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산재사망이 너무 처참하다.
날마다 기계에 깔려 죽고,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고, 폭발사고로 타 죽는 노동자 소식이다.
진해의 STX조선소에서 일하는 27살 젊은 비정규직 아빠는 어린이날 일하러 갔다가 기다리는 두아이들 곁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청소용역업체 소속으로 기아자동차에서 일하던 67세의 늙은 여성노동자는 공장안에서 차에 깔려 죽었다.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없는 살림 비정규직으로 일해서 한푼이라도 보탤려고 일하러 간 곳이 전쟁터였고 무덤이 될 줄이야.
최소한의 안전조치만 했어도 안 일어날 수 있을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는데도 사업주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정부의 역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날마다 전해지는 노동자 산재사망 소식보다, 지난해 산재사망자가 12% 이상 증가했다는 보도보다, 우릴 더 분노케 하는 것은, 노동자의 죽음 앞에 반성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는 정부의 태도이다.
반복적이고 악질적인 산재사망에 대해서는 사업주를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노동건강연대는 몇 년 전부터 주장해왔다. 캐나다나 호주에서 이미 통과되었거나 입법과정 중에 있는 ‘기업살인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외국의 사례는 각국의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겠지만 공통적으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업주에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흔히, 자유시장경제체제 속에서 기업의 활동이 가장 철저하게 보호된다고 알려진 미국에서도 이런 사회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2003년 민주당의 존 콜진 의원은 ‘부당한 죽음에 관한 책임법 (Wrongful Death Accountability Act)’을 제안했는데, 그 내용은 안전보건법률의 고의적인 위반(wilful violation)에 의한 산재사망에 대하여 사업주의 처벌을 형법상 살인에 준하는 수준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기준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2003년 12월, 특집 「노동자가 사망하였을 경우」를 3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사업주 형사처벌의 필요성을 생생한 사례와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특집기사에서 미국 직업안전보건청(OSHA)이 지난 20년 동안, 기업주가 ‘고의적으로‘ 안전보건 제도를 위반해 일어난 1200건의 노동자 산재사망에 대해 90% 이상 형사 고발을 하지 않았다고 폭로하였다. 이 특집기사는 결론적으로 현재의 안전보건제도에 대한 인식전환과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래의 순서로 앞으로 3회에 걸쳐 연재될 특집기사를 통해 미국사회에서 산재사망과 관련된 최근의 흐름과 그 밑에 깔려있는 문제의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무제한적인 비정규직 확산과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완화, 친자본적인 정부정책 속에 오늘도 8명씩 죽어 가는 우리의 처참한 현실을 이제는 깨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1. 이것이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2003. 12. 21 기사)
2. 미국에서는 사업장 사망을 처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2003. 12. 22 기사)
3. 캘리포니아에서는 사업주를 기소한다 (2003. 12. 23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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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사업장 사망을 처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모든 산재사망은 잠재적인 범죄에 의해 일어났다. 조립라인에서 발생한 두부 절단사고, 기계에 의해 산산히 사체가 조각난 사건, 영문도 모르는 화재에 의한 사망, 공사중의 생매장 사고 타임지의 조사는 그들 모두는 살해된 것이라고 결론 짓고 있다.
사망사고 중 이처럼 극악한 사례는 매년 100건 정도 발생하고 있다. 생산증가를 위해 안전장치를 제거해버리고, 안전 경고를 무시하고, 보호구 제공을 거부하는 현실이 있는 한 이런 재해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고의적인 살인이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1982년에서 2002년 사이에 발생한 이런 종류의 소름끼치는 사망재해 1,242건을 조사하였다. OSHA는 스스로 이들 사건이 사업주의 ‘고의적인’ 안전법규 위반에 의해 일어났다고 시인하였으나, 93%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망 사고를 냈으나 기소를 면했던 사업주들 중 적어도 70명 이상이 안전법규를 다시 어겼고, 상당수에서 사망재해가 반복해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들 상습적인 법규 위반자들 조차도 기소된 예는 극히 드물다.
OSHA의 이러한 기소 기피증은 매우 심각해서 사업주가 동일 안전법규를 위반한 경우에도 기소하지 않았으며,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거나, 심지어 희생자가 십대였던 경우에도 기소하지 않았다. 기소 기피증의 이면에는 여러 단계에 걸쳐 기소를 어렵게 하는 완고하고 번잡한 절차가 버티고 있다고 OSHA의 전 현직 직원들은 말하고 있다. 관료주의 아래 기소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 불리하게 작용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여러 겹의 복잡한 심사 절차를 거치는 동안 희생자 가족들은 지치거나 얼어붙게 되고, 이런 일에 능숙한 회사에 유리하게 진행되어 간다.
