어 내야 한다. 조합원의 요구와 참여를 바탕으로 대중투쟁을 조직해야 하며, 지역별, 산업별, 연대의 힘으로 돌파해 나가는 일상적 투쟁이 전개되어야 한다.

 

7월 1일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좋건 싫건 사업주는 근골격계질환 예방대책을 마련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때 현장을 어떻게 조직하고 근골격계 예방대책의 주도권을 누가 쥐는가는 이후 노동자 건강권 활동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현장의 노동자들을 참여하게 하고 현장의 동력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5.우린 어떤 요구들을 가지고 싸울 것인가11)

 

첫째, 현장에서 근골격계질환 예방대책위를 구성하고 부서와 공정별 실행기구 구성을 합의해야 한다.

 

둘째, 근골격계질환 대책관련 노사공동결정권12)을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구조조정과 연동된 노동강도 강화 등 자본의 노동유연화 전략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작업환경 개선 요구 특히 적정인력 확보, 적정 작업량 확보 등의 요구를 전면화 시켜야 한다.

 

넷째, 질환노동자 대체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투입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다섯째,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불이익을 가하고 있는 자본의 작태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질환자 불이익 금지조항을 명문화하고 근골격계질환자에 대한 재활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의 요구들을 안고, 2003년 집단요양투쟁의 성과를 안고 더 힘차게 노동건강권의 확대를 위해 힘차게 현장을 조직하자!

 


각주)

 

1)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 보건상의조치 (5) 단순반복작업 또는 인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 산업보건에 관한 규칙 제9장 근골격계부담작업으로 인한 건강장해의 예방

 

2) 노동부고시 97-8

 

3) 노동부고시 98-15호

 

4) 지금은 공장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전설의 공장이지만 파업전야의 무대가 되었던 바로 그 공장이다!

 

5) 조합원 26,635명에 대해 근골격계질환 증상조사 설문을 실시한 결과 4,363명(16.4%)이 ‘근무 중은 물론 퇴근 후에도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당장 치료를 요할 정도로 심한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6) 물론 이것이 처음 있는 집단요양신청은 아니었다. 한국통신노조는 이보다 많은 수를 집단요양신청 하였지만 결국은 한 사업자의 연대도 만들어내지 못했기에 한 건의 사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7) 작은공장에서 함께 투쟁했던 집단요양신청 현황 2003년.

 

회사 신청인 수 집단요양투쟁 산재 인정 수
1월 삼호중공업(1차) 33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1월 두원정공 26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3월 대한이연 13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3월 풀무원(화학) 16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3월 OPENSE(사무금융) 8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4월 대우종합기계 24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4월 현대자동차 33명 집단요양투쟁 32명
5월 INI스틸(포항) 31명 집단요양투쟁 29명
5월 삼호중공업(2차) 89명 집단요양투쟁 87명
6월 쌍용자동차(창원) 23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6월 현대자동차 73명 집단요양투쟁 70명
6월 금속노조충남지부 88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6월 쌍용자동차(평택1,2차) 117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6월 쌍용자동차(정비) 20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7월 금속노조포항지부 38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9월 금속노조충남지부(2차) 49명 집단요양투쟁 전원

 

8) 산업안전보건법 제49조 안전보건 진단, 시행규칙 제126조 대상사업장의 종류

 

9) 산업안전보건법 제43조, 시행규칙 제98조 임시건강진단

 

10) 민주노총이 03년 3월부터 5월말까지 총 80개 사업장(금속28개, 보건44개, 화학섬유8개)1개 지역(여수지역건설)의 조합원 10,632명을 대상으로 근골격계 질환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대상자 중 17.68%인 1,879명이 ‘근무 중은 물론 퇴근 후에도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당장 치료를 요할 정도로 심한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0) 민주노총이 03년 3월부터 5월말까지 총 80개 사업장(금속28개, 보건44개, 화학섬유8개)1개 지역(여수지역건설)의 조합원 10,632명을 대상으로 근골격계 질환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대상자 중 17.68%인 1,879명이 ‘근무 중은 물론 퇴근 후에도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당장 치료를 요할 정도로 심한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1) 민주노총에 발간한 “당신의 노동은 안전합니까”에서 발췌. 나열된 다섯가지의 요구는 공동집필진의 의견이고 본인도 집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자세한 세부설명은 책을 참조바람)

 

12) 아쉽게도 이번에 제정된 산안법 시행규칙에는 근골격계와 관련한 사항이 노사협의로 되어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내용중 재해발생과 예방에 관한 항목은 노사합의 사항임을 강조하며 폭 넓게 규정한다면 충분히 합의을 이끌어 낼 근거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