OSHA는 점점 사업주들, 특히 대기업의 사업주들을 편들어 왔다. 1990년 이후, OSHA는 조용히 202개의 사망사건을 ‘고의적’에서 모호한 용어인 ‘불확정’으로 하향 조정해, 기소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였다. 산재에 의해 사망이 발생한 경우조차, 단순한 환경, 재무 관련 위법 사건보다도 가볍게 처벌되었다.
타임지는 20년 동안 벌어진 사망사건 중 2,197 건에 대해 조사하였다. 이 2,197건에 물린 벌금 총액은 1조6백만 달러였으며, 이 사건들로 구속된 사람들의 총 구금 기간은 30년이 채 안되었다. 그것도 30년 중 20년은 25명의 노동자가 화재로 사망했던 사건 하나에 대한 것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투자자들을 오도한 사유로 한 회사에 부과된 벌금은 7조5천만달러였으며, 환경법 위반으로 수감된 자들의 수감기간은 2001년 한 해에만 256년에 달했다.
심한 비판을 받거나, 공중의 감시를 받는다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OSHA가 무기력하다는데에 전현직 관리들 모두 동의하고 있다. OSHA의 책임자인 존 헨쇼는 인터뷰에서 법적인 처벌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의 마지막 순간’에 고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OSHA가 기소를 꺼리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유죄확정에 필요한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부분적이다. 실제 OSHA는 법규 위반을 ‘고의적’인 것으로 인정하기까지 ‘실눈을 뜬 채’ 너무 신중하게 사건을 쳐다보고, 증거 타령을 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허송하고 있다. 2003 회계 연도 동안 안전법규 위반으로 조사된 83,539 건 중 오직 404 건만이 ‘고의적’이라는 딱지를 달았다.
증거가 확보된 경우라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관한 한, 집권당인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관계없이 기피의 규범과 같은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현직 관리들이 증언하고 있다.
OSHA의 감독관으로 26년간 일했던 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독관들은 많은 저항에 부딪히면서 법적 처벌을 중시하는 생각이 조금씩 퇴색하게 되며, 특히 연방법에서 산재 사망을 경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더욱 생각이 변하게 된다“ ”많은 사건들이 당연히 범죄로 다루어져야 하지만, 그럴려면 수없이 많은 조사를 요구 받게 되며, 감독관들은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 그는 그러한 환경을 메트릭스라고 불렀다.
한편 OSHA 관리자들이 다루는 사건 건수도 영향을 끼친다. 한 OSHA 관리는 그가 다룬 사고 건수가 2000년 보다 많아서 3,000 건 이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당연히 사건을 소홀하게 취급하게 된다. 그러나 OSHA는 취급한 사건건수로 실적을 평가하고, 더 많은 시간들이 소요되는 기소 사건을 따로 집계하거나 평가에 고려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반, OSHA는 감독관들을 훈련시켜 법적 조사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은 100명을 훈련시킨 후 중단되었다. 또한 1994년에는 소송위원회를 설치하여 복잡한 사건에 대한 소송에 대비하고자 하였으나, 몇 차례 회의를 한 후 유야무야 해산되었다. 이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200명 이상의 법적 조사관을 따로 두고 있으며 법원에 30명 이상의 환경 전담검사와 밀접하게 공조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OSHA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소 기피증을 두둔하면서 곧잘 로널드 맥칸의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1980년대 맥칸은 시카고에서 근무하면서 ‘기소 챔피온’이라 불렸다. 고의적인 위반에 의한 사망 사건이 일어나면 그는 곧바로 사건을 법원에 송치하였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 초기, 그는 OSHA의 새로운 책임자로부터 문책을 받았으며, 기소하려고 했던 12건 모두 좌절되었고, 얼마 후 해고되었다.
“우리는 사람들의 죽음을 멈추고자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처벌되기를 바란다” 고 은퇴한 맥칸은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OSHA 감독관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러한 바람은 워싱턴의 눈총을 사고 싶지 않은 더 깊은 욕망에 의해 좌절된다. OSHA 직원들의 이 잠재적 욕망은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노동부의 핵심 세력인 법무국에 의해 굳건해 진다. 법무국에 상주하는 500명 이상의 법률가들은 노동부 곳곳을 굽어 보면서 법무부에 사건을 회부할 것인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다. 빌 클린턴 시절 이 법무국에서 근무한적이 있는 토마스 윌리엄슨은 법무국을 노동부 장관의 정치적 후원을 위해 존재하는 ‘질식 지점’이라고 불렀다.
인터뷰에서 많은 연방 검사들은 사망재해를 다루는 소송이 증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에서 관리자로 일한 바 있는 조셉은 그러한 열기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가능한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완벽한 파일을 가지고 가더라도, 미국의 변호사들은 ‘산재사망은 경범죄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어이없어 한다며 냉소적으로 꼬집었다.
사망한 인간과 학대 받은 당나귀의 값어치
의회는 1970년 OSHA를 설치하면서 ,고의적인 안전법규 위반에 의해 야기된 산재사망을 경범죄로 분류시켜 놓았다. 법정 최고형은 6개월의 구금에 불과했으며 이는 야생 당나귀를 학대했을 때 부과할 수 있는 최고형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매년 5000명 이상의 사망이 직장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전문가들과 몇몇 국회의원들은 그저 사업주들이 실제적인 기소의 위협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의도적이었던, 부주의했던 연방 OSHA 법안을 어겨온 회사 담당자들이 법적으로 처벌되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기 보다 어렵다고 1988년 의회보고서는 풍자하고 있다.
20년 동안 423명의 사망재해가 일어났던 17개 주에서는 단 한 건의 기소 사례도 없었다. 산재사망을 중범죄로 상향시키기 위한 시도들이 몇 차례 있었으나 공화당과 몇몇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번번히 거부되었다. 그러나 의회도 1984년에 벌금 상한을 1만 달러에서 50만 달러로 인상하는데 동의하게 된다.
주목을 받지 않고 슬며시 일어난 변화에 의해 기소 가능성은 다시 한번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1990년대 들어 OSHA는 사업주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고의적’대신 ‘미확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예가 늘어난 것이다. ‘미확정’이라는 용어는 사업주가 안전하지 않은 조건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고의적’이라는 언어에 담긴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킨다.
대기업 일수록 소속 변호사들이 ‘고의적’이라는 용어를 제거하는데 열정적이다. 그 효과는 지난 십여년에 걸쳐 입증되었다. 석유회사 쉘이 소유한 여러 개의 공장에서 크고 작은 폭발 사고가 있었을 때, 매번 안전법규 위반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두툼한 서류 뭉치는 유해물질 관리에 소홀했다는 것을 밝혔으며, 몇 개의 다른 공장들에서 동일한 위반 사항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쉘 측의 변호사들은 감독관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였고 그 결과 가장 극단적인 위반에 대해서도 ‘미확정’이라는 판정을 받아냈다.
소도시 아나코테에서 1998년 추수감사절 무렵, 지반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다. 필수적인 관리 사항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며, 안전 실행 계획은 이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독관은 발견하였다. 6명이 사망하였다. 삼년 후 델라웨어의 쉘 공장에서는 노동자 한 명이 재해와 사망사고로 익히 알려진 황산탱크 주변에서 일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수 차례에 걸쳐 탱크가 심각하게 부식했다고 경고하였으나 관리자들은 작업을 강행하였다. 누출된 가스에 용접불씨가 옮겨 붙었고, 대형 폭발로 제프리 데이비스가 탱크 속으로 날라갔다. 철제로 된 신발 밑창을 제외하고는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해에도 가이즈마에 있는 쉘 공장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조사하는데 12,000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들 사고로 총 11명이 사망하였으나, 이들의 목숨에 대해 쉘이 벌금으로 지불한 액수는 4백3십만 달러가 고작이었다.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도 않았으며, 한 차례도 기소되지도 않았다.
델라웨어의 국회의원들은 ‘OSHA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다. 편지에서 그들은 OSHA가 사건을 다루면서 유가족들의 상처를 더 깊게 했다고 지적하였다. OSHA는 답변을 통해 그들의 임무는 분쟁이 야기된 사건에 대해 단지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며, 이런 ‘비밀스런 소송 사건’에서 당사자인 가족들을 상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제 사업장 안전의 실질적인 규제자로서 연방정부를 대신하여 주정부가 나서고 있다. 네 개의 주에서 안전법규 위반의 고의성을 판단할 안전감독관을 더 보충하고 있다. 11개의 주에서는 연방정부에서 정한 여섯 달의 최대 구금기간을 더 연장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미시간, 캘리포니아, 애리조나주는 사망재해를 초래한 경우 뿐 아니라 중대재해를 야기한 경우까지 범죄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올해 다시 연방법안을 강화하자는 논의들이 오가고 있다. 삼 개월 전 이주 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감독관 대표는 고의적 위반에 의한 사망사건을 중범죄로 상향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지점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회에서는 민주당 상원의원 존 코진이 법정 최고형을 6개월에서 10년으로 상향한 법률안을 제안해 놓았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노력들은 격렬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미국 경영자 협회’ 부회장인 랜덜 존슨은 처벌 조항 강화를 지지할 의사가 없다고 분명히 하였다. 또한 OSHA의 대표인 헨쇼는 법안을 바꿀 필요도, OSHA가 이들 심각한 재해를 다루는 방식도 변경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실망스럽게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OSHA의 임무는 ‘개인의 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을 뜯어 고치는 것이다’.
(번역 : 기명 / 노동건강연대 회원